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보 논설위원, (사)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대표

민경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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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이면 혼자서 얼굴을 붉히곤 하는 일이 있다. 60여 년 전 필자가 한 거짓말 때문이다. 새 학년을 앞두고 마주치는 어르신들마다 묻는 얘기가 있었는데, “너는 반에서 몇 등 하냐?” “전교에서는?” 그럴 때마다 그분들의 기대감을 채워주기 위해 등수를 앞으로 옮기는 거짓말을 했다.

등수에 대한 희망, ‘세계에서 몇 등 하는데?’로 시작하는 등수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앞으로 밀어 올리고 싶은 유혹이 일어날 법하다. 가끔 들여다보는 OECD통계에서도 얼굴이 붉어지곤 하는데, 각종 통계에서 드러나는 우리나라의 등수 때문이다.

필자의 관심 사항인 재활용률에서 우리나라는 재활용을 아주 잘 하는 세계 3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CNN에 보도되었던 의성의 쓰레기 산이나 바젤협약(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처리에 관한 국제협약) 개정을 불러왔던, 필리핀으로 수출되었다가 되돌려 받았던 ‘컨테이너 쓰레기’ 등으로만 보더라도 세계가 이 등수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EU의 폐기물에 관한 법률(WFO 2008/98/EC)에서 재활용이란, 원재료 또는 기타 목적으로 폐기물을 제품, 재료 또는 물질로 재처리하는 회수(Recovery)작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유기물질의 재처리가 포함되지만, 에너지 회수 및 연료로 사용되거나 뒤채움 작업에 사용되는 물질에 대한 재처리는 재활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EU가 얘기하는 자원순환의 순서는 필자가 늘 얘기하던 것으로, 폐기물 배출을 최소화하도록 예방하고, 발생된 폐기물은 먼저 재사용하고, 그다음에 물질 재활용, 그 나머지로 에너지 회수(폐기물 소각 포함), 마지막이 생물학적 재활용인 퇴비화를 함으로써 매립을 최소화하고자 함이다.

이런 연유로 EU는 재활용률에서 물질 재활용만 통계로 잡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에너지 회수도 재활용에 포함하고 있다(폐기물관리법의 ‘재활용’ 정의). EU가 물질 재활용만 인정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한 논리에 근거한다. 한정된 지구자원의 한계를 인식해서 자원을 아끼자는 것이다. 결국 양적 순환에서 질적 순환으로 옮겨가야 자원순환이 바르게 됨을 의미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제기구에 보고하는 통계가 한 국가의 데이터로만 활용되던 시대는 지났다. 재활용정책의 성과지표로 활용되고 홍보되던 재활용률이 탄소중립과 순환경제의 등장으로 이들의 진척도 평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통계치는 기대치에 맞추어 이리저리 손봐서 올린다고 가려질 숫자가 아니다. 누군가는 이 통계를 분석하고 그것의 잘잘못을 평가하고 조목조목 지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을 1월 13일 공고했다. 역시나 원전의 비중이 대폭 늘어나고 LNG 또한 늘어났으며,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태양광을 지금 상태에서 정리 정돈하고, 풍력이나 다른 분야를 찾아 늘리겠다고 하는 등 에너지의 수급 체계가 바뀌었다. 지난 2021년 COP26(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대폭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부문은 30.2%에서 21.6%로 크게 하향 조정되었는데, 이마저도 도전적 수치라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낮아진 신재생에너지 목표는 세계에너지 흐름과는 달라 아무래도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제주도는 그렇지 않다. LNG(36.3%)와 신재생에너지(29.6%), 해저케이블(전남 해남)로 오는 HVDC(30%,고압직류 송전), 그리고 폐기물 소각에너지(3.9%)가 전부다. 화력발전소나 원전이 없는 청정지역으로, 오히려 전기차 대세에 대비하기 위해서 신재생에너지가 앞으로 더 늘어날 계획이라고 한다. 타 지자체는 제주도를 벤치마킹해 에너지 정책을 세우면 어떨까 한다.

입춘이 지나도 동아시아 추위가 아직인 것은 기후변화임을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여태껏 누르고 있었던 난방비가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우리 집 관리비도 대폭 올랐다. 거기에 더해 러-우크라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공급망 불안은 국가안보 차원의 에너지 수급 안정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는데, 여야는 서로가 난방비 폭탄의 주범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이게 싸울 일이 아니라 이런 다중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궁리해내야 하는 것이 정치인들이 할 일일 텐데, 에너지문제 가지고도 싸우기나 하고 있다.

전기는 산업의 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기 소비는 독일, 영국보다도 많은 세계 5위(2019)이며 최대 전력증가에서도 4위로 꼽히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고효율 기기 사용, 효율 관리, 스마트에너지 관리에 이어 우리의 전기사용 습관을 고치는 행동 변화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제 전기절약 생활화에 모두가 동참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할 때이다.

이 와중에도 다행인 자료는 전기품질면(호당 정전시간이 얼마인지로 평가)에서 일본(8.0분) 다음인 2위(8.9분)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독일(10.7분), 미국(47.3분)의 품질을 보면 우리나라 전기품질이 좋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제조업, 특히 반도체 등 정밀산업 분야의 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전기품질이 좋은 나라임을 적극 홍보해야겠다.

그나저나 1등이 아무리 좋다 해도 이런 통계는 정말 싫다. 명품 소비 세계 1위(모건스탠리의 명품소비 분석보고서)에 코리아가 등극했다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얘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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