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중순 미국 시애틀의 명소 ‘파이크스 플레이스 마켓’. 사거리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오자 바스켓을 손에 쥔 십여명의 젊은이들이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바스켓에 들어있던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그들을 보며 관광지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플래시몹((flash mob)쯤으로 여겼다. 그게 바로 아이스버킷 챌린지였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건 며칠뒤 국내뉴스에서 거기 동참하는 연예인들 이름을 보고나서였다.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즉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됐다는 이 캠페인은 지난 한달동안 유명 연예인들의 지명도에 힘입어 강한 전파력을 갖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무대로 한없이 퍼져나갔다. 덕분에 많은 지인들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동영상을 수없이 봤다. 자녀와 함께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친구들도 있었고, 기부처를 루게릭병 관련단체 대신 우리 단체로 해달라는 호소도 여럿 들었다.

‘찬물에 뛰어들든지, 아니면 종교단체에 기부하라’는 도전적 메시지를 품은 ‘콜드워터 챌린지’가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로 변형된 게 지난 6월말쯤이었고, 한 여성이 루게릭 병을 앓고있는 남편을 위해 자녀와 함께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에 올린 시기가 7월초였다. 얼음물을 끼얹을 때 일시적으로 느끼는 근육수축이 루게릭병의 증상과 비슷해 시작됐다는 설명이 붙은 건 그 후다. 단순해 보이는 이벤트가 불과 두달여만에 세계를 휩쓸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사회적 경제를 꿈꾸는, 혹은 사회적 경제 영역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우리 사회를 위해, 변화를 이끌어간다는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일해왔지만 아직은 대중속으로 깊이 들어가지못했다. 그들에게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놀이로서 기부행위’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줬고, 대중과 호흡하는데 뭔가 새로운게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져준 것이다.

한여름에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행위, 계절적으로 참 적절했다. 이게 11월에 시작됐다면 어땠을까. 누군가로부터 기부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을 소셜네트워크에서 공개적으로 받았을 때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갖게될까. 자신을 아는 그 많은 페이스북친구들 앞에서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누군가 철저히 기획하고, 방향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 성공요인을 따져가다보면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참고할게 한둘이 아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에서 확인한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 우리 주위엔 기부, 혹은 자선행위에 목마른 사람이 매우 많다. 남을 도울 준비가 이미 돼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방법을 모른다. 매월 월급에서 자동이체하는 식으로 의무감처럼 하는 기부 말고,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그런 기부를 원하는데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이런 욕구를 한순간에 해소해줬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군가와 엮여있고,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뭔가 하고자한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기구에 주목한다. 사회공헌이나 윤리경영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 곳에 취업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회사업무에 지쳐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들을 찾는다. ‘한 통화에 2000원! 따뜻한 사랑을 전해요’라는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며 전화기를 든다.

기부할 자세가 돼있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건 우리 기부문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맡겨지는 성금, 특히 수십억원 수백억원대의 거금은 기업체 이름이다. 월급에서 강제로 떼는 성금의 형태다. 자원봉사는 타의에 의한 봉사로 변질된지 오래다. 취약계층 수용시설을 찾아 봉사하거나, 빈민가 연탄배달을 하는 것도 회사 공식행사의 일부이자 승진의 조건이 됐다.

수많은 사회적 기업가들이 영리만큼이나 숭고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 그러나 먼저 기업으로서 성공하기가 쉽지않다. 기부문화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개인의 선의에 기반을 둔, 적극적 기부 및 자선행위가 아이스버킷처럼 폭발할 여력은 충분한데 우리 사회가 그걸 이끌어내지 못한다. 사회적 경제, 특히 기부문화와 관련해서는 대중을 끌어들이는 흡인력 강한 장치를 고민할 시점이다. 재미있고, 쉽고, 감성을 자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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