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이석구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1일 물러났다. 야당이 탄핵안을 발의하자 표결을 앞두고 전격 사퇴한 것이다. 취임 석 달여 만이다. 사상 최단임 방통위원장이 됐다. 위원장 포함 2명이라는 기형적 형태로 유지되던 방통위원회가 정족수(최소 2명) 미달로 당분간 그 기능을 못 하게 됐다. 대통령이 국회추천 방통위원 3명의 임명을 미뤄 정원 5명 중 1명만 남은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즉 사장과 이사진을 자기네 정파에 유리하게 구성하려는 여야의 정쟁 때문이다. 민주당의 이 위원장 탄핵 시도는 내년 총선까지 방통위의 기능을 무력화하는 것이 근본 목적으로 보인다. 민주당도 이 위원장의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것 이라고 기대하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고민정 의원 등 168명이 지난달 28일 소추안을 발의하면서 ‘검찰청법’을 적용한 해프닝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위원장이 헌법과 법률에 중대한 위반을 했다고 탄핵 소추안을 발의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 검찰청법을 그 근거 법률로 들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의원 168명 중 누구도 법안 제출 때까지 적용 법률이 잘못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의원 대부분, 아니 모두가 그냥 정치적 공세로 대충 탄핵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뜻대로 1일 이 위원장의 탄핵 소추안이 의결됐다면 헌법재판소가 그의 탄핵인용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이 위원장의 직무는 정지된다. 그러면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 1명만 남아 정족수 부족으로 기능이 마비된다. 이 위원장의 탄핵 인용 여부가 내년 총선 이전에 결정이 나기 어려우므로 민주당은 MBC 등 야권에 유리한 방송지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총선을 치를 수가 있다. 물론 국회추천 몫 위원 3명(여 1, 야 2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면 된다.

그러나 그리 되면 여야가 2대 2 동수가 돼 현 정권이 방통위를 주도할 수가 없다. 민주당이 이 위원장의 탄핵안을 밀어붙이는 이유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 위원장의 사의 표명에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탄핵안을 대표 발의한 고민정 의원도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이동관 위원장이 꼼수 사의 표명을 했다”며 “범죄를 저지르고 먹튀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줄곧 이 위원장의 사퇴와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탄핵을 시도한 민주당이 막상 그가 사퇴하려 하니 대통령의 수리 거부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 위원장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방통위를 내년 총선까지 마비시켜 현 공영방송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이 민주당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취임 후 그동안 KBS, MBC 등 공영방송이 야권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며 이를 바꾸려 했다. 그는 KBS 사장과 이사를 교체했다. 이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도 개편, MBC 경영진을 대폭 물갈이하려 했다. 야당은 이를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라며 극렬히 비판했다. 급기야 이 위원장의 탄핵을 시도, 방통위 기능을 무력화하려 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이 위원장을 사퇴시키고 새로 방통위원장을 임명하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이리 되면 내년 총선 이전에 여당 주도의 방통위를 다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물러나게 하지만 내년 총선 이전에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여당에 유리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여야의 수싸움에서 여당이 일단 판정승한 셈이다.

여야가 이처럼 방통위를 두고 대결하는 것은 방통위의 엄청난 권한 때문이다. 방통위는 ▷KBS 이사 추천 및 감사 임명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및 감사 임명 ▷EBS사장, 이사, 감사 임명 ▷지상파방송 사업자ㆍ 공동체 라디오방송 사업자의 허가ㆍ재허가 ▷종합편성이나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하는 방송채널 사용 사업자의 승인에 관한 사항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한 2명(방통위원장)과 국회가 추천한 3명(여 1, 야 2명)으로 구성된다. 결국 여권 3명, 야권 2명의 구도로 정권에 유리한 구조가 된다. 지금까지 정권을 쥔 쪽이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해 왔다.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러나 여야 모두 자기네가 정권을 잡았을 때는 이를 모른 척했다. 민주당이 지난달 9일 통과시킨 방송 3법도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을 불가능하게 하고 불편부당한 공영방송을 만들겠다’는 것이라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야권에 유리한 공영방송을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킨 방송 3법은 야당이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박근혜 정권 시절부터 추진했던 것이다. 그때는 당시 여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나 민주당도 문재인 정권 시절, 더구나 무소불위의 거대 여당이 됐지만 방송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해 방송법을 개정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네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 이처럼 여야 모두 자기네 편에 유리한 방식으로 방송을 바꾸려 한다. 방송지배구조를 둘러싼 이 같은 여야의 악순환 공방은 깨야 한다. 그러려면 여야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것이 안 된다면 차라리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으로 편파방송을 일삼는 방송들을 모두 민영화하라.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