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8월 24일은 한·중수교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한중관계는 엄청나게 변화해왔다. 수교 자체가 한국전쟁이 낳은 양국 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통상적 국가관계에 불과하였지만 2008년에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특히 양국의 경제관계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하였다. 1992년 수교 초기, 64억 달러에 불과하던 한·중 무역 규모는 작년에 3015억 달러로 47배 증가했다. 우리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4.0%에서 24.6%로 크게 확대되었고, 수출과 수입은 각각 50배, 30배 증가하면서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대상국이자 수입대상국으로 부상하였다. 더구나 최근 들어 한·중 무역액은 한·미-한·일 무역액을 합한 것보다 많고, 2018년까지 중국은 한국의 최대 외화벌이 시장이었다. 예컨대 2018년 556억 달러, 2019년 290억 달러, 2020년 237억 달러, 2021년에는 243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였다. 중국 시장이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관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16년 이후 사드 배치 문제로 양국 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고, 미·중 전략적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우리의 외교적 자율성이 위협을 받고 있다. 한·미·일 대 중·러·북 간의 진영 대립이 강화됨에 따라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 해결에 중국의 협력을 얻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미·중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글로벌 경제통상 환경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으며, 중국 산업 구조의 고도화로 인해 한중간 교역 구조가 경쟁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한중 국민 간의 부정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최근 설문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응답자의 70.3%가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진 반면 긍정적인 인상을 가진 비율은 11.8%에 불과하다. 2019년 조사에서는 부정적 인상이 51.5%였는데 3년 만에 거의 20%가 증가하였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이유를 묻자, 54.9%가 ‘사드 보복 등 중국의 강압적 행동’을 꼽았다. 결국 사드를 비롯한 양국 간의 현안이 해결되더라도 중국이 강압적인 대외정책을 계속하는 한, 국민의 반중 정서가 줄어들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시진핑 정권이 들어선 후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부르짖으면서 2050년까지 세계 최대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이를 실현하려면 중국의 강압적 대외정책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한국은 중국의 강압적 대외정책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까?

첫째, 한중 간의 주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외교협상에서 우리가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서두르는 쪽이 양보를 많이 해야 하므로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한·중 수교 협상, 문재인 정부의 사드 관련 3불(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참여 않기) 선언 등을 보면 중국의 만만디(慢慢的) 전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점을 알 수 있다. 한·중 수교협상에서 우리가 조기 수교에 매달리는 바람에 우리 외교는 ‘하나의 중국’을 비롯한 중국측 요구를 거의 모두 수용해 버렸다. 또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중국의 협력을 얻기 위해 조기에 사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바람에 지나치게 중국에 양보하였다.

이처럼 우리는 한·중 외교협상에서 곧잘 시간 싸움에서 패하는 경향이 있다. 협상은 느긋하게 밀고 당겨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 안에 무얼 이루려다 보니 중국에 많은 양보를 하였다. 앞으로 이런 점에 유의하여 우리가 중국과 협상해야 한다.

둘째, 우리의 국력이 강해지지 않으면 대중 외교력이 강해질 수 없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는 과학기술의 우위가 중요하다. 한국이 섬유,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스마트폰, 조선, 전기·전자 제품, 기계 부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을 때, 중국은 결코 한국을 강압적으로 대할 수 없었다.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후 경제력과 기술력이 급속도로 신장되면서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였다. 2000년 마늘 파동이 수교 후, 첫 양국 간 통상마찰이라는 점이 이것을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기술적 우위가 사라지면 중국은 한국을 더욱 무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과학 기술의 신장을 비롯한 국력 강화가 절실하다.

셋째, 오늘날 우리는 국제사회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고 판단해야 대중 외교가 성과를 올릴 수 있다. 특히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어느 기준과 좌표에 서서 정책을 운용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미·중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인권, 자유주의 국제 정치경제질서, 다자주의, 비핵화, 평화 수호, 국제개발 협력, 다원주의 등을 비롯하여 우리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둔 원칙 있는 외교를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국제정치경제 상황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외교를 하는 경우 미·중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이다. 예컨대 싱가포르의 경우 강대국이 아니지만 국제사회에서 일관된 원칙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미·중이 모두 싱가포르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우리나라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한미동맹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올바른 결정이라고 본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배터리, 반도체를 비롯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협력하기로 결정하여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칩4(한국, 미국, 일본, 대만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 예비회의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에 중국이 반발하지만, 우리는 ‘공격적 설득전략’을 통해 IPEF, 칩4가 ’중국 배제용‘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미국엔 개방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꾸준히 일관성 있게 이루어져서 성과를 올려야 한국의 대중 외교에서 전략적 자율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중 외교력을 강화하는 방안은 비슷한 외교노선(like-minded)을 가진 나라와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강대국을 설득하고 우리의 외교공간을 넓혀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중진국이 미·중을 비롯한 강대국을 설득하여 우리의 국익을 신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중진국끼리 협력하여 강대국을 설득하고 압박해 나가야 한다. 이미 우리 정부는 MIKTA(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튀르키에, 오스트레일리아)를 만들어 운영해오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진국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우리 외교의 자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최근 3개월 동안 대중 무역적자가 발생하였는데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고 양국 간의 교역 구조가 바뀌는 상황이라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사드 이후 한국 기업이 중국의 대안을 찾아서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으로 진출하였는바, 앞으로 중국시장의 대안을 더 많이 찾아 나서야 한다. 중국을 경시해서는 절대 안 되지만, 또 중국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더욱 안 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격언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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