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논설위원, 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허찬국 논설위원
허찬국 논설위원

올해 노벨 경제학상이 여성의 경제활동과 노동시장 성과를 연구한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77, 미국 하버드대)에게 돌아갔다. 선정위원회는 골딘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미국은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곳이지만 아직도 오래된 일이 아닌지라, 골딘이 이룩한 ‘최초’가 많다. 최초 단독 여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것을 비롯 하버드대 경제학과가 종신교수 지위를 부여(1989년)한 최초 여성이다. 그동안 등한시되었던 여성의 경제활동의 역사적 흐름과 최근 추세를 구체적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한 것은 의미가 크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우리 경제에도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살핀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및 성과와 관련된 대표적인 지표 하나가 성별 임금격차이다. 아래의 그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로 지난 60년간 미국의 정규직(full time) 남성 근로자의 중위 임금과 여성 근로자의 임금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보여준다. 종축의 숫자는 그 차이가 남성 임금에 비해 몇 퍼센트인지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1973년 미국에서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약 40% 덜 받았다. 격차가 1970년대 후반부터 뚜렷하게 줄어들기 시작해서 2000년쯤에는 20% 수준으로 낮아졌다.

         <1973년 이후 미국의 성별 임금격차 추이>(%, OECD 자료)

   통설을 뒤집기, 그 스승의 그 제자

골딘의 체계적 연구가 있기까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지난 200여 년에 걸쳐 경제가 발전하면서 점진적으로 늘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과거의 구체적인 자료가 드물어 정치한 분석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졌던 일종의 통설이었다. 19세기 미국의 공식 인구조사 기록들은 기혼 여성의 직업을 간단히 ‘wife’라고 기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골든의 스승이었던 시카고 대학의 로버트 포겔 교수는 경제사를 단편적 증거(anecdote)에 바탕으로 한 느슨한 옛날이야기라는 인식을 불식한 경제학자였다. 포겔은 집요한 데이터 발굴을 통해 분석하는 계량적 경제사 분야의 공헌으로 199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더글러스 노스와 공동 수상)했다. 골딘은 이 방법론을 답습해 과거 여성의 경제활동을 방증하는 다양한 자료를 발굴해 근거가 빈약한 기존의 통설을 뒤집는다.

골딘의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중반까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빠르게 늘었으나 그 이후 정체되었다 반등했다. 산업혁명의 본격적 영향이 확산되기 이전에 여성들의 농업과 소규모 제조업 분야 참여가 증가하는 추세였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기혼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는 미혼 여성과 달리 오히려 줄었는데, 이는 양육과 가사로 인해 집적화된 공장에서 긴 시간 일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부에 사회적 인식의 변화, 기술 진보, 여성의 교육 참여 확대, 사무직 등 서비스 산업 일자리가 늘며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조용한 혁명’과 최근의 ‘탐욕스런 일자리’

그림을 보면 1970년대 중반부터 성별 임금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골딘은 1960년대 이후 널리 보급된 경구피임약이 여성의 경제활동과 노동시장 참여가 크게 늘어나는 ‘조용한 혁명’을 촉발한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전부터 여성들의 교육과 노동시장 참여가 계속 늘고 있었지만, 결혼과 출산은 여성 구직자뿐만 아니라 출산 후 이직을 걱정하는 고용주에게도 여성 채용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었다. 경구피임약의 보급은 이런 제약을 크게 완화했다는 것이다. 그 후 여성들이 더 많은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하였고 이런 과정을 통해 여성들이 직업 등 결혼, 가정과 분리된 양상의 정체성을 정립하게 되었다. 근래 미국 여성의 평균 교육수준은 남성보다 높다.

‘조용한 혁명’은 1970년대 이후 여성이 ‘하는 일’과 ‘학력’을 변화시켜 성별 임금격차를 줄였다. 학력이 늘면 보통 임금도 는다. ‘하는 일’의 변화의 예는 의사와 간호사 직종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의사는 남자가, 의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은 간호사는 여성이 많았다. 그래서 남자의 평균 임금이 더 높았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의 성비(性比)가 비슷해지면서 평균 임금의 차이가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성별 임금격차가 지난 20년 가까이 20%수준에 머물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이 차이는 동종 직업(남자 의사, 여자 의사) 내 격차의 성격을 보이는데, 예를 들어 대학원 이상의 학력자들 그룹에서 임금격차가 더 크다. 골딘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탐욕스런 일자리(greedy job)’라는 개념을 동원한다. 이 일자리는 보수가 높으나 근무시간이 길고 노동 강도가 빡센 종류이다.

교육수준 등 경제활동 능력이 비슷한 부부가 노동 강도가 높은 일을 하는 경우,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이직하여 근로 강도가 낮고 근무 시간이 유연한 일을 하거나 집에 머무는 것을 흔히 본다. 당연히 남편의 수입이 높아지는 반면 아내의 수입은 낮아진다. 이런 경우가 많아질수록 남녀의 임금격차가 줄지 않을 것이다. 골딘에 따르면 여성들이 돈 잘 버는 남편이 있어서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여성들이 일을 안 하기 때문에 남편이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다.

   갈 길이 요원한 우리나라 양성평등 사정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최근 칼럼에서 ‘조용한 혁명’이 미국에서 유효 노동력을 늘려 경제 성장에 상당히 기여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미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여러 유럽 국가들보다 크다. 근로 유연성,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통념 등이 중요함을 방증한다.

2022년 OECD 회원국 비교를 보면 우리나라의 임금격차는 30%를 상회하며 전체 회원국 중 제일 높다. 2위 국가가 이스라엘인데 격차가 25%를 하회하고, 우리와 비슷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일본의 격차도 우리에 비해 10%포인트 낮다. 우리나라의 수준은 OECD 국가 중 그야말로 극단치(極端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주변에서 양성평등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는 사람들을 보면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여 할 말을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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