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까지 세계 최초 8.5세대 IT용 OLED 라인 구축
아산에 디스플레이 클러스터 조성…기술 생태계 확장
日 투자 실기로 존재감 희미…中, 정부 지원 아래 맹추격
韓 세계 1위 中에 내줘…첨단산업 발전 위해 정부와 합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7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찾아 QD-OLED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7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찾아 QD-OLED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삼성이 약속했던 60조 지역 투자가 본격화 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충남 아산에 세계 최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클러스터를 조성할 방침이다. 

IT용 OLED에 4조 베팅

삼성디스플레이는 4일 아산 제2캠퍼스에서 신규 투자 협약식을 갖고 2026년까지 4조1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기존 액정표시장치(LCD) 라인이 있던 자리에 세계 최초로 8.6세대  IT용 OLED 제조시설을 세운다. 양산에 돌입하면 삼성디스플레이 매출에서 IT용 OLED 비중은 20%를 기록, 지금보다 5배 높아진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원장(마더글라스)이라 불리는 유리 기판을 수십여매로 분할해 패널로 만든다. 이때 원징의 크기는 '세대'로 구분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현재 6세대(1500x1800㎜)가 주력인데 8.6세대(2250×2600㎜)로 전환할 경우, 2배 가량 더 큰 원장을 쓰게 된다. 원장의 크기가 커진 만큼 생산량도 증가한다. 14.3인치 태블릿 패널의 경우, 연간 450만매에서 1000만매까지 늘어난다. 

특히 8.6세대는 IT용 OLED에 최적화 됐다.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원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 즉 제조과정에서 버려지는 면적을 최소화할수록 원가경쟁력이 높아진다"며 "시장의 동향과 기술 개발 등을 면밀하게 분석해 향후 수요가 늘어나는 세대의 생산라인을 구축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껏 삼성디스플레이는 6세대 공정에서 IT용 OLED를 만들어왔다. 별도의 라인을 구축할 정도로 수요가 많지 않아서다. 업계에서는 스마트폰용 OLED 시장 내 비중이 40%를 웃도는 반면, IT용은 5%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본다. 8.6세대 라인 운용을 결정한 것은 LCD에서 OLED로의 전환이 신속하게 이뤄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비리서치는 IT용 OLED 시장이 2022년 950만대에서 2027년에는 4880만대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에 이어 애플도 태블릿·노트북에 OLED 패널을 넣기로 결정했다. 

디스플레이 세대별 원장 크기. 자료.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
디스플레이 세대별 원장 크기. 자료.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

中, LCD 이어 OLED도 눈독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번 투자로 주요 고객사인 애플 물량을 선점할 계획이다. 다만 회사가 바라는 투자 효과는 수주 확대 이상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OLED는 스스로 빛을 내는 자발광 소재를 사용한 까닭에 LCD보다 더 얆고 선명하며 다양한 형태의 패널을 만들 수 있다. 화면을 구부리거나 돌돌 말 수 있다. LCD와 비교해 소비전력 효율도 좋다. 노트북·태블릿 등을 활용해 고화질 콘텐츠를 즐기는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저전력 고화질이 가능한 OLED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성장의 수혜를 독차지하고 있다. 2007년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용 OLED 양산에 성공한 이후 해당 시장을 주도해 왔다. 매출 기준 삼성디스플레이의 스마트폰용 OLED 시장 점유율은 69.5%로, 2위 BOE(12.8%)와의 격차가 5배 이상이나 난다. IT용 OLED 시장 역시 삼성디스플레이(76.7%)의 위상이 견고하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업체들이 바짝 추격해와서다. 정부의 지원 덕분에 중국 기업들은 총 투자비의 10% 만 있어도 디스플레이 공장을 세울 수 있다. BOE는 2018년 56억달러 규모의 10.5세대 LCD 공장을 세우면서 5억6000만달러만 투입했다. 이렇게 공격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구축함에 따라 중국기업들은 LCD 시장의 절반 이상을 가져갔다. 또다른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LCD의 비중이 높다. 중국업체들의 점유율이 증가했다는 건, 시장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 17년째 지켜온 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를 2021년 중국에 내줬다. 

내친 김에 중국 정부가 OLED 투자를 확대하며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스마트폰 등에 탑재되는 중소형 OLED는 물론, TV용 대형 OLED도 넘보기 시작했다. 지난해 OLED 시장 점유율은 한국 71%, 중국 28%였지만 상황이 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디스플레이 산업 주도권 변화는 예상보다 더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CES 2023에서 'UDR 2000' 마크를 획득한 초고휘도 OLED와 일반 OLED의 밝기를 비교하고 있다. 사진. 삼성디스플레이.
CES 2023에서 'UDR 2000' 마크를 획득한 초고휘도 OLED와 일반 OLED의 밝기를 비교하고 있다. 사진. 삼성디스플레이.

"日 전철 안 밟겠다" 투자 승부수

이번 투자를 두고 위험을 감수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세계적 IT 기업들이 잇따라 투자 규모를 축소하고 인력 감축을 단행하는 등 사업 효율화에 무게를 싣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사업 확장보다는 유지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더욱이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에 이미 20조원을 대여해 준 상황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투자 적절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쫓고 쫓기는 디스플레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과거 디스플레이 시장을 호령하던 국가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브라운관 산업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로 LCD 상용화에 성공하며 초기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했다. 1995년 삼성·LG가 LCD에 뛰어들고 1999년 대만 업체들이 진출할 때에도 시장을 지배하는 건 일본이었다. 그러나 5세대 LCD에 대한 투자를 적기에 단행하지 못하면서 한국에 시장 주도권을 넘겨줬다. 한국은 2004년 처음으로 LCD 세계 1위에 올랐다.

일본이 재기를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일본은 2015년 소니·파나소닉·재판디스플레이(JDI) 등과 민관공동투자펀드(INCJ)가 합작, OLED 전문기업인 JOLED를 설립했다. 유기물을 증착해 OLED 패널을 제조하는 한국기업들과 달리 JOLED는 잉크젯 프린팅 방식을 시도했다. 생산 속도가 빠르고 재료 사용량이 적어 양산까지 성공한다면 역전도 가능했다. 하지만 JOLED는 기술 완성도와 품질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적자난에 처했다. 한때 일본 디스플레이의 자존심으로 불렸던 JOLED는 결국 지난달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2021년 일본의 OLED 시장 점유율은 1.9%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퇴출 수준이다. 

JOLED의 파산과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의 몰락은  한번 경쟁력을 잃은 산업을 회생시키기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아울러 원천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해도, 적극적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된다는 점을 환기시켜주는 사례다. 삼성디스플레이의 투자 결정은 중국과 격차를 벌리고 시장 지배력을 수성하기 위한 승부수인 셈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선제 투자를 통해 승기를 잡아왔다. 40인치 대형 LCD TV 시장 개화를 예견한 2003년 8월, 6세대를 건너뛰고 7세대 LCD 투자를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2005년 TV용 LCD 시장에서 샤프를 제치고 2위에 올랐고, 2008년에는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05년 4700억원을 투입해 OLED 전용라인을 세운 뒤 2007년 안정적 수율을 확보하며 세계 최초로 OLED 양산에 성공했다. 10조원 이상을 쏟아부어 6세대 플렉시블 OLED 라인인 A3를 구축하면서 삼성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용 OLED 강자로 입지를 굳혔다.

4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열린 신규투자 협약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문성준 소·부·장 협력업체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윤석열 대통령, 김태흠 충남지사, 박경귀 아산시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사진. 대통령실. 

국내 첨단산업 생태계 구축 '선봉장' 자청

삼성디스플레이는 사업의 확장 외에 다른 부분도 고려하고 있다. LCD가 장악하고 있는 태블릿·노트북 시장의 중심 기술을 OLED로 전환시키고, 중국에 넘어간 한국 디스플레이 영토 탈환을 선봉장을 맡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 회장은 2019년 13조원 규모의 퀀텀닷(QD) OLED 투자를 결정한 이후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중요성을 역설하곤 했다. 지난 2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을 찾아 "끊임없이 혁신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을 키우자"고 당부했을 정도다.

이 회장이 투자의 선순환 효과를 믿고 있다. 그리고 삼성이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지난달 발표한 대규모 투자 계획에서도 드러난다. 삼성은 지난달 계열사 사업장을 중심으로 10년 간 60조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전사 차원의 조 단위 투자는 총수만이 조율하고 결정할 수 있다"며 "과거 산업화를 이끌었던 선대처럼, 재계 1위 그룹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반도체 패키지와 최첨단 디스플레이, 차세대 배터리, 스마트폰, 전기부품, 소재 등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분야에서 지역별로 특화 사업을 키워 국토 균형 발전과 우리나라 산업 생태계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투자가 신호탄이 된다. 이 회장은 이날 "아산에서 아무도 가보지 못한 디스플레이 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겠다. 삼성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첨단 산업에 과감히 투자하고 기술 개발 노력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동 기술 개발, 제조공정 개선, 물품대금 조기지급 지원 등 상생 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는 첨단산업 발전과 지방 균형의 마중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재계에서는 2조8000억원 규모의 국내 설비·건설업체의 매출 증가가 나타나고, 약 2만6000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6대 첨단산업 중 민관 협력으로 첨단 산업 국내 투자 물꼬를 튼 첫 사례이니 만큼, 정부는 '팀플레이어'로 함께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간이 적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확대·연구개발(R&D) 지원을 통해 OLED 글로벌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견지하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과감한 선제적 투자 △산·학·연·관의 협력을 통한 초격차 기술 확보 △소·부·장 업체와의 상생을 통한 디스플레이 산업 생태계 강화 등을 목표로 종합 디스플레이 클러스터를 위한 정책 지원에 이뤄진다. 특히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42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을 추진하고 투자 인센티브를 확대할 계획이다. 계약학과와 현장 중심 아카데미 운영 등을 통해 9000명의 전문인력도 양성한다.

재계에서는 국내 경제에 불러올 선순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디스플레이 최강국을 위한 정부의 비전과 정책적 지원, 삼성의 투자 의지가 맞물려 디스플레이 산업을 한차원 더 높이 재도약 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나아가 코리아 세일즈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첨단산업 입지로서의 한국의 가능성을 환기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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