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도
발군의 위기 관리 통해 세계 시장서 입지 확대
종합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목표 내걸었지만
로보틱스·AAM·전기차 체제 전환, 아직까지 미흡
인적 쇄신 통한 체질 개선 요원…미래 동력 우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현대자동차 전기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아이오닉 5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현대자동차 전기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아이오닉 5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데일리임팩트 김현일 기자] “우리가 함께 꿈꾸는 미지의 미래를 열어가는 여정에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안되면 되게 만드는’ 창의적인 그룹 정신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서로 격려하고 힘을 모아 노력하면 충분히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0년 회장 취임사)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고 기술을 개발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2023년 신년사)

3년 전 총수직에 오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내연기관차의 종말과 전기자동차 등 스마트 모빌리티로의 대전환기를 맞아 ’자동차 제조 기업’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리고 2년여 뒤 올해 신년사에서는 자동차 이외의 영역에서도 선두주자로 발돋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다가오는 위기를 두려워하며 변화를 뒤쫓기보다 한발 앞서 미래를 이끌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그롭의 체질 개선을 공언했던 정 회장. 그러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이라는 정 회장의 목표 달성은 녹록치 않다.

특유의 리더십으로 하이브리드차·전기자동차·수소전기차 등 미래차와 로보틱스·항공모빌리티 분야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으나, 패스트 팔로어를 넘어 게임 체임저가 되기에는 2% 부족하다는 평가다. 특히 2025년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원천 기술을 확보, 자율주행과 같은 미래사업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래사업의 핵심은 첨단 기술 인재. 경쟁사보다 역량을 갖춘 인재를 선점해야 변화의 속도를 올릴 수 있다. 정 회장이 최근 MZ세대와 접점을 늘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제조업에 뿌리를 둔 현대차의 DNA를 대대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현대차 멋있어졌다“ 호평

29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의 지난 2년은 경영자로서 능력을 보여준 시기였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완성차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반면, 현대차와 기아는 호실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주력 전기차 모델들도 세계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아이오닉5는 2022년 세계 올해의 차, EV6는 2022년 유럽 올해의 차를 수상하며 글로벌 3대 올해의 자동차 시상식에서 2관왕에 올랐다.

정 회장과 현대차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현대차는 어떻게 이렇게 멋있어졌나(How Did Hyundai Get So Cool?)”라는 기사를 통해 현대차의 최근 약진에 정 회장의 역할이 크다고 평했다.

WSJ는 정 회장이 지난 2020년 회장직에 오른 후 달을 정복하듯 전기차·로봇 등 혁신 기술에 과감히 투자하는 ‘문 샷’(Moon Shot) 투자에 적극 나선 것이 주효했다고 전했다.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였던 피터 슈라이어 등 인재를 영입한 것이 그 예시다.

이를 기반으로 WSJ는 현대차가 디자인과 성능을 고루 갖춘 전기차를 통해 테슬라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평했다. 특히 전기 세단 아이오닉 6가 평론가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WSJ와의 인터뷰를 통해 마이클 오브라이언 전 현대차 부사장은 “현대차는 테슬라를 자동차 회사가 아닌 기술 회사로 바라봤다”라며 “다른 자동차 회사들이 비싼 배터리 등 이유로 망설이는 동안 정 회장은 단념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의 전기 세단 아이오닉 6. 사진=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의 전기 세단 아이오닉 6. 사진=현대자동차

포스트 내연기관차 선언했지만

정 회장의 위기 관리 능력은 입증됐지만, 미래 기술 역량 내재화에서는 아쉽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지난해 5월 현대차그룹은 국내에 62조원을 투자해 오는 2025년까지 미래차·로보틱스·도심항공모빌리티(AAM) 포트폴리오를 대폭 확대할 것을 선언했다. 그룹 3사가 힘을 합해 △전동화와 친환경 사업 고도화에 16조2000억원 △로보틱스·항공모빌리티·자율주행·인공지능(AI) 등에 8조9000억원 △내연기관 차량 상품성·고객 서비스 향상에 38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은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래차의 경우, 전기차의 비중이 내연기관차보다 낮다. 높은 가격과 인프라 부족, 안전성 관련 불신 등을 이유에서다. 수소 모빌리티의 경우 한층 열악한 인프라 등에 부딛혀 상용 분야 이외에서는 특별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국내 미래차 판매량은 총 31만3136대로 지난해 국내 완성차 총 판매 대수인 122만9942대 중 25.46%를 차지한다. 차량 별 비중은 △하이브리드 18만3181대(14.9%) △전기차 11만9791대(9.74%) △수소차 1만164대(0.83%)에 해당한다.

지난 2022년 7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판버러 에어쇼에서 현대자동차가 공개한 UAM 시제품. 사진=현대자동차
지난 2022년 7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판버러 에어쇼에서 현대자동차가 공개한 UAM 시제품. 사진=현대자동차

SDV·로보틱스·AAM 전환은 안갯속

정 회장은 지난해 CES에서 로봇개, 스팟과 함께 등장해 ‘메타모빌리티’ 현실화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스마트 디바이스가 메타버스 플랫폼과 연결돼 인류의 이동 범위를 가상공간까지 확장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사용자는 새로운 차원의 이동경험을 할 수 있고 가상 공간이 로봇을 매개로 현실과 연결되면서 사용자에게 생생한 대리 경험까지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로보틱스와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차량)화, 인공지능(AI)가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 

정 회장은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30년까지 18조원이 투자할 예정이다. 가시적인 움직임도 포착됐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모빌리티 플랫폼 스타트업 포티투닷(42dot) 인수, 지난해 11월 셔틀 ‘aDRT’를 운행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로봇을 확용한 자율주행 배송서비스 실증사업에 들어갔다. 

다만 오는 2025년으로 예정된 모든 차량의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차량)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조건부 자율화로 일컬어지는 ‘레벨 3’의 문턱을 계속해서 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신형 그랜저에서 다량의 소프트웨어 문제가 발생하는 등 기술이 고도화되는 과정을 안정적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자율주행 전문기업인 앱티브가 설립한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 역시 매년 적자폭만 늘리고 있는 추세다. △2020년 2315억원 △2021년 5162억원 △2022년 7518억원 등 지난 3년 간 영업손실만 총 1조4995억원에 달한다. 모셔널은 2022년까지 완성차 업체와 로보택시 사업자 등에 공급할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을 완료하고 상용화할 계획이었으나 아직 특별한 소식은 없다.

로보틱스나 항공모빌리티 분야에서도 아쉽다. 지난 2021년 미국의 로보틱스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고 미국 보스턴 케임브리지에 로봇 AI 연구소를 설립했다. 미국 UAM 법인인 슈퍼널을 설립해 연구개발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익 실현은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1969억원, 슈퍼널은 88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CES 기간 약 400평 규모의 전시관을 미래 로보틱스 비전을 주제로 채웠을 정도로 정 회장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성과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와 로보틱스 등으로의 전환을 선언했으나 2년 남은 현재 전환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라며 “비록 중기 계획 단계이긴 하나 전기차도 비중이 안 높고 로보틱스 비중도 예고 대비 낮아 (오는 2025년까지로 예정됐던) 계획이 틀어지게 생겼다. 계획 자체가 미스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정해야 할 가능성도 생겼다”라고 평가했다.

지난 11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연세대학교를 찾아 경영학과 학생들의 수업을 참관했다. 사진=연세대학교
지난 11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연세대학교를 찾아 경영학과 학생들의 수업을 참관했다. 사진=연세대학교

’게임 체인저’ 위해 젊은 인재 ’구애’

정 회장이 최근 2030세대들과 연달아 만남을 가진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미래사업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정 회장에 대한 내부 평가는 굉장히 좋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완성차 업계에 대한 이해가 높아 보고와 지시가 매우 명확하고 간결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라면서 “매년 인사를 통해 미래사업 핵심 인재를 발탁하고 있는 것도 그룹의 체질 개선을 향한 갈망을 방증한다. 하지만 자신의 구상을 뒷받침할 미래 인재를 경쟁사에 빼앗기고 있다는 고민이 정 회장을 움직이게 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정 회장은 지난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국민소통 프로젝트 ‘갓생(God生) 한 끼’ 행사에서 MZ세대 30명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기아 인수 후 겪었던 경영난을 털어놓으며 팀워크를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 11일에는 연세대 경영대학 이무원 교수의 ‘현대차그룹: 패스트 팔로어에서 게임 체임저로’라는 주제의 사례연구 강의를 참관했다. 현대차그룹의 비전·기업 문화·과제 등에 대한 학생들의 토론을 경청했다. 

두 행사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MZ세대, 특히 20대들과 격의없이 어울렸다는 점이다. 갓생 한 끼에서는 참가자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진로와 업무방식, 취업, 인생철학 등을 놓고 대화를 나눴다. 연세대에서는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과 뒤풀이를 가졌다. 정 회장이 소주·맥주 폭탄주가 든 잔을 들고 다니며 학생들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디지털 역량을 갖춘 20대 인재는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확보전을 벌이는 대상이다. 정 회장의 최근 행보는 이들을 향한 구애라는 해석이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로보틱스나 미래 모빌리티 분야 등 첨단 기술 인재에 대한 쟁탈전이 심한데 현대차는 기존 제조기업의 성격과 이미지가 강해 인재 확보가 쉽지 않다”라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당하는 인력이 필요하다. 연구소도 만들고, 그런 걸 할 수 있는 인재들이 필요한 만큼 (정 회장이)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소재 현대차·기아 양사 건물 전경. 사진=현대제철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특별시 서초구 소재 현대차·기아 양사 건물 전경. 사진=현대제철 홈페이지 갈무리

나이 드는 현대차…혁신 효과 하락

인적 쇄신을 이뤄질 때 사업 재편 효과가 높아진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은 첨단기술 변화에 대응하기 수월한 까닭이다. 

정 회장도  젊은 피를 전진 배치시켜 세대교체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 인사에서 224명의 승진자 중 176명이 신규 선임됐는데, 새롭게 등용된 임원 3명 중 1명이 40대였다. 자동차 제조사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조직 내부의 혁신성을 제고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인적 쇄신은 진통이 예상된다. 현대차 노동조합은 올해 정년연장 없이는 신규 채용도 없을 것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조는 지난 24~26일 임시 대의원회의를 열고 △기본급 월 18만4900 인상 △상여금 800% △정년 60세→64세 연장 등의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안을 사측에 제시했다. 

게다가 현대차 조직은 고령화 됐다. 현대차 생산직 평균연령은 올해 기준 49.2세, 근속연수 22.7년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제조업 중에서도 가장 높은 상태다. 

최근 몇 년 사이 폭스바겐·제너럴모터스(GM)·포드·르노 등 외국계 완성차 기업들은 인력 유연화를 통해 비용절감과 사업구조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업종간 경계가 무너짐에 따라 역동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현재까지의 관행을 고수하는 조직문화로는 현대차의 글로벌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 전문가는 데일리임팩트에 “연륜과 역량을 갖춘 인재는 회사에서도 귀하게 여기고 이들의 룰을 넓혀주는 게 맞다“면서도 “그렇지만 일괄적인 정년 연장이 답인지는 좀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신기술에 더 민첩하게 대응할 인력을 보강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차는 글로벌 완성차업체 중에서도 생산성이 매우 낮다“며 “현대차의 내일은 젊은 인재에 달려있다. 이들을 다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직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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