한국여성인권진흥원 최주영 자문변호사(왼쪽), 남정숙 전 성균관대학교 교수(가운데),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김정희 코디네이터가 8일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남 전 교수의 산재신청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구혜정 기자

대학 내 성폭력을 폭로한 남정숙 전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8일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 재활보상부에 성폭력 피해 산재신청서를 제출했다.

남 전 교수는 이날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가 당한 피해가) 근로 중에 일어난 일이다. 조직과 국가가 성폭력에 대한 상해를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폭력은 조직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2018 산재 신청 중 정신적 상해가 10건밖에 안 된다. 육체적인 상해만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감정노동자 등 정신적 상해들이 인정받아야 한다”며 산재 신청 이유를 밝혔다.

그는 “대학처럼 폐쇄적인 조직은 권력자인 정교수를 제외하고 '을'이고, 노동자이다. 약자들이 육체적 상해 뿐만 아니라 권력형 성폭력, 갑질 등도 적극 피해 보상을 받도록 노력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남 전 교수는 대학 성폭력으로 공황장애, 우울증, 이로 인한 의식소실로 넘어져 인대손상이 일어났다.

산재 신청 이후 앞으로의 미투 운동 계획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남 전 교수는 “우선 산재 승인을 목표로 삼고 있다. 산재 승인은 (미투운동) 다음 프로세스에 대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고 본다”고 답했다.

남 전 교수의 산재 신청은 대학 내 미투 처음으로 성폭력을 산재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의 산재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대학 내 성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도 앞으로 산재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남 전 교수는 “누군가가 산재로 떼돈을 벌려고 하느냐 질문을 했는데, 떼돈을 벌 수는 없다. 요양비, 병원비 정도다”라고 밝혔다.

남 전 교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 재활보상부로 찾아가 산재신청서를 담당 직원에 직접 건넸다.

남정숙 전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 재활보상부의 직원에게 산재신청서를 건네고 있다. 구혜정 기자

미투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남 전 교수는 지난 2014년 같은 학교 이 모 교수로부터 강재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 남 전 교수는 2015년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고 지난 2월 1심에서 피해 사실을 인정받았다.

2015년 당시 남 전 교수는 성균관대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투서했으나 성균관대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적극 들어주지 않았다. 이 모 교수는 3개월 정직 처분으로 마무리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성균관대는 남 전 교수에게 학교의 명예를 훼손하고 ‘교수의 품위 유지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후 성균관대는 남 전 교수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전문직 여성조차도 직장 상사 또는 동료 남성의 권력형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사례였다. 또,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 조직이 나서서 피해 사실을 축소하고 피해자를 억압하는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줬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올 11월 발표한 ‘전문지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문직 여성의 50%가 성폭력을 겪고 있으며 42.78%가 상급자나 선배 등에게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전문직 여성은 직장 내 자기발언권이 강해 성폭력에서 자유로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남 전 교수는 “전문직인 교수도 성폭력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반 노동자들은 얼마나 많은 피해를 당하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 교수였던 전문직 여성이 다수의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국미투생존자연대는 남 전 교수의 산재 신청을 환영한다며 "남 교수의 산재 신청은 나아가 대학 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는 ‘선례’이자 ‘첫걸음’으로 기록될 것이다. 남정숙 교수의 산재 신청이,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을 재조명해 폐쇄된 교육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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