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초 외국계 행동주의펀드가 국내 원조..20년만에 괄목상대
1세대 ‘장하성펀드’ 거쳐 2세대 ‘토종 행동주의펀드’ 대거 활동 나서
순기능-역기능 평가 엇갈리는 가운데 '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 기대

[편집자주] 올해 주주총회에서 단연 돋보인 건 행동주의펀드입니다. 오스템임플란트, KT&G, 태광산업, 에스엠엔터테인먼트(SM) 등 주주가치 관련 이슈가 있는 기업의 주총 현장에 등장해 대주주와 경영진을 성토하고 주주의 몫을 요구한 토종 행동주의펀드를 시장에서는 'K 행동주의펀드'라고 부릅니다. 이들의 '주총장 습격사건'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 '찻잔속 태풍'이 되고 말았지만 시장에 남긴 족적은 적지 않습니다. 우선 K 행동주의펀드의 활약으로 후진적 지배구조로 대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개선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의 불씨를 봤다는 투자자도 있고, 해외로 눈돌리고 있는 국내 2030 투자자의 발길을 국내로 유턴시키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나옵니다.  데일리임팩트는 이들 K행동주의펀드의 움직임을 6차례의 기획기사로 정리했습니다.   

지난 달 30일 전주 JB금융지주 본사 3층 강당에서 개최된 제10기 정기주주총회 현장 / 사진=박민석 기자
지난 달 30일 전주 JB금융지주 본사 3층 강당에서 개최된 제10기 정기주주총회 현장 / 사진=박민석 기자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올해초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경영권 다툼은 국내 자본시장은 물론 업계의 큰 이슈였다.

엔터업계 3대장(SM‧YG‧JYP)의 하나인 SM은 국내 연예기획사의 효시이자 아이돌 시장의 문을 연 1세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란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 분쟁의 서곡은 설립자이자 최대주주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지분을 매각하면서 울려퍼졌다. 경영권 다툼이 본격화되자 주가는 치솟고 경영권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경영권은 카카오가 가져가고, 하이브와 플랫폼 협력을 강화하는 선에서 결론이 났지만 불씨는 남아 있다. 사실상 카카오의 승리란 평가지만, 하이브 역시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거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가 지난 9일 온라인 간담회에서 최근 7개 금융지주사에 전달한 '주주환원확대' 관련 서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박민석 기자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가 지난 9일 온라인 간담회에서 최근 7개 금융지주사에 전달한 '주주환원확대' 관련 서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박민석 기자 

연초부터 존재감 과시한 ‘행동주의펀드’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카카오와 하이브 못지 않게 주목받은 곳이 바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이다.

스스로 ‘행동주의펀드’라고 소개하고 있는 얼라인은 불과 1% 남짓한 SM 지분을 지렛대 삼아 SM 경영진을 압박했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소유한 라이크기획에 SM이 매년 총매출의 6%를 로열티로 지급해온 거래 구조를 정면 비판하며 내부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결국 이 요구가 받아들여져 SM과 라이크기획의 계약은 종료됐다.

전쟁의 목적이 경영권이란 점에서 SM과 라이크기획의 계약종료는 어쩌면 '작은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얼라인이 문제 제기한 ‘주주가치 제고’는 경영권 전쟁의 명분이 됐고, 사실상 도화선이란 점에서 얼라인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얼라인 뿐이 아니다. 최근 국내 자본시장에서 발발하고 있는 주요 지배구조 이슈에는 어김없이 행동주의펀드가 등장하고 있다.

올해 주요 기업의 정기주총에서도 행동주의펀드는 두드러지는 활약을 했다. 행동주의펀드가 제안한 안건 중 대다수는 주총 표결 문턱을 넘지 못해 무산됐지만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지배구조 개선 등 민감한 이슈로 소액주주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찻잔 속 태풍으로 끝냈지만 ‘절반의 성공’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이슈에 따라 주주 또는 경영진의 흑기사, 때로는 백기사를 자청하고 나선 행동주의펀드는 각종 이슈의 중심에서 지속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디자인=김민영 기자
디자인=김민영 기자

외국계가 문 연 행동주의펀드 시장

국내 주식‧투자시장에서 행동주의펀드가 존재감을 드러낸 건 지난 2000년대 초반 이다. 2003년 최태원 회장을 포함한 SK그룹 내 주요 최고경영자 교체를 제안한 소버린, 그리고 KT&G와 자회사 매각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 칼아이칸(2006년)이 대표적이다.

이후 다소 잠잠했던 행동주의펀드의 활동은 지난 2015년 외국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반대 이슈로 다시 재점화됐다. 당시 이슈는 이재용 현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 시도와 맞물리면서 큰 주목을 받았는데 엘리엇은 양 사의 합병에 반대하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다.

물론 당시에도 토종 행동주의펀드는 있었다. 2006년부터 약 6년여간 운용된 라자드자산운용의 ‘라자드 한국기업 지배구조 펀드’가 그것이다. 장하성 당시 고려대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가 투자 고문을 맡아 소위 ‘장하성펀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해당 펀드는 당시 벽산건설, 크라운제과, 한솔제지, 태광산업 등 시장에서 다소 저평가받았던 기업들에 진입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당시에도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수익 추구’에만 치중한다는 비판과 함께 사회적 책임은 등한시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장하성펀드는 1세대 토종 행동주의펀드로서 추후 등장하는 2세대 펀드의 교과서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최근 2세대 행동주의펀드는 과거 1세대 및 외국계 펀드보다 경영권 확보와 같은 ‘기업사냥꾼’ 이미지가 다소 옅어진 경향이 있다”라며 “소위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 또한 이처럼 다소 온건해진 행동주의펀드의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올해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삼성전자 경영진이 사업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 없음 / 사진=삼성전자.
올해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삼성전자 경영진이 사업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 없음 / 사진=삼성전자.

2세대 행동주의펀드, 명과 암은 ‘뚜렷’

최근 국내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행동주의펀드는 대부분 토종 펀드다. 소위 2세대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토종 행동주의펀드로는 △얼라인파트너스 자산운용 △안다자산운용 △KCGI(강성부펀드) △트러스톤자산운용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올해 주요 기업 정기주총에서도 맹활약하며 적극적인 주주제안 활동을 전개했다.

토종 행동주의펀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우선 기업가치 제고와 경영진 견제 등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특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행동주의펀드들의 활동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주가 상승, 장기적으로는 지배구조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행동주의펀드의 타깃이 된 기업들은 이들이 단기 수익에 치중할 경우 정당한 경영 활동에 큰 제약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행동주의펀드와는 별개로 소액주주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모여 단일대오를 형성, 주주제안에 나서는 사례도 포착된다. 이들이 상정하는 안건 중 대다수 또한 이사 또는 감사위원 선임 건인데 모두 기업 입장에선 경영권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박우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데일리임팩트에 “불합리한 지배구조 개선을 내걸고 등장한 행동주의펀드 중 일부는 단기 주가를 높여 수익을 내는 약탈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다”라며 “단기 이익을 위해 기업을 공격하거나 기업 경영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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