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최근 주로 다세대 및 다가구 주거지에서 자주 일어나는 주거침입 범죄를 둘러싸고 거주자들은 두려움에, 경찰은 대책 마련에 고민이 많다. 주거침입 범죄를 중히 여기는 것은 이것이 단순히 주거침입에 그치지 않고 절도나 강도, 성범죄 등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형으로 지어진 아파트 등에 비해 다세대 주거지가 범죄에 더 노출되는 데는 주거지의 환경여건도 한몫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리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주민들은 CCTV를 동네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거지 곳곳에 보이는 ‘CCTV 촬영중’ 표시. 사진: 김기호, 2018  
​주거지 곳곳에 보이는 ‘CCTV 촬영중’ 표시. 사진: 김기호, 2018  

현재 침입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도시 주거지의 특징을 살펴보자. 우선 골목이 좁고 구부러진 데다 전신주와 뒤얽힌 케이블로 가로공간이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주로 5층인 다세대주택의 1층은 주차장으로 사용하여 어둡고, 길에서는 집의 1층 주출입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방화(防火)를 위해 건물 사이에 만든 이격(離隔)공간(1미터 내외)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1층의 컴컴한 주차장과 건물 사이 어스름한 이격공간을 통해 누구나 건물 측면이나 뒤로 들어갈 수 있다. 건물 내 단위주거들은 소형이고 작은 방에 가구나 가전제품 등 짐이 많아 창 쪽으로 다가가기 어려워 집 앞 가로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볼 수 없다. 이런 환경은 침입범죄에 유리하며 아쉽게도 CCTV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도시설계 및 건축분야에는 벌써 1990년대부터 ‘환경디자인을 통한 범죄예방(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이라는 개념이 소개되고 점차 실무에서 적용하고 있다. 특히 침입절도와 같은 기회성 범죄를 감소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 경찰에서도 중요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 방안, 경찰청, 2005). 도시를 관리하는 자치단체도 주로 기성 주거지를 중심으로 마을 만들기 사업이나 근린 중심지 가로정비사업 등에서 이런 개념을 시도해 왔다.

어두운 다세대주택 1층 주차장과 건물 간 이격공간. 사진: 김기호, 2017  
어두운 다세대주택 1층 주차장과 건물 간 이격공간. 사진: 김기호, 2017  

셉테드(CPTED)는 추가로 건설비를 투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범죄 예방이라는 시각에서 주거지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생활 중에 자연스럽게 사람들(특히 외부인)을 주의 깊게 보거나(때로는 감시하거나) 동네나 집으로의 접근도 자연스럽게 통제할 수 있도록 주거와 주거지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자기 동네영역(領域; 내 동네라고 느끼는 공간범위)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높이고 나아가 동네 외부공간(가로나 녹지, 공원 등)이 활발하게 사용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다양한 디자인 항목이나 기법이 있으나 초점은 동네사람들의 많은 눈(eye)이 생활 중에 자연스럽게 동네를 감시하게 하는 것이다.

'생활안심디자인’을 통해 만든 커뮤니티센터 겸 지킴마루 공간. 주민들의 독서와 운동, 나아가 야간지킴 등을 위해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보행동선을 조성, 동네 길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2014사업). 자료: ‘생활안심디자인 종합 가이드라인’ (시범사업), 146쪽, 서울특별시, 2020 
'생활안심디자인’을 통해 만든 커뮤니티센터 겸 지킴마루 공간. 주민들의 독서와 운동, 나아가 야간지킴 등을 위해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보행동선을 조성, 동네 길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2014사업). 자료: ‘생활안심디자인 종합 가이드라인’ (시범사업), 146쪽, 서울특별시, 2020 

예전에는 담장을 높이 쌓고 그 위에 유리병 깨진 것까지 더 꽂아 놓아 범죄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셉테드는 오히려 담장을 낮추거나 아예 없애서 이웃 사람들이 그 집에 누가 들락날락하는지 볼 수 있게 하고 또 집안에서도 밖의 길이나 앞집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보게 해서 비상시 이웃이든 경찰이든 신속히 대응하도록 연계하는 것이다. 요체는 동네 환경이 시각적으로 잘 파악되도록 하며 주민들이 함께 범죄를 예방(감시)하고 비상시 서로 돕는 것이다.

‘생활안심디자인’을 통해 만든 동네 영역(입구) 알림 표시. 서울 성북구 동선동(2015사업). 자료: 앞의 책, 237쪽, 서울특별시, 2020 
‘생활안심디자인’을 통해 만든 동네 영역(입구) 알림 표시. 서울 성북구 동선동(2015사업). 자료: 앞의 책, 237쪽, 서울특별시, 2020 

지난 20여 년 서울시는 마을 만들기 사업 등을 하면서 기성 시가지에 셉테드 디자인을 도입하여 방범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골목을 밝게도 하고, 지킴이센터(커뮤니티센터 겸용), 비상벨, CCTV 등을 설치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공공부문의 사업을 넘어 민간부문도 건축물의 설계나 배치와 함께 주민들의 동네에 대한 관심(감시)에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축하는 건물들에도 셉테드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보통 지하층이 없는 건물들을 측벽에 이격 없이 연속으로 붙이는 맞벽건축을 하여 측벽이나 후면부로의 진입을 어렵게 하거나 건물의 주출입구를 가로변에서 잘 보이게 설치하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건물 내부에는 길 쪽으로 향한 복도나 창문 등을 적극 설치해 건물 내외 시각적 관계를 쉽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발코니가 없어진 점은 참 아쉬운 대목이다. 코로나 초기 주민들이 주거에 격리되었을 때 유럽 어느 도시에선가 한길 가에 면한 집에서 주민들이 발코니로 나와 함께 음악회를 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거지 범죄 문제도 공공의 노력과 함께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의식이 발현된다면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