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해설위원실장

이동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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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방위산업부로,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림산업부로, 건설(국토)교통부는 건설교통산업부로, 문화부 역시도 문화산업부로.”

​지난달 27일 대통령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보도가 되었다. "국방부를 방위산업부로"라는 말은 국방부를 방위산업부로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요즘 세계에서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의 방위 관련 산업들을 더 발전시키자는 뜻에서 한 말이라고 알려졌고, 마찬가지로 "문화부 역시도 문화산업부로"라고 한 말도 문화의 산업적 측면을 키워서 우리 경제에 기여하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설명이 붙긴 했다. 비상경제 민생회의 석상에서 나온 대통령의 이 말에 대해 언론들은 "전 부서의 산업화를 지시했다"고 풀이하고 있어 국방도, 문화도 산업화시켜야 한다는 식으로 앞으로 정책의 방향이 잡힐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문화산업부라... 대한민국 건국 이후 대통령이 문화를 산업의 발상으로 뛰라고 하는 말은 정말 처음 듣는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문화는 상품처럼 숫자로 계량하는 영역이 아니라 무형적이면서도 정신적인 측면의 영역일 터인데 이를 산업부처럼 생각하고 뛰라는 주문을 한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걱정을 했지만 문화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을 알게 하는 발언이었다. 즉 문화를 수출진흥을 위한 방편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나만 받는 것일까?

​그럼 앞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은 해외로 문화상품을 많이 팔고 체육대회에서 우승해 상금을 많이 받아오고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들어 외화 가득이 엄청 늘어나는 방향으로 세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이것이 정말 대통령의 뜻이라면 대통령으로서는 엄청난 외화 가득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놓치게 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직무유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또 BTS(방탄소년단) 관련인데, BTS가 부산 공연을 한 다음에 군대를 가겠다고 발표한 이후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이 BTS가 군 복무를 함으로써 한국이 연간 수십억 달러를 벌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보도를 한 것이다.

이것에서 보듯 BTS가 공연을 못 하면 사실상 엄청난 외화 수입을 포기하는 것이 되는데,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지만 정부의 대책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 BTS는 군대를 가는 것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이로써 이들로부터 들어올 외화가 중단될 것이 뻔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의 책임은 문화 부문 종사자의 군대 문제를 스포츠 분야와 형평성 있게 처리하지 않고 방임한 문화체육관광부에 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가 나빠질 것에 대비해 대통령이 문화부 쪽도 수출 증진에 동참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가꾸어오고 세계가 사랑하는 우리의 문화예술이 수출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야 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로 인해 돈이 더 들어올 수 있다면 그것은 다행스럽고 좋은 일이지만 돈을 앞에 세운 문화예술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깎아버리는 슬픈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0년에 정부가 문화부를 전담 독립 부서로 발족한 것은 프랑스의 경우처럼 우리의 우수하고 독창적인 문화 발전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문생활과 도서관 업무를 문화부 쪽으로 몰아주고, 시민들의 생활에서도 문화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박물관과 생활문화 조직을 강화한 개혁으로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이런 취지에 따라 문화의 위상을 높이고 예술종합학교 설립 등 우수예술인 양성시스템을 구현해서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문화 한류, 즉 K-컬처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올해 이어령 전 장관이 별세한 해에 마침내 그러한 문화 우대의 개념이 무너지고 이제 수출 증진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BTS가 군대를 가겠다고 하자 국방부는 이들이 군에 가도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 공연도 공익적인 목적에 한정되어 있을 것이고, 또 함께 모여 연습을 하지 못하는 공연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세계인들의 호응이나 공감을 받을 것인가? 정부로서는 BTS의 과실만 빼먹겠다는 발상 아닌가? 그것은 이들을 해외에 개별 진출하는 축구선수인 것처럼 생각하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해외에 나가 있는 축구선수들이, 국가 대항 경기가 있을 때 국가대표로 불러 뛰게 할 수 있는 것처럼 BTS도 국가적인 행사에 이들이 공연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는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문화예술도 그저 잠시 손발만 맞추면 축구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BTS가 군대를 가지 않도록 특혜를 주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 문제는 음악가 등 문화예술인들에게도 올림픽에서의 메달을 따는 스포츠인들과 형평성 있는 대우를 해주자는 것이다. 또 이들은 필요할 때에 아무 때나 개별적으로 차출해 쓸 수 있는 선수들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그런 특수성을 감안하거나 적극적인 문화예술 지원정책을 포기한 채 그저 뒤처리에만 급급한 인상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잇달아 이뤄진 국악방송 사장 인사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의 인사를 보면 수많은 경험 있는 전문가들을 다 제쳐 놓고 경력도 맞지 않는 캠프 인사들만을 임명함으로써 문화예술계에 큰 실망을 주고 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문화에 관한 한 눈에 띄는 정책을 거의 발표한 바 없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서는 이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수출 증진을 위한 문화상품 개발에 나서지 않을까 싶다.

이제 우리의 문화예술계는 제품 생산을 위한 시스템으로 바뀔 것이고, 개개 예술인들의 창의력과 협력적인 팀웍에 의한 새로운 수준 높은 창조활동은 기대하기 어려울 확률이 아주 높다. 지도층의 인식이 이런 바에야 우리가 문화강국의 구현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세계인들이 감동하는 콘텐츠를 어떻게 찾아내고 만들어낼 것인지?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는 올해, 우리는 백남준 씨가 그렇게 목이 메어 강조했던 창조력과 예지력을 키우는 아무런 모멘텀도 찾지 못하고 곧 해를 접을 것이라는 예상밖에는 할 수 없는 암울한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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