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공세에 투자 환경 악화 겹쳐
3년만에 청산 펀드, 신설 펀드 상회
ESG펀드에서 4분기 연속 자금유출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데일리임팩트 이진원 객원기자] 장기간의 고금리 유지 전망에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우려가 위험 자산 투자 분위기를 급속히 냉각시키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 신규 개설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 수와 청산된 펀드 수가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규제 당국의 단속 강화와 공화당의 반대로 인기가 식기 시작하던 ESG 펀드 시장이 최근 악화된 거시 경제 환경으로 인해 더욱 부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숫자로 확인된 것이다.

23일(현지시간) 데이터 조사 회사인 모닝스타는 “전반적인 투자 심리 약화 속에 미국의 펀드 매니저들은 3분기(7~9월) 중 ESG 펀드를 신규 개설하는 것보다 더 많이 청산했다”면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 건 2020년 이후 처음”이라고 분석했다.

3분기 중 3개 ESG 펀드 신설 vs 13개 펀드 청산 

모닝스타 분석에 따르면 3분기 중 3개 ESG 펀드가 신설됐으나 13개 펀드가 청산됐다. 또 기존 펀드 중 1개가 ESG 펀드 라벨을 달았으나 4개 펀드는 ESG 펀드 라벨을 떼어냈다.

2분기에만 해도 ESG 펀드가 27개 신설되고 9개 펀드가 청산됐는데 3분기 들어 분위기가 더 부정적으로 급변한 것이다. 2021년 ESG 경영 열풍이 불면서 4분기 ESG 펀드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ESG 펀드가 44개나 출시됐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3분기에 각각 수백만 달러의 운용 자산을 보유한 두 개의 소형 펀드를 청산했다.

평소 ESG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던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월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돌연 “ESG라는 용어가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며 더 이상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혀 정치권의 압박에 굴복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인기 식고 있는 ESG 펀드 

ESG 펀드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부터 직장 내 다양성 확대에 이르기까지 윤리적으로 책임감 있는 관행을 장려하기 위해 등장한 투자 상품이다. 모닝스타는 “지속가능성, 임팩트, ESG 요소에 대한 명확하고 두드러진 약속이 있는 개방형 및 거래소 상장지수펀드(ETF)”를 ESG 펀드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펀드는 2021년 호황을 누렸으나 무늬만 ESG 펀드에 대한 규제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고, 전통적으로 친기업적 성향이 강한 공화당 쪽에서 ESG 투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자 이미 인기가 식기 시작했다.

규제 당국은 지속 가능한 분야에 투자하는 펀드라고 광고하며 투자금을 끌어모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펀드들로 인해 일명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논란이 커지자 ESG 펀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왔다.

ESG 경영이 부상하고 기업이 사회적 의무를 다하길 바라는 요구가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기후변화, 인종 차별, 환경, 사회 정의 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하자 공화당은 이를 두고 ‘워크 자본주의(woke capitalism·깨어있는 자본주의)’라며 비난해왔다. 기업들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부르짖으며 ‘깨어있는 유사 정부’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투자금도 유출 

최근 투자 분위기가 악화되자 투자자들은 미국 펀드에서 전반적으로 자금을 회수하고 있지만 ESG 펀드에선 4분기 연속 자금 유출이 발생하며 기존 펀드보다 더 투자금 유출이 더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모닝스타는 분석했다.

3분기 중 ESG 펀드는 일반 펀드의 0.02%보다 훨씨 높은 0.85%의 가치 손실을 기록했다.

알리사 스탄키에비츠 모닝스타 연구원은 로이터에 “자금 유출의 동기를 완벽하게 정량화할 수는 없지만 에너지 가격 상승, 그린워싱, 고금리 우려, 정치적 반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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