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승진 후 첫 사장단 인사…경쟁력 제고 의지

차세대 반도체·네트워크·AI 인재 전진 배치…중기 비전 실현

브랜드 전략·홍보·중국 담당 강화…대내외 위기 대응력 제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돌이켜 보면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지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히며, (지금이야말로)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할 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첫 용인술이 베일을 벗었다. 2020년과 2021년 깜짝 인사를 단행했던 점을 고려하면 전체적으로는 안정적 기조가 깔렸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혁신을 요구했다. 

신임 사장 7명 중 6명은 1960년 이후 출생한 50대로 교체했다. 사상 최초로 C레벨급에서 여성 전문경영인이 탄생했다. 반도체 선행기술 연구개발(R&D)과 제조 공정 전문가를 전진 배치했고, 네트워크 사업부, 중국 사업 담당에게 힘을 실어줬다. 

특히 연구개발 조직의 변화는 이채롭다. 이재용 회장이 러브콜을 보냈던 승현준 사장은 앞으로 연구 생태계 확장과 글로벌 인재 영입에 나서게 됐다. 

초격차 기술력과 대내외 위기 대응력을 강화해 삼성전자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구상이 엿보인다. 

‘명예 회복‘ 꿈꾸는 삼성전자…‘성공 DNA’ 이식

이 회장은 수뇌부를 유임시켰다. DX와 DS부문을 이끄는 한종희 부회장, 경계현 사장 체제가 1년 더 연장됐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김기남-김현석-고동진 트로이카 체제를 투톱으로 바꾸면서 기존 경영진을 모두 교체했다. 대외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2년 연속 리더십을 교체할 경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이 회장의 복심으로 불리는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 역시 자리를 지켰다. 정 부회장은 전자계열사의 인사나 투자 전략과 같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컨트롤타워 복원이 대한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점을 이루어 보아 정 부회장의 어깨가 무거워지게 됐다. 부회장 직속 조직으로 승격된 사업지원TF가 당분간 전자 지원조직의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사업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사장단에서는 경쟁력 제고가 시급한 분야에 변화를 주는 시도가 이뤄졌다. 올해 사장단에 새로 합류한 인물은 총 7명으로 지난해의 2배 수준이다. 

(왼쪽부터) 김우준 DX부문 네트워크사업부장, 송재혁 반도체연구소장 겸 DS부문 CTO. 사진. 삼성전자. 
(왼쪽부터) 김우준 DX부문 네트워크사업부장, 송재혁 반도체연구소장 겸 DS부문 CTO. 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차세대 통신, 생활가전에서 성공 DNA 이식이 이뤄질 것으로 여겨진다. 

반도체의 경우, 공정과 소재 개발 전문가를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송재혁 반도체연구소장은 이번에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를 겸하게 됐다. 서울대에서 반도체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송 사장은 반도체 공정과 소자개발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V낸드 세대 전환, 초적층 낸드플래시 개발을 비롯해 메모리 반도체 공정 개발부터 양산까지 삼성전자가 기술 리더십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네트워크 사업부 출신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김우준 DX부문 네트워크사업부 전략마케팅 팀장이 네트워크사업부장으로 낙점됐다. 서울대 전자공학 박사 출신의 김 사장은 네트워크사업부 상품전략그룹장, 북미BM그룹장, 차세대전략그룹장, 미주BM그룹장, 전략마케팅팀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영업·기술·전략 분야에서 사업 성장을 주도했다. 

전경훈 DX부문 네트워크사업부장은 DX부문 CTO와 삼성리서치장을 겸임할 예정이다. 포항공대 교수 출인 전 사장은 통신기술 전문가로 정평이 나있다. 2012년 삼성전자 입사 후 차세대통신연구팀장, 네트워크 개발팀장, 네트워크사업부장을 역임하며 5세대(5G) 이동통신 세계 최초 상용화를 이끌었다. 

승현준 DX부문 삼성리서치장은 삼성리서치 글로벌 R&D 협력담당으로 옮겼다. 승 사장은 뇌 기반의 인공지능(AI) 연구를 개척한 세계적 석학이로 유명하다. 지난 2018년부터 삼성리서치 최고연구과학자(CRS)로서 삼성전자 AI 전략 수립과 선행 연구를 자문하다가 2020년 삼성전자에 전격 합류했다. 

네 사람의 공통점은 성공이다. 성장 잠재력에 대해 의구심이 제기되거나, 사업 전략 재검검이 필요한 분야에 검증된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시장 지배력과 미래 준비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이후 메모리 선행기술 개발 일정을 공유하고 공격적 행보를 예고한 상태다. 경쟁사들에게 세계 최초 타이틀을 빼앗기자, 1000단 낸드 등을 빠르게 출시해 설욕전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메모리반도체 신화를 이끈 인재들에 차세대 반도체 R&D와 반도체 위탁생산 분야를 맡기는 개편이 이뤄졌다. 당시 반도체연구소장으로 기용된 송 사장에게 CTO를 겸직하도록 한 건 메모리의 성공 방정식을 사업 전반에 녹이려는 시도다. 메모리 선행기술 확보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네트워크사업부 출신들에게 무게가 실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회장은 5G를 미래 전략 사업으로 낙점해 집중 육성 중이다. 수주 과정에서 상대측 핵심 경영진을 직접 만나 설득에 나설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미국, 일본 주요 통신사와 수주 계약을 체결, 전략 마케팅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성공 사례를 만든 인물에게 네트워크사업 성장 방안을 모색하도록 맡겨 사업 확대의 포석을 깐 것으로 풀이된다.   

DX 기술 R&D 수장으로 네트워크사업부장을 낙점한 것 또한 DX 성공 신화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는 지적이다. 6G까지 포함해 차세대 통신 연구를 신속하게 진전시키는 한편, DX 부문의 기술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전초작업이다. 특히 DX 부문은 비스포크 그랑데 AI 강화 유리문이 파손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결과, 기술 신뢰도가 하락했다. 미운오리새끼에서 기대주로 네트워크사업부를 변모시킨 전 사장에게 선행기술 연구개발 과정을 점검하고 사물인터넷(IoT) 같은 첨단 기술을 접목한 신사업 발굴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승 사장은 합류만으로도 기사가 쏟아질 정도로 의미가 남다른 인사다. 글로벌 AI센터 설립, AI 우수인력 영입을 주도하며 삼성전자의 AI 연구 기반을 닦았다. 때문에 승 사장에게 임무를 내렸다는 시각이 있다. 향후 기술 주도권은 AI를 얼마나 빨리 선점하고 상용화하느냐에 달렸다. LG, 카카오, 네이버 등 국내 기업들이 초거대 AI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SK(사피온), KT가 AI반도체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음에도 삼성전자는 잠잠하다.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진 승 소장에게 해외 선진연구소 협력, 인재 영입을 통해 R&D 생태계를 넓혀 격차를 좁히라는 주문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왼쪽부터) 남석우 DS 부문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제조담당, 박승희 CR 담당, 백수현 DX부문 커뮤니케이션팀장, 양걸 중국전략협력실장,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진. 삼성전자.
(왼쪽부터) 남석우 DS 부문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제조담당, 박승희 CR 담당, 백수현 DX부문 커뮤니케이션팀장, 양걸 중국전략협력실장,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진. 삼성전자.

대내외 변수 증폭…‘방어전선’ 강화

올해 시장에서 위기론이 고개를 들며 삼성전자는 곤혹을 치렀다. 매출이 꾸준히 성장했지만 주가 흐름은 반대였던 탓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라는 네임밸류에 걸맞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커졌다는 의미”라며 ”기업가치에 빨간불이 들어온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전과 달리 조직 관리에서 누수가 발생했다. 전직 임원이 특허를 놓고 회사와 소송을 벌이는가 하면, 기술 유출 시도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복수의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겨냥한 사정의 칼날도 조여들고 있다. 미중 갈등, 유럽·일본의 반도체 육성 전략,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 세계 각 국의 친환경 정책 강화 같은 변수 또한 증폭되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방어전선을 재구축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이 회장은 마케팅, 홍보, 환경안전 역량을 지닌 인물들에게 위기 대응력을 강화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하라는 주문을 남겼다. 

남석우 DS 부문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은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제조담당을 맡는다. 반도체 공정 개발·제조 전문가인 남 사장은 반도체연구소에서 메모리 전 제품의 공정 개발을 주도해왔다. 게다가 DS 부문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지냈다. ESG 공시 의무화에 대비해 안전사고, 노조 리스크가 부상하지 않도록 고려한 인사로 보인다. 

SBS 보도국 부국장 출신인 백수현 DX 부문 커뮤니케이션팀장,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박승희 삼성물산 건설부문 커뮤니케이션팀장의 영전은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이 깊다. 유력매체와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총수에 대한 부정 여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읽힌다. 특히 박 사장은 CR 담당으로 낙점됐는데, 이 회장의 지배력에 영향을 줄만한 입법안에 대응하는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야당이 밀어붙이는 삼성생명법이 대표적이다.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은 브랜드 선호도, 나아가 기업가치를 향상시키는 마케팅을 맡을 전망이다. 로레알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인 이 사장은 200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갤럭시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이다. 그동안 숱하게 승진대상으로 거론됐지만 부사장 승진 10년 만에야 사장으로 올라섰다. 삼성전자가 새 브랜드 전략에 갈증을 느낀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사장은 삼성전자 최초의 여성 사장이다. 그 자체로 스토리가 된다. 더욱이 고객 가치·경험이라는 DX 부문의 목표를 마케팅으로 잘 녹여냈다. 갤럭시, 비스포크의 충성도를 다지는 작업을 할 공산이 크다. 

지정학적 변수를 상쇄할 원포인트 인사도 있었다. 양걸 중국전략협력실 부실장은 중국전략협력실장으로 승격됐다. 양 사장은 승진자 중 유일한 60대다. 양 사장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방증이다. 양 사장은 다양한 해외 판매법인을 거치며 반도체 영업마케팅에서 역량을 입증한 인물이다. 대체제가 없는 반도체와 달리 스마트폰, 생활가전, TV 등 중국내 소비재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중국시장 개척을 위해 전담조직까지 꾸렸지만 점유율은 0%대에 가깝다. 꽌시를 중시하는 문화가 아직까지 강한 데다, 최근 애국소비 경향이 세진 까닭이다. 중국 네트워크를 지닌 양 사장을 활용해 중국 사업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미국발 리스크를 최소화하 방안을 찾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이 회장은 국적,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용병술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의 원동력을 마련하겠노라고 구상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이로 인해 임원급 인사에서 새 인물을 발탁해 세대교체와 조직 혁신을 꾀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지난해 40대 부사장 10명과 30대 상무 4명이 선임됐는데, 올해는 대상자가 늘어날 수 있다. 아울러 역량을 입증하지 못한 만 60세 이상 임원은 용퇴할 것으로 점쳐진다. 60세룰을 엄격하게 적용해 분위기 쇄신을 노리는 것이다. 이미 삼성전자는 국내외사업장 임원들에게 퇴임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