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관리에도 '정책 상품 여파'에 가계부채 또 증가
지표금리 하락하지만…당국 압박에 대출금리 인상
은행권 "엇박자 정책이 문제, 당국 방향성 명확해야"

국내 5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국내 5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가계부채 증가세 억제를 위한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은행권 내부에서는 혼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금리가 낮은 정책금융상품의 등장으로 가계대출이 오히려 역대급 수치를 기록하는 등 좀처럼 증가세가 잡히지 않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꼬여버린 금리 정책은 여전히 은행권의 속앓이를 키우고 있다. 대출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을 주문하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실제 대출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지표금리는 점진적이나마 내림세를 보인 것.

은행업계에서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일관된 정책 방향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무리한 금리 경쟁으로 역마진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정책 엇박자가 자칫 올해 은행권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사진=DB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사진=DB

지표금리 하락에 금리도 내림세?

18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개된 지난 2월 기준 은행권 내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COFIX)는 3.62%로 전월(3.66%) 대비 0.04%p 하락했다. 지난해 12월 코픽스가 3.84% 수준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두 달 사이 0.22%p나 감소한 수치다.

코픽스는 국내 주요 8개 시중은행(NH농협·신한·우리·SC제일·하나·기업·KB국민·한국씨티)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다. 은행이 실제 취급한 예·적금, 은행채 등 수신 상품 금리가 인상 또는 인하될 때 이를 반영해 상승 또는 하락한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코픽스의 하락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기준 연 4%대에 진입하기도 했던 코픽스는 이후 3개월 연속 내림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픽스의 경우, 은행이 전월 취급한 수신 금리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 은행권 내 일부 상품을 제외하면 사실상 연 4%대 금리(정기예금 기준)의 수신상품은 자취를 감췄다. 여기에 은행권에서도 대출금리 인상 억제를 위해 당분간 수신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란 기류가 형성된 만큼 이같은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신금리 하락에 따른 대출 금리 하락세도 눈에 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국내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는 연 3.99%로 전월(4.16%) 대비 0.17%p 하락했다. 주담대 금리의 경우 지난해 11월 이후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는데, 주담대 금리가 3%대에 진입한 건 지난 2022년 5월(3.90%) 이후 1년 8개월 만이었다.

은행권 관행‧제도 개선 TF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김소영 부위원장. / 사진=금융위원회.
은행권 관행‧제도 개선 TF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김소영 부위원장. / 사진=금융위원회.

가계부채 문제에 역행하는 대출 금리

문제는 금융당국이 오히려 가계대출 증가세 억제를 위해 금리를 올릴 것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지표금리 흐름에 역행하는 선택을 요구하는 셈인데 은행권 입장에선 업계 고유의 금리정책에 개입하는 것이 상당 기간 지속되고 있다며 우려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최근 금융당국이 공개한 ‘2월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100조3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2조원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3월 이후 11개월 연속 증가세이자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 잔액 기록이다.

이같은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한 건 은행권 내 주담대였다.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의 자료를 종합하면 올해 1~2월 은행 주담대는 총 5조4000억원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금융권에서 신규 취급한 주담대(9조6000억원)의 절반 이상을 은행권에서 공급한 셈이다.

이처럼 주담대에 의한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되자 금융당국은 지난해에 올해도 은행권에 주담대 대출 금리 인상을 골자로 하는 대출 관리를 주문하고 있다. 주담대 잔액 증가의 원인이 연 3%대(하단 기준)에 진입한 은행권 주담대 금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은 국내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및 3대 인터넷전문은행(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 재무담당 임원을 불러 주담대 현황을 보고받았는데, 이 자리에서 증가세 억제를 위한 금리 인상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은행권도 이같은 금융당국의 주문에 일정 부분 대출 금리 인상 조치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달 말부터 시행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조치가 더해지면서 5대 시중은행 모두 3월 초부터 가산금리 조정을 통해 주담대 금리를 평균 0.1~0.3%p 가량 올렸다.

다만, 이러한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 인상이 대출금리의 준거금리로 활용되는 코픽스, 은행채 흐름과 반대되는 행보라는 점은 눈길을 끈다. 변동금리가 지표로 삼는 코픽스는 3개월 연속 하락했고, 고정금리의 지표인 은행채도 점진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서민금융지원 현장간담회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 / 사진=금융위원회
서민금융지원 현장간담회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 / 사진=금융위원회

정책 엇박자 역효과 ‘유탄 맞나’

은행업계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한 번 지표금리와 역행하는 인위적 금리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재현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인위적 금리 인상 또는 인하를 위해서는 은행의 수익성 지표 중 하나인 ‘가산금리’를 조정해야 한다. 금리인상을 위해선 가산금리 또한 높여야 하는데 이자장사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은행권에서 가산금리 조정보다 더 신경 쓰는 부분은 바로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당국의 엇박자 정책 기조다. 충돌하는 당국 정책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니, 불과 1~2주일 사이에 대출 공급, 금리 기류가 급변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당국 주도로 시행 중인 신생아특례대출, 대환대출은 가계대출 증가세를 부채질하는 핵심 요소로 거론된다. 신생아특례대출의 경우, 시행 한 달여 만에 공급 금액이 4조원에 육박했고 대환대출도 대부분 기존 대출액 대비 추가 증액하는 방식으로 대환이 이뤄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서민, 취약계층을 위한 대출 공급은 지속돼야 한다”는 원론적인 대응만 반복하고 있다. 사실상 가계대출 관리를 은행권의 몫으로 떠넘긴 셈이라 은행권의 속내도 당연히 복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주담대 증가세가 다소 둔화된 것은 맞지만, 당국 주도로 공급 중인 저금리 정책대출 상품이 전반적인 대출 심리를 키울 가능성이 높다”며 “무엇보다 가계대출은 줄이면서도 동시에 실수요자 지원은 늘리라는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를 어떤 식으로 이행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대환 대출로 인한 금리 출혈경쟁으로 조달 금리와 대출금리가 역전되는 역마진까지 우려되는 분위기”라며 “정상적인 상황이면 대출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수신금리 조정, 지표금리를 고려하면 이마저도 여의찮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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