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환율·고물가에 금융 비용 상승…기업 경영 위축

한화·롯데케미칼·현대차 등 시장 우려에도 공격적 M&A

유망 기업도 유동성 위기…호황기 대비한 선제 투자 차원

경기 침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주요 대기업들이 인수·합병(M&A)에 연달아 나서 눈길을 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경기 침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주요 대기업들이 인수·합병(M&A)에 연달아 나서 눈길을 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한 달은커녕 일주일 뒤도 가늠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기업들 사이에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기업들의 활력이 떨어진 가운데, 원자재 가격 급등, 환율 인상, 금리 상승이 겹쳐서다. 

게다가 이번 위기는 이전과는 결이 다르다는 게 경영계의 분석이다. 코로나 19 극복을 위해 세계 각 국이 내놓은 경기 부양책이 복합 위기를 불렀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적정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는 한 금융·통화정책은 보수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기업의 경영 부담이 가중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주요 기업들이 인수·합병(M&A)에 시동을 걸고 있어 이채롭다. 경영 불확실성이 가중될수록 한계기업도 늘어나는 만큼, 옥석을 가려 호황기를 대비하겠다는 전략이다. 

발동 걸린 M&A 본능

경영계의 최근 화두는 단연 M&A다. 최근 2년 간 코로나19로 움추러들었던 기업들의 투자 본능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섰다. 한화그룹은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산은)과 조건부 투자합의서(MOU)를 체결했다. 한화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대우조선 지분 49.3%를 확보할 계획이다. 14년 전과 비교하면 인수가는 3분의 1 수준인 2조원 규모인데다, 산은의 대우조선 매각 의지가 강한 만큼, 인수 환경은 나아졌다. 

다만 한화그룹이 감수해야 할 변수도 있다. 스토킹 호스로 진행되기 때문에 공개경쟁입찰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경쟁자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강성으로 꼽히는 대우조선 노조가 매각 반대 여론을 키우며 파업을 예고한 점도 위험 요소다. 친환경 선박 수요와 노후 선박 교체 수요로 인해 조선업이 호황기로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대우조선의 불안정한 재무구조도 문제다. 대우조선의 부채는 10조4741억원, 자산의 90% 가량이 빚이다. 부채 비율이 무려 676.5%에 달한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간 누적 순손실도 7조원을 웃돈다. 

그럼에도 한화그룹이 대우조선을 품기로 한 것은 효용성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자주포, 장갑차 등을 수출하며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 받은 방위산업과 미래 먹거리인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동반 성장 효과를 낼 것으로 판단했다. 대우조선은 잠수함을 비롯한 특수선 건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해상 생산부터 운반, 연안 재기화 설비(FSRU)까지 관련 기술도 갖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과 연계해 육해공을 아우르는 통한 방산체계를 구축하고 유지보수(MRO)와 같은 신사업 진출을 노릴 수 있다. 친환경 에너지 체계를 구축하고 한화솔루션, 한화에너지 등과 함께 태양광, 수소, 해상풍력, 암모니아 사업에서 사업 확대를 꾀할수도 있다. 

롯데케미칼 공장 전경. 사진. 롯데케미칼.
롯데케미칼 공장 전경. 사진. 롯데케미칼.

롯데케미칼은 일진머티리얼즈와 막바지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이다. 불안정한 시장 환경으로 높은 인수가에 부담을 느낀 경쟁자들이 입찰을 포기하면서 롯데케미칼만 본입찰에 단독 참여하면서, 인수가 급물살을 탔다.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3%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은 인수가는 2조5000억원 수준. 3조원대에서 낮아진 만큼, 투자 부담은 줄었지만 시장의 우려가 적지 않다. 유동성을 고려해 3조원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 중 일부만 M&A에 투입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회사채 발행처럼 외부 자금을 끌여들인다면,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진다. 더욱이 인수 이후 동박공장 증설과 같은 투자가 필요하다. 수조원대의 추가 지출이 수반돼야 하는 것이다. 롯데케미칼이 그룹의 현금 창출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무 구조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도 롯데케미칼은 인수 의지를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미국 배터리 소재 사업 투자기업인 롯데 배터리 머티리얼즈 USA의 주식 100주를 2750억원에 추가 취득하는 등 자금 조달에 들어갔다. 동박사업의 유망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전기차 배터리 필수 소재인 동박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13%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SK넥실리스에 이어 2위를 점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를 품는다면 전기차 배터리 소재 사업에서 추진력을 확보하게 된다. 2030년까지 연간 매출 5조원을 달성, 세계적 전기차 소재 기업으로 발돋음하겠다는 목표에도 다가설 수 있다. 특히 첨단 기술 분야에서 다른 그룹에 뒤쳐졌던 롯데그룹에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우려에도 ‘Go’

시장의 회의적인 시각을 뿌리치고 M&A에 나선 기업은 또 있다.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 스타트업 포티투닷 지분 93.2%를 4276억원에 인수한다. 현대차는 55.9%의 지분을 확보해 최대 주주에 올랐고, 기아는 37.3%의 지분을 손에 쥐게 됐다. 

포티투닷 초기 투자자였던 현대차그룹이 경영권 인수에 나선 데에는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과 무관치 않다.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차에서 미래 모빌리티로 중심 축을 옮기고 있다. 그러자면 자율주행 핵심 기술력을 빠르게 향상시켜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모빌리티 플랫폼을 개발해 온 포티투닷의 기술력이 시너지를 낼 것으로 봤다. 

문제는 포티투닷과 현대차그룹의 기술 출발점이 다르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은 라이다, 포티투닷은 카메라와 레이더를 각각 활용한다. 포티투닷의 방식을 따라간다면 현대차의 자율주행 기술 로드맵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완전자율주행 구축에서 테슬라와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득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포티투닷은 자율주행 관련 소프트웨어부터 하드웨어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룬데다 실시간 교통 상황 분석, 고도화된 최적화 경로 추천, 인공지능(AI) 기반 매칭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공급망이 더해졌으니 자율주행차 양산에 속도를 올릴 수 있을 뿐더러, 소프트웨어 기술을 확용한 새 수익모델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고금리에 따른 기업활동 영향. 자료. 대한상공회의소.
고금리에 따른 기업활동 영향. 자료. 대한상공회의소.

알짜 매물에 지갑 여는 기업들

사실 기업들의 경영 상황은 썩 좋지 않다. 고금리의 영향으로 기업활동은 위축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기업 307곳에 물어봤더니, 61.2%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영업이익과 생산·운영비용을 고려했을 때, 감내할 수 있는 기준금리는 2.91%, 현재 2.5% 수준인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아슬아슬하게 수익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경영계에서는 기준금리가 3%를 넘어설 경우, 적지 않은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도 시중 대출금리가 5~6%에 달하는데, 3%를 웃도면 최소 7~8%의 이자는 감당해야 한다. 기업들마다 고정금리 전환, 대출금 상환 유예, 비상경영체제 돌입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물가와 환율 안정을 위한 선제적 대응이 이어진다면, 재무적으로 곤경에 빠지는 기업이 늘게 된다. 주요 대기업들이 M&A에 시동을 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들이 차입 같은 외부 수혈을 통해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때문에 금융비용 증가할수록 한계기업이 늘어난다. 알짜기업이라 해도 재무 건전성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현재의 불확실성이 언제 끝날지 예단하기 어렵다. 2년 이상 경영 효율화로 버텼지만,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산업계 재편 속도가 가속화된 까닭에 신사업 투자를 멈출 수도 없기에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라도 매물로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경영체제를 통해 현금을 쌓아뒀던 기업들에게는 경기 불황이 기회가 된 셈이다. 

무엇보다 불황기 투자는 일종의 보험이 될 공산이 크다. 설비 투자나 유망 기업을 인수해 버틸 여력만 있다면,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업 경쟁력을 높여 호황기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기회비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대기업은 신사업 하나를 추진하려 해도 규제나 기존 사업부와의 조율 등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면서 “기존 회사를 인수할 경우, 당장 매출을 낼 수 있고 시장 지배력을 단시간 안에 끌어올릴 수 있다. 이에 M&A를 추진하려는 대기업들의 움직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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