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 해설위원실장

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2019년 6월 18일 KBS 1TV의 시사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창>은 ‘태양광 사업 복마전’이라는 이름으로 미래 청정 에너지원으로 추진되던 태양광발전사업에 각종 비리가 얽혀 있음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냈다. 방송에는 태양광 사업에 청와대가 관련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즉각 반발했고, 이후 예정됐던 재방송이 취소되었다. KBS의 제작진은 제작 자율성을 침해당했다는 의견을 냈지만 더 이상의 논란 없이 넘어갔다.

태양광사업의 문제점을 파헤친 KBS 시사기획 '창'. 사진 KBS뉴스 홈페이지..
태양광사업의 문제점을 파헤친 KBS 시사기획 '창'. 사진 KBS뉴스 홈페이지..

그렇지만 보도의 여파는 컸다. 전국의 태양광사업은 혹 비리가 없는지, 각 자치단체들이 검증도 하고 사업 추진과정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이어졌다. 한 달 후 녹색드림협동조합 등 서울시 산하의 태양광 장비업체 3곳이 고발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태양광 주택 지원을 맡은 업체가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업체에 불법 하도급을 맡기는 등 불법이 많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곧 태양광 문제는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원자력발전의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태양광사업이 장려되면서 전국이 태양광 패널로 뒤덮이는 상황으로 확대되고 있었지만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에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가 거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이 프로그램으로 해서 태양광사업을 둘러싼 이권 챙기기와 불법이 횡행하고 있음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이후 사업 전반을 다시 점검하게 되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KBS의 보도였다고 하겠다. 치우치지 않고 정확한 언론의 보도는 사회의 목탁이자 등불이 된다는 것을 이 사례를 통해 다시 확인한 셈이다. .

언론이 사회감시 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회에는 불법과 비리가 횡행하고 정부의 시스템이 왜곡되고 자원이 낭비되고 국민들의 부담이 늘어난다. 또한 언론사나 언론 종사자가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진영에 가담하면 자기편의 잘못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모른 척하고 결국엔 그것이 그 정권의 앞날에도 영향을 준다. 2019년 1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했던 경기방송의 여기자가 퇴사를 하였고 그 기자가 소속된 방송사도 22년 역사를 접고 폐업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또 그 전전 정권에서 청와대 주변 권력의 문제를 ‘십상시’라는 표현으로 고발했던 한 일간지도 그 뒤 경영진이 바뀌는 사태로 이어졌다. 모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권력과 그 주변에 의해 빚어진 일이지만, 그렇게 언론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가 결국엔 정권의 올바른 길을 막았으며 그 이후 정권과 권력의 교체가 이뤄진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언론이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은 사익 추구나 진영논리에 빠지지 말고 엄정한 시각에서 사안을 바로 보고 올바른 지적을 해야 한다. 그게 저널리즘의 역할이고 우리가 바라는 길이다. 지엽적인 문제나 말꼬투리를 잡거나 몰래 녹음과 촬영 등으로 무언가 큰 것을 잡은 듯이 떠들고 매달리는 것은 언론이 할 일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과거 방송이나 활자로 행해지던 언론의 전달방법이 인터넷이나 SNS을 통해서 이뤄지는 시대가 되면서 언론을 빙자한 얄팍한 정치적 행위나 영리 추구, 개인의 이익 챙기기, 인권 침해가 빈발하고 있다. 최근 대장동 사건의 수사 진행과정에서 일부 언론인들이 수천,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드러나 해당 언론인과 언론사가 사과한 사례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어느 언론학자의 지적처럼 디지털화로 인해 저널리즘 자체가 위기에 직면했으며, 저널리즘 윤리와 원칙을 중심으로 하는 언론 규범성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사회를 통합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언론의 길을 방해해 사회 분열의 공범이 되게 하고 있다는 의심도 커졌다. 언론의 자유, 혹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을 내걸고 정도를 벗어난 행태가 심해지고 있는데도 정치권이 이를 이용하고 언론 스스로 품위 없는 선동의 유혹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러 방송사의 로고.
 우리나라 여러 방송사의 로고.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역사를 시작한 KBS가 이달 초 출범 50주년을 맞아 공영방송의 역할 강화를 다짐했다. KBS 보도의 공정성 여부는 계속 논란이 되어 왔고, MBC나 다른 방송들에 대한 공정성 시비도 여전하다. 정권은 늘 방송사들의 수장을 자기편으로 바꾸려고 한다. 그만큼 방송이 정치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대통령실은 최근 ‘TV 수신료와 전기요금 통합 징수 개선, 국민 의견을 듣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국민참여 토론게시판에 올렸다. 의견 수렴을 하겠다는 뜻이고, 그 이면에는 KBS의 중립성 문제에 대한 불만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있다.

사실 공영방송, 혹은 방송의 공정성은 우리 사회를 지키는 최소한의 보루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방송은 정치권의 영향을 벗어나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부 종사자들부터,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관련 당사자들이 진영을 벗어나 엄정한 시각에서 공영방송을 위해 마음을 합쳐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사는 방법이다. 그러지 못할 경우 외부로부터의 간섭이나 견제의 빌미가 된다.

​당장은 인터넷과 SNS에서의 보도에 관한 대책이 필요하다. 현재 인터넷 게시글로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당사자 또는 대리인의 신고로 해당 게시글을 30일 동안 블라인드 처리하고, 이의 제기가 없으면 삭제하는 제도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조치는 임시적인 것이므로 보다 확실한 제도적인 장치가 강구되어야 할 것이고, 특히나 진실이 아닌 허위성 보도로 돈을 많이 번 것에 대해서는 신속히 불법적 이익을 회수하고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구독자 수가 수십 만 되는 유튜브는 기성 언론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고 사회적 영향력도 크지만 현행법상 방송도 아니고, 인터넷 매체도 아니다.

유튜브나 SNS상 1인 미디어처럼 사실상 미디어 기능을 하는 곳도 언론중재법상 언론에 포함시켜 공론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런 장치는 언론 자유의 위축 문제, 그리고 엄정한 기준의 제정과 운영 등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적어도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것만으로도 언론의 책임을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언론과 언론인들의 올바른 길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전향적 대응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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