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한다. 언어가 사유를 지배한다고도 한다. 말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기능이다. 동물도 의사 표현을 한다고 하지만 인간처럼 감정을 상세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정치인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멋있는 말 한마디에 유권자들은 일희일비한다. 말 한마디에 열광적인 지지나, 야유를 보낸다. 정치인에게 말과 타이밍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예는 무수히 많다. 2차대전 때 노변정담으로 미국인의 마음을 하나로 이끌었던 루스벨트나,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밖에는 드릴 것이 없다”라는 명연설로 영국인의 대독 항쟁의지를 끌어낸 처칠이 좋은 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도 심금을 울린 명문장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여러분의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라고 한 말은 불멸의 언어로 남아 있다.

남의 나라까지 갈 것도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장인의 6·25 때 부역 논란이 일자 “그러면 사랑하는 아내를 장인 때문에 버리라는 말이냐”는 한마디로 기혼 여성 유권자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비록 그것이 말뿐이었지만-.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인들은 이런 기본 상식을 모르는 것 같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이 최근 대통령실 인사와 관련, 내놓은 해명은 매를 벌었다. 그는 특혜 채용 논란과 관련, “장제원에게 압력을 넣었다”, ”7급 별정직을 부탁했는데 9급으로 채용됐다”, ”최저임금 수준으로 서울에서 어떻게 생활하나. 강릉 촌놈이…” 등의 발언을 했다.

권 대표의 진의를 따져 보면 별 문제가 될 말이 아니다. ‘대통령실 직원은 별정직으로, 캠프 등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들어가는 게 관행이다. 캠프에서 일한 사람이 9급 하위직에 채용된 것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은 정치적 공격이라는 것이 그가 말하려고 한 본뜻일 것이다.

그러나 말이 거칠다. 절제되지도 않았다. 9급도 들어가려고 줄을 선 사람들에게는 분명 불공정하게 비칠 것이다. ‘강릉 촌놈 운운’은 강릉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쁜 말이다. 그는 “해당 직원이 캠프에서 일하던 청년이고, 어떠어떠한 능력을 가졌으며,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 채용됐다”고 차분하게 해명해야 했다. 그리고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미흡한 점이 있다. 미처 챙기지 못했다. 죄송하다. 앞으로 조심하겠다”는 말로 이해를 구해야 했었다.

사실 ‘대통령실 직원의 사적 채용 운운’은 민주당의 정치공세다. 문재인 정권의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체제에서 채용된 직원들은 운동권, 시민단체, 민변 출신이 다수였다. 그들도 공개적 채용과정을 거쳐 채용되지 않았다. 지금 대통령실 직원 다수는 일반 공무원 출신이다. 캠프 출신은 소수다. 캠프 출신이 대통령실 등 별정직에 채용되는 것은 선거 승리에 대한 논공행상으로 관행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이해나 납득은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오만하게 이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국민은 진의를 꼼꼼히 따져 보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은 걸핏하면 “과거에는 더하지 않았느냐. 우리가 민주화 운동할 때 당신들은 어디서 무얼 했느냐”며 쥐꼬리만 한 민주화운동 경력을 우려먹었다. 국민은 그들의 이런 언행에 질렸다. 그 결과 문 정권은 버림받았다. 그런데 현 정권이 이를 따라 하고 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말실수도 잦다. 정제되지 않은 말을 한다. 모두 야당에게는 공격의 소재가 된다.

옛날에는 SNS, 유튜브가 없었다. 기자들이 정치인의 말을 듣고, 진의를 따져 잘잘못을 보도했다. 국민은 한 번 걸러진 말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정치인이 말을 잘못해도, 실수를 해도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개인 하나하나가 다 언론이다. SNS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고 전파할 수 있다. 파괴력도 엄청나다. 신문 방송은 이제 SNS를 무시할 수 없다. 정치인이 SNS에 목메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말을 가려서 품격 있게 해야 한다. 작가나 배우처럼 국민의 감정선도 적절히 자극할 줄 알아야 한다. 윤 대통령의 말실수와 거친 말, 이재명 의원의 욕설 등 품격 없는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말 한마디에 지지율은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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