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요새 차를 운전하며 우회전하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금년 7월부터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과 시행령 등에는 보행안전을 위해 중요한 3개 조항이 포함되었다. 이미 보도되고 홍보하는 바와 같이 우회전할 때 보행자 보호를 위한 일시정지 의무, 보행 우선도로를 도로의 한 종류로 정식 도입, 보행과 차량의 구분이 없는 도로(보차혼용도로)에서 보행이 중심이고 운전자가 보행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 등 보행자 안전을 위한 사항들이 추가되었다.

이런 변화는 교통안전 확보 수준을 훨씬 넘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시설을 개선하고 바꾸는 차원을 넘어 사람들(특히 운전자)의 인식과 가치를 바꾸려는 의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 한마디로 사람이 차를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차가 사람을 존중하고 보호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교통문화가 바뀌어야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일시정지 교통표지판. 이는 단순히 차를 세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차를 세우고 좌우를 잘 살펴 보행자를 보호하며 운전하라는 의미다. 교통표지를 넘어 우리 사회나 개인들도 이제는 한 번쯤 서서 주위의 이웃과 주변의 세상을 둘러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일시정지 교통표지판. 이는 단순히 차를 세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차를 세우고 좌우를 잘 살펴 보행자를 보호하며 운전하라는 의미다. 교통표지를 넘어 우리 사회나 개인들도 이제는 한 번쯤 서서 주위의 이웃과 주변의 세상을 둘러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오랜 기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덕분에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수(2021년 통계)가 2916명으로, 통계가 시작된 1970년 이후 처음 2000명대에 들어섰다(도로교통공단 2022.5.27.발표). 교통사고 사망자 중 비중이 큰 보행 사망자 수도 1018명으로 전년 대비 6.9%(75명) 감소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결코 즐거워할 때가 아니다. 2019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2.5명)는 OECD 30개국 중 29위다.(도로교통공단, 2021,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인구 대비(10만 명당) 사망자 수 통계도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며 영국, 일본 등의 2배 이상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얼마 전 자동차 정기검사 알림 통지를 받았다. 검사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또 무엇인가 살펴보니 자동차의 기계적 성능 등을 2년에 한 번씩 검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몇 년 전 자동차를 새로 살 때 자동차회사에서 10년이나 중요 기능에 대해 품질보증을 해 준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이렇게 자동차 제조기술이 발달했는데 왜 매 2년 주기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검사를 하는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배출가스 검사나 좀 의미가 있을까?

생각난 김에 그럼 기계가 아닌 사람(운전자)을 상대로 하는 검사는 어떻게 하는지 찾아보았다. 면허별로 다른데 1종(적성검사)은 7년 또는 10년 주기로, 2종(면허갱신)은 9년 또는 10년 주기로 하고 있으며 65세 이상은 5년 주기로 한다. 그 내용은 주로 질병이나 신체적 장애 등을 중점적으로 체크한다.

통계가 보여주는 대로 우리나라 교통사고에서 특히 보행자 교통사고가 취약점인 것을 생각할 때 현재 교통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검사나 체크는 무엇인가 중요사항을 놓치고 있는 느낌이다. 자동차의 기계적 성능에 대한 정기검사가 보행자 대상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그리 유효해 보이지 않으며 운전자의 육체적 운전능력 검사도 역시 보행사망자 감소라는 목표와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교육이나 체크에서 자동차 성능이나 운전자의 육체적 운전능력이 아니라 운전자의 보행자 인지 감수성을 바꾸고 고양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보행자는 운전의 장애물이나 지장물이 아니라 생명과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서 존중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보행자일 때는 이런 것이 당연하게 이해되던 것이 운전대만 잡으면 통째로 잊어먹고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데 있다.

왕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캠페인을 통한 교통문화 저변의 확산과 반복된 교육과 시험 등을 통한 체화(體化)의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와 같이 사회변화가 빠른 시기에 9년이나 10년 주기로 운전자를 체크하는 것도 적절치 않은 것 같다. 꼭 학습장에 모여 교육이나 시험을 보지 않더라도 이제는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이를 대신할 수 있다. 차를 길들여야 하는데 자꾸 보행자를 길들이려 하는 인식과 행정에서 이제는 정말 벗어나자.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