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언론인
이석구 언론인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관문인 엘 칼라파테. 이곳에는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오가는 버스 터미널이 있다. 국제선 터미널이지만 규모나 시설은 우리네 읍(邑)만도 못하다. 국제노선이 있어 그런지 이곳에는 환전소가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 암시세로 달러를 아르헨티나 페소로 바꿔준다. 페소는 달러로 환전해주지 않는다. 공정 환율이 1달러당 192페소(3월 1일 기준)이지만 350페소로 교환해 준다. 공공건물에서 공공연히 암달러 시세로 환전하는 나라-. 지금 아르헨티나가 처한 경제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한국에서도 남대문 시장에 가면 암달러상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은밀히 영업을 한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호텔, 식당, 관광 가이드, 상점 등 거의 모든 곳에서 달러를 페소로 바꿔 주거나 달러로 결제를 한다. 3000여 억 달러의 외채에 허덕이고, 연간 100%에 육박하는 물가상승률로 페소 가치가 폭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는 자고 나면 물가가 오른다. 돈이 생기면 바로 생필품 등 물건을 사는 것이 남는 장사다. 당연히 저축은 할 생각도 없고 여유도 없다.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 5대 부국에 들어갔다. 1900년 무렵에는 미국보다 잘살았다. 유럽에서 다투어 이민을 왔다. 1962년 아르헨티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1149달러로 우리나라(104달러)의 11배나 됐다. 그러나 59년 뒤인 2021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373달러로 아르헨티나(1만628달러)의 3.3배다. 그동안 자원도 없는 조그만 나라 한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선진국이 됐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퇴보, 경제 낙제생이 됐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적표는 참담하다. 9차례나 국가부도 사태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지난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무려 94.2%다. 2월중 물가는 전년 동기에 비해 102.3%나 올랐다. 1991년 이후 물가상승률은 3000%가 넘는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계속 올린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78%다. 지난해 총통화(M2) 증가율은 70%, 실효이자율은 113%다. 빈곤율은 36.5%다. 아르헨티나의 주식인 소고기 값은 2월 한 달간 35%나 올랐다. 물가를 잡으려면 강력한 긴축 정책이 필요하다. 1984년 예산을 동결한 한국처럼. 그러나 복지의 단맛을 본 아르헨티나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정책이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이렇게 망가진 것은 포퓰리즘과 쿠데타, 정정 불안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1946년 후안 페론은 ‘조합주의, 민족주의, 민중주의’로 아르헨티나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집권했다. 페론은 최저임금·유급휴가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해고금지법을 만들었다. 연금 혜택을 확대, 소득의 8%를 연금 보험료로 걷고 47세에 은퇴하면 소득의 82%를 연금으로 받게 했다.

그 결과 노동의 정치화, 노동자의 세력화가 이뤄졌다. 1942년 54만7000명이던 노조원은 1947년 150만 명, 페론 집권 말기인 1954년엔 604만 명으로 급증했다. 페론은 노동자를 중심으로 군부·가톨릭·여성·중산층 등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1951년 선거에선 62%의 사상 최다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1947년부터는 ‘경제 독립’을 내세워 외국계 기업과 철도· 가스· 전화· 전기·조선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외채를 갚고 자립경제를 추구했다.

그의 집권시절 경제는 완만하나마 성장했고 불평등은 해소되고 있었다. 농축산물 수출로 벌어들인 자금을 복지정책에 쓴 결과다. 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 확대, 성장의 선순환이 일시적이나마 이뤄졌다. 그러나 1,2차대전에서 중립을 지킨 아르헨티나에 대한 미국 유럽의 제재로 수출이 막히고, 농축산물 수출가격이 폭락했다. 막 산업화를 시작한 아르헨티나는 외화 부족과 과도한 복지로 재정수지가 나빠지면서 경제가 뒤뚱거리기 시작했다. 급격히 단행하였던 모든 개혁과 복지정책의 파탄이 서서히 드러났다. 야당과 언론의 공격에 강경책으로 맞서던 페론은 가톨릭 교회, 군부와도 반목한 끝에 1955년 9월 쿠데타로 축출됐다.

그 후 집권한 군부 정권이나 문민정권 어느 쪽도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한 복지정책을 없애지 못했다. 또 부패했다. 기초가 튼실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복지정책은 정권 유지를 위해 계속되어야 했다. 페론에게는 포퓰리즘만이 아닌 식민지적 유산을 청산하려는 개혁정책이 있었다. 그러나 페론 이후의 정권은 개혁 대신 값싼 복지정책을 남발했다. 게다가 1976년 군정시절 시작된 무모한 개방정책과 신자유주의 정책은 결정타가 됐다. 민영화, 규제 완화, 무역개방 속에 국민경제가 금융 투기자본의 천국으로 바뀌면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망가졌다. ‘단기 호황, 퍼주기, 재정 적자, 부채 증가, 통화 증발, 인플레이션, 국가 부도, 긴축, 국민 반발, 퍼주기’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노동자 농민, 서민을 위한 복지는 필요하다. 그러나 성장 없는 분배우선은 허구다. 한번 시작된 복지정책은 멈출 수가 없다. 정치가 엉망인 나라 역시 계속 발전할 수 없다. 남한의 27배 국토에 인구는 4700만 명인 나라. 원유를 비롯 자원 대국인 아르헨티나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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