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소리 단 3일만 들어 달라" 호소

 6월 21일 정식 개봉하는 황윤 감독의 영화 '수라'의 포스터.
 6월 21일 정식 개봉하는 황윤 감독의 영화 '수라'의 포스터.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기자] 지난달 10일, 서울 신촌CGV에서 대학연합야생조류연구회 주최로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의 무료 시사회가 열렸다.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찬 객석. 관객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스크린에 집중했다.

‘수라’는 새만금의 마지막 남은 갯벌의 이름이다. 영화는 새만금간척사업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2000년대 초 영상과 함께 최근 불거진 군산 신공항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수라갯벌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수라’는 관객과 시민 사회의 관심에 힘입어 21일 정식으로 개봉한다. 개봉에 앞서 진행한 ‘수라 100개의 극장, 100명의 관객이 됩시다’ 펀딩을 통해 5900만 원가량의 기금이 모여 새만금 갯벌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황 감독은 2006년 3월 대법원의 새만금 간척사업 허가 판결이 내려진 후, 카메라를 들고 새만금 해창갯벌로 갔다. 물막이공사가 끝나면 못 볼 새만금 모래갯벌을 영상으로 담기 위해서였다. 얼마 안 가 새만금방조제 안에서 조업하던 류기화 씨가 물에 빠져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한다. 새만금사업 반대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류 씨의 부고는 새만금에 몰입하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황 감독은 이 일을 계기로 새만금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포기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지난달 10일 영화 시사회를 마치고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스크린 앞에 선 황윤 감독(오른쪽). 영화에 함께 등장하는 오승준 씨(왼쪽)는 오동필 단장의 아들이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수라갯벌에서 철새 등 생태를 관찰하러 다녔으며 그 영향으로 전남대 생물학과 입학했다. / 사진 = 권해솜 기자.
지난달 10일 영화 시사회를 마치고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스크린 앞에 선 황윤 감독(오른쪽). 영화에 함께 등장하는 오승준 씨(왼쪽)는 오동필 단장의 아들이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수라갯벌에서 철새 등 생태를 관찰하러 다녔으며 그 영향으로 전남대 생물학과 입학했다. / 사진 = 권해솜 기자.

2014년 군산으로 이사 간 황 감독은 이듬해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을 만났다. 이를 계기로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새만금 갯벌에 대한 희망을 안고 다시 카메라를 켜게 됐다. 오 단장은 시민생태조사단 활동을 하며 20여 년간 새만금 갯벌과 철새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는 새만금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해줬다. 그를 따라나선 황 감독은 수라갯벌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저어새 150여 마리가 무리 지어 사는 모습은 물론 도요새의 환상적인 군무도 목격한다. 황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말했다. “아름다운 것을 본 것이 죄라면, 이제 나도 죄인이 된 것일까.”

영화 ‘수라’는 특히 새만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황 감독 또한 8년 전 오 단장을 만나 수라갯벌을 맞닥뜨렸을 때 ‘이제 내가 뭘 해야 햐지?’라고 자문했을 것이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과거 영상 파일을 정리하고 수라갯벌을 찾아 영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황 감독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갯벌에 대해 큰 관심이 없고 무시하지만 사실 규모도 크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며 “처음에는 갯벌이 살아 있다고 했을 때 믿지도 않았는데, 흰발농게가 10년 넘게 수라갯벌에서 버티고 있는 것을 보니 언젠가 갯벌을 다시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새만금 갯벌이 희미하게나마 살아 있다는 점, 1991년 새만금사업이 시작되고 30년이 흐른 지금도 새만금은 또 다른 개발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1308명의 국민소송인단을 원고로 하여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새만금 신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취소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일에 2차 재판이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행정법원에서 열렸으며, 다음 기일은 9월 14일 15시 20분이다.  

죽어가는 새만금을 보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고 말한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연구단장.  20년 세월을 새만금 수라갯벌을 관찰하며 자연 가치를 증명해 온 산증인이다. / 영화 '수라' 예고편 캡쳐.
죽어가는 새만금을 보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고 말한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연구단장.  20년 세월을 새만금 수라갯벌을 관찰하며 자연 가치를 증명해 온 산증인이다. / 영화 '수라' 예고편 캡쳐.

"대통령님, 수라갯벌로 초대합니다"

황 감독을 새만금갯벌로 인도한 오동필 단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신공항 개발에 반대하며 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날도 있고, 국민소송이 있는 날은 서울에 와 재판을 방청한다. 학생들 혹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수라갯벌 걷기 활동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오 단장은 지금까지 새만금갯벌에 집중했던 이유에 대해 “새만금이 서서히 말라가고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었지만, 변화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매일같이 갯벌을 찾았다”고 말했다.  

오 단장은 안타까운 점에 대해 “새만금간척사업이 이어지는 동안 대통령이 여러 번 바뀌었고, 삼보일배 등 수없이 다양한 형태의 반대운동을 시도했지만, 어느 것 하나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 단장은 “대통령을 둘러싸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에게 진짜 민심은 중요하지 않다”며 “지역 토건세력의 입김이 중요할 뿐, 우리가 생각했던 정책은 반영된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수라갯벌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신공항개발과 관련해서도 언급했다. 새만금사업이 본격화하던 20여 년 전부터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새만금 동쪽 초등학교를 없앴고, 하제마을에 살던 마을 사람 2000여 명도 이주해 이제는 600년 된 팽나무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유사시 미군 전투기가 드나들 수 있도록 미군기지에서 1.3km 떨어져 있는 수라갯벌에 새만금국제공항이라는 이름으로 신공항을 짓겠답니다. 미군이 전투 목적으로 쓴다는 의미는 미국 영토로 귀속된다는 거예요. 게다가 군산미군기지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공항이 들어서도 중국민항기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 

신공항이 단순한 민간공항이 아니라는 거다. 오 단장은 지금 신공항이 아닌 대체습지로 수라갯벌 원형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전북지방환경청의 새만금 담당자를 현장으로 오게 해 3공구 4공구를 보여줬습니다. 새만금 상단 외곽은 완충습지로 남겨놓아야 생물들이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대통령이건 정치인이건 환경정책을 제대로 파악해 고려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새만금 개발한 지 30년 됐습니다. 단 3일 시민과 정부 관계자가 모여 토론이라도 해봤으면 좋겠어요. 국민을 위한 정책을 위해서 단 3일이라도 현장에 와서 논의를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종정부청사 앞 새만금신공항을 반대하는 천막에 걸린 흰발농게 그림. 흰발농게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 사진 = 수라오픈채팅방
세종정부청사 앞 새만금신공항을 반대하는 천막에 걸린 흰발농게 그림. 흰발농게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 사진 = 수라오픈채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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