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슬아 논설위원, 작가·컨텐츠 기획자

송하슬아 논설위원
송하슬아 논설위원

석 달간 홀로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한국을 떠난 지 52일차에 열차를 타고 비엔나에 도착했다.

“너 한국인이지. 이거 너 줄게~”

숙소에서 마주친 청소원이 유니폼에서 우리나라 동전 100원짜리 6개를 꺼내서 건네줬다. 그 동전의 온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아마 그 덕분인지 공짜로 행운을 얻은 것처럼 비엔나에 있는 동안은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나빠진 컨디션을 회복했고, 좋은 날씨에 여행하며 좋은 친구를 만났고, 또 맛있는 음식까지 충분하게 즐겼다.

만약 국내 여행지라면 어땠을까? 낯선 사람이 다가와 뜬금없이 600원을 준다면 나는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다. 그 의도를 알지 못해 계속 의심하고 경계했을 것 같다. 비엔나에서 선물 받은 그 동전은 낯선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을 때 받아서 특별하게 여겨졌을 뿐이다. 아무리 공짜를 얻는다 해도 반갑지 않은 건 액수의 크기 때문이다. 달짝지근한 아이스크림이나 껌을 살 수도 없는 요즘 세상에 고작 600원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5,000원이라면 일단 돈을 받아둘 것이고, 1만원 정도면 공짜 배춧잎으로 하루의 기분이 달라질 수도 있다.

여행에서 돌아올 무렵, 한국은행은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 시범 사업을 도입하면서 10원 주화를 수거하는 대로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비현금 결제율이 90%까지 높아졌다며, 그 원인으로 동전의 쓰임새가 줄고 휴대가 번거로운 점을 꼽았다. 10원과 100원의 부재로 점점 얇아지는 지갑의 두께만큼, 우리는 숫자 끝에 0을 더 가진 삶을 살고 있을까?

글쎄, 그 점은 의문이다. 인크루트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앱으로 하루 평균 312원을 모으는 소위 앱테크족(앱+재테크의 합성어)이 10명 중 7명이나 된다고 한다. 먼저, 재테크는 자금 조달이나 운용에 고도의 테크닉을 발휘하여 금융 거래에 의한 이득을 꾀하는 재무 테크놀로지의 준말이다. 앱테크는 보기 민망할 정도로 매우 작은 티끌을 모으는 것이다. 나처럼 적은 수입이라도 꾸준히 쌓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게 새삼 놀라울 뿐이다.

앱테크 방법은 매우 쉽다. 자투리 시간에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적게는 1원에서 많으면 120원이 쌓인다. 현금성 포인트는 앱 설치 후 인증하기, 회원 가입 후 인증하기, SNS 좋아요 누르고 인증하기 등 자잘한 행위면 적립된다. 걸음 1만 보를 채우면 토스 앱은 40원을, 캐시워크는 100포인트를 준다. 밤 12시가 되면 모든 걸음이 초기화된다. 내 몫의 포인트를 주울 시간이 끝난다는 말과 같다.

‘오늘 미션 성공! 포인트 적립 3원’에 옅게 미소를 짓는다. 요즘 시대에 1원의 가치에 소소하게 기쁨을 느낄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어느새 1원, 그 티끌을 모아 커피 몇 잔과 치킨 배달을 시켰다. 일상의 소소한 기적을 이미 여러 번 이룬 셈이다.

앱테크를 계속 찾는 원동력은 별거 없고 그저 치킨을 떠올렸다. 숫자로 확인하는 성취감도 소소하다. 언론에서는 경기 불황과 고물가 시대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젊은 세대가 돈 버는 행위로 본다. 그러면서 불황 시대의 세태라는 둥 과대 해석된 면이 없지 않다. 가볍고 쉬운 습관(리추얼)을 지키면서 현금으로 즉각 보상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실리와 흥미를 느끼는 것뿐이다.

처음 앱테크를 시작한 계기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도 맞물려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야외보다는 실내, 거실보다는 작은 방에서 몹시 지루할 때였다. 무기력하고 우울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부터 일상의 작은 부분을 관찰하고 발견하는 감각이 조금씩 깨어났다. 작고 가벼운 습관(리추얼)에 앱테크가 소소한 성취감을 느끼는 데 한몫했다.

이 자리를 빌려 티끌 모아 맛있는 걸 얻는 기적을 만든 앱 개발자와 서비스 기획자를 향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목표는 피자값의 기적으로 바꿔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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