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시니어 봉사단 고옥순, 류덕엽 단원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시니어봉사단의 고옥순(왼쪽)씨와 류덕엽씨./사진=구혜정 프리랜서.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시니어봉사단의 고옥순(왼쪽)씨와 류덕엽씨./사진=구혜정 프리랜서.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기자] 소녀들과 함께한 기분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한 초등학교의 교장이었고, 은퇴 이후에는 교육봉사를 통해 미래세대에 대한 관심을 무한대로 표현하고 있는 고옥순씨(66)와 류덕엽(63)씨와의 만남은 따뜻했다. 얘기 나누는 내내 풋풋한 젊음도 느껴졌다. 지난 9월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시니어봉사단 자격으로 캄보디아 해외봉사를 다녀왔더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두 사람. 4박 6일 여정 속에서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재확인했고 오늘보다 더 나은 봉사에 눈을 떴다고 했다.  

그들을 만난 곳은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 해외봉사를 다녀온 이후라서 삶의 여유가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일정 빡빡한 액티브 시니어로서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었다. 해외봉사를 하고 온 지도 두 달이 훌쩍 지나버렸다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했다. 이야기가 시작되니 그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젊었을 때 한 번씩은 해외봉사를 다녀왔는데, 은퇴 이후에도 먼 곳의 어린이를 위한 봉사를 하고 와서 행복했다고 했다. 

고옥순 저희가 갔던 곳은 캄보디아에서도 상황이 열악한 오츠로브 지역이었어요. 이번에 함께 갔던 13명 모두 초등학교 교장 출신이었고요,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각자가 준비해 갔습니다. 드론, 창의, 과학 교실 등 단원들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거로요. 저와 류덕엽 단원은 에코백 만들기 교실을 하기로 했어요. 가방에 그림을 좀 그려야 했는데 제가 미술에 소질이 없어요(웃음). 초등학교 2학년, 4학년인 손자·손녀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서 가지고 갔더니 그곳 아이들이 한국 아이가 그린 그림이라며 무척 관심을 보였습니다. 언니, 오빠를 따라 학교에 온 동생들까지 에코백을 챙겨주다 보니까 금세 동나더라고요. 결국 한국에서 가지고 온 개인용 에코백도 다 찾아내서 아이들에게 주고 왔습니다. 단원들은 “다 좋아, 좋아” 그러셨어요.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캄보디아 해외봉사 현장에서 아이들과 에코백만들기 수업을 마친 류덕엽씨./사진=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캄보디아 해외봉사 현장에서 아이들과 에코백만들기 수업을 마친 류덕엽씨./사진=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캄보디아 방문이 해외봉사로는 두 번째라고 밝힌 류덕엽씨는 예전과는 달라진 그 나라 아이들의 모습에 새삼 놀랐다고 했다. 과거에 비해 표정도 밝고, 자신감도 넘쳐 보여서다. 

류덕엽 캄보디아에 가기 전에는 아이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보니 제 눈에는 우리나라 어린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조금 더 지원해 주면 앞으로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을 거란 비전도 보였고요. 

고옥순 배 위에 지어놓은 수상학교에도 다녀왔습니다. 저희가 원래 있던 곳에서 2시간 정도 배를 타고 갔어요. 애들도 배를 타고 등교하더라고요. 흔들리는 배 위 학교를 지키는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계시더라고요. 세상에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어디에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시니어 봉사단이 학교 방문을 할 때마다 어디서 듣고 왔는지 교실 주변에 아이들이 많이도 모여 들었다고 한다. 문화·예술을 가르칠 만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드론교실, 과학창의교실, 태양광으로 움직이는 거미 만들기, 에코백 만들기 등 수업은 난생처음인 아이들이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배워나가는 아이들의 눈은 어디를 가나 빛났다.

고옥순 아이들이 굉장히 순박하고 공부하는 태도가 너무나 달랐어요. 저희가 준비한 수업은 드론을 날리거나 창의수업 혹은 유성매직 등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였는데, 이런 수업을 안 받아본 거예요. 쉽게 접할 수는 없었던 학용품도 꽤 있었고요. 아이들 눈동자가 반짝반짝거리고 수업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렇게 한 번만 가서 되겠어?’란 생각도 했다고. 달리 생각하니 조그마한 씨앗을 뿌리고 가는 것도 놀라운 힘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고옥순 이걸 계기로 ‘아이들이 더 공부해야겠다’, ‘나도 한번 다른나라 여행을 해봐야 되겠다’ 같은 희망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처음에 했던 제 걱정을 이번에 완전히 버리고 왔습니다.

에코백에 앙코르와트기와 태극기를 그린 캄보디아 어린이들과 함께./사진=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에코백에 앙코르와트기와 태극기를 그린 캄보디아 어린이들과 함께./사진=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어쩌면 그간 우리 사회에서 잊혔던 광경이었을지 모른다. 교실 창으로 빼꼼 얼굴을 들이밀고 배움의 기회를 얻고자 선생님을 바라보던 눈망울들, 빽빽한 콩나물시루에 교실을 빗대던 것도 너무나 오래전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학생과 교사 모두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판이해졌다. 교권을 바라보는 시선도 과거와 사뭇 달라져 최근 안타까운 소식도 자주 들려왔다. 

류덕엽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이 선생님에게 집중하고 있는 교실을 거의 보기 어려울 거예요. 그런데 캄보디아에서는 아이들 30명의 눈 60개가 모두 한곳을 향하고 있었어요. 가슴이 뭉클했어요. 이렇게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보고 감동받았어요. 학습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과 우리에 대한 관심, 거기에 굿네이버스에 대한 감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교육봉사를 하면서 선생님 출신의 장점을 찾아냈다고 했다. 

고옥순 40년 교편을 잡다가 퇴직했지만 잘하는 게 없었어요. 뭘 해도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교육봉사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이걸 잘하지?’라는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이렇게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딴데서 헤맸나 싶었습니다. 해외봉사를 가도 환경이 좀 다를 수 있지만, 교육은 같았어요. 애들이 저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감동이 생기면서 ‘이런 맛에 하는 거야!’ 싶더라고요. 뭔가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류덕엽 저는 해외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난 다음에 또 가자고 하면 또 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해외봉사를 다녀왔더니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결속력’이 시니어봉사단에 생겨 더할나위 없었다고 두 사람은 한목소리를 냈다. 지금까지 시니어봉사단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말도 안 되게 앞만 보고 달려온 기분이 든다. 국내외 어린이를 위해 30년 넘게 존재해온 굿네이버스는 2020년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미래형 공동체마을과 주거공간을 연구하고, 활기찬 시니어문화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재)굿네이버스 미래재단을 창립했다. 이듬해 3월, 시니어봉사단 준비위원회가 발족했고, 10월부터 서울시 강서구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봉사와 도시락 봉사 등이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원칙은 봉사 활동과 관련해 '시니어단원 각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자'였다. 원하는 과목 혹은 분야에 대해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안을 짜서 가르치는 것까지 40년 교육전문가의 역량을 무한대로 발산해왔다. 하지만 19명 단원들이 각자 알아서 너무나도 잘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고옥순 우리가 봉사활동을 할 때 각개 전투를 해요. 누구는 여기 가서 수업하고, 여기는 또 누구, 다 다른 거죠.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다 같이 모여서 얘기하고 알아갈 시간이 많이 없었더라고요. 굿네이버스 미래재단에서 영상, 사진 촬영 교육프로그램 등을 제공해 주고, 모임 등을 만들어줬지만 말이죠. 해외봉사를 떠나서 매일 같이 지내고, 웃고, 먹고 생활하다 보니 ‘이 사람들이 유쾌하고 좋은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유대감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어디 가서 만나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류덕엽 결속력이 생겨서 아주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난번 자원봉사할 때 계획을 좀 짰어요. 복지관에 수업만 갈 게 아니라 단원들끼리 네트워크를 만들어 힘을 좀 모아보자고 했어요. 단결도 될 거고, 사람이 또 재미도 있어야 오래도록 모이잖아요. 

특히 류덕엽씨는 해외봉사를 다녀온 뒤 좀 더 적극적으로 시니어봉사단의 활동을 주변에 알린다고 했다. 교육전문가 출신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봉사라고 생각해서였다.

내년에는 또 어떤 교육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만나 봉사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사진=구혜정 프리랜서.
내년에는 또 어떤 교육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만나 봉사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사진=구혜정 프리랜서.

류덕엽 이미 제 지인이 단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오늘도 정년을 2년여 앞둔 후배 교장선생님이 퇴임하고 시니어봉사단에 합류하겠다고 말해서 너무 행복했어요. 

고옥순씨는 퇴임과 함께 봉사하고 평생 공부하겠다는 자세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시니어봉사단으로 활동하기 전에도 봉사할 곳을 찾아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고옥순 교육 봉사 현장을 필요로 하는 시니어봉사단과 어린이 구호와 봉사를 오래 생각해 온 굿네이버스의 역량이 훌륭하게 잘 맞아떨어진 거죠. 해외봉사는 1년에 한 번 정도는 갔으면 하고 중요한 건 국내봉사입니다. 지금은 방화2동 종합사회복지관, 강동지역아동복지센터와 창신모자원에서 저희 단원들이 교육봉사를 하고 있어요.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봉사할 곳이 많아지면 함께할 교장 출신 선생님도 저희 주변에 많으니 와서 봉사하실 겁니다. 봉사현장을 만드는 게 먼저인지, 봉사단을 모으는 게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교육을 통해 봉사할 기회가 점점 더 많아졌으면 해요.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실무자들도 저희와 같은 고민을 하면서 신경쓰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해외봉사를 다녀온 이후 달라진 점은 국내 봉사 현장에 갔을 때 아이들이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옥순 해외봉사 이후에 창신모자원에서 아이 한 명과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10명을 대충 가르치는 것보다 한 아이와 완전히 라뽀를 형성하고 올바르게 해주자는 마음입니다. 캄보디아 갔다오면서 봉사단원들과 내린 결론은 조그마한 것들이 모여서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지금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의심 없이 교육봉사를 하고 있고요.

류덕엽 저는 사실 다른 분들보다 늦게 들어와서 보면서 배우는 단계입니다. 캄보디아 봉사 후에 단원 간에 친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우리가 몸담은 곳이 더 큰 공동체라는 의식이 생겼어요. 일단 저는 아이들을 참 좋아해요. 엄청나게 사랑해요. 진심으로 잘해주고 싶은데 시작할 때 좀 주저하는 면도 있었는데, 앞으로 선배님들 본받아서 더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아직은 급식 봉사만 하고 있고 내년에 어떤 프로그램을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진로상담이 될 수도 있고, 제가 맨발 걷기를 좋아하는데, 아이들과 맨발로 걸으면서 상담을 할 수도 있고요. 지금 열심히 구상하고 있습니다(웃음). 굿네이버스 미래재단을 알고 시니어봉사단으로 활동하면서 퇴직 후 내 삶의 가치가 높아졌어요. 저도 그 위상에 걸맞게 행동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처음 시니어봉사단을 조직할 때 '과연 이게 될까?' 싶었다고 한다. 이렇게 빨리 꽃을 피우고 해외봉사로 이어질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 첫 해외봉사를 마쳤다. 12월의 ‘나눔의 날’ 행사를 마무리하면 교육전문가로서 봉사하기 위한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내년에는 또 어떤 곳에서 어떤 인연으로 아이들을 만날까?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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