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남자를 만나는 낙원동 ‘송해길’

서울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 앞에 마련된 송해 추모 공간.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서울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 앞에 마련된 송해 추모 공간.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2022년 6월 8일. 비보가 날아왔다. 매주 일요일 낮 12시 10분, ‘딩동댕’ 소리와 함께 힘찬 목소리로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던 송해 (향년 95세)의 부고였다. 이제 코로나도 조금씩 진정되고 'KBS 전국노래자랑'도 새롭게 시동을 걸려던 찰나였다. 장수의 아이콘이자 100세 시대 대표 시니어로 멋지게 살던 그는 세상 모두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청중을 휘어잡고, 전국을 다니며 함께 웃고 울던 좋은 친구로 오래도록 기억될 이름. 밝고 아이같이 웃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그의 훈기가 남아 있는 서울시 종로구 ‘송해길’로 향했다.

출근길에 이름을 새기다
송해길은 법정 도로명인 수표로 전체 1.44km 가운데 종로2가 육의전 빌딩에서 낙원상가 앞까지 240m 되는 길이다. 종로2가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송해길’이라고 쓰인 현판이 보이면 그때부터 길이 시작된다. ‘송해길’, 그 이름답게 곳곳에 송해 얼굴이 담긴 캐리커처가 눈에 많이 보인다. 식당 안에서는 송해 사인 혹은 사장과 함께 찍은 사진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송해길 곳곳에서 송해의 캐리커처와 사인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송해길 곳곳에서 송해의 캐리커처와 사인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이 길은 2016년 5월 종로구 주민들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송해가 사무실로 사용하는 ‘연예인 상록회’가 수십 년 전부터 낙원동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 스케줄을 제외하고 늘 이곳으로 출근해 시간을 보냈다.

실향민인 송해에게 사무실이 있는 종로구 낙원동 일대는 고향을 대신하는 공간이 됐다. 봉사활동이나 행사 등 대소사에 큰 어른으로서 의견을 듣고, 조언하며 지역 활동에 앞장섰다. 어르신 문화를 선도하는 분위기도 함께 자리 잡으면서 그의 역할 또한 커졌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송해는 종로구 명예 구민이 됐다. 5년 후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길 '송해길'이 생겨났다. 

전국노래자랑의 사회를 보는 송해의 모습이 락희거리 벽면에 그려져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전국노래자랑의 사회를 보는 송해의 모습이 락희거리 벽면에 그려져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이곳은 송해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어르신 세대가 많이 이용해왔다.  부랑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가 조성한 어르신 친화거리 ‘락희(樂喜)거리’도 송해길 근처에 있다. 락희거리 조성 초기에는 ‘어르신들도 모르는 어르신 거리’라며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걸린 환경 정화 사업을 통해 지금은 어르신 대상 기타 연주 아카데미, 시니어 다방 등이 있다. 

값싸면서도 푸짐하게 음식을 내주는 식당, 저렴한 미용실, 옛 음악을 LP로 들을 수 있는 음악 감상실, 라이프 카페가 즐비하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낙원상가와 종묘 주변은 장기와 바둑을 두는 시니어들로 인산인해였다. 종이컵에 담은 막걸리, 이른바 ‘잔 막걸리’를 파는 손수레도 종종 볼 수 있었다. 

2019년에 만났던 송해. 요즘도 여전히 인기 있는 K하트로 친근하게 인사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2019년에 만났던 송해. 요즘도 여전히 인기 있는 K하트로 친근하게 인사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송해길에서 만난 송해
3년 전인 2019년 3월에 어르신 놀이공간을 취재할 당시 송해길에서 진짜 송해를 만나 예정에 없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가 대중교통 애호가인 덕분에 벌어진 일이었다. SNS에 지하철을 타고 있는 모습이 종종 회자될 정도로 송해는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연예인이었다. 건강 비결을 이야기할 때 “나는 BMW를 타고 다닌다”는 말을 자주할 정도. 즉, 버스(Bus)나 지하철(Metro)을 타고 될 수 있으면 걸어서(Walking) 다닌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무실로 이동하는 동안 길에서 대중과 만나 인사 나누고, 이야기도 하며 연예인 같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전국노래자랑에서 봐왔던 푸근한 모습 그대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인터뷰 영상을 보니 송해 옆에 다가와 사진을 찍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90 넘은 나이라지만 그는 사는 동안 언제나 인기스타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송해길에 자주 오실 것을 당부했다. 2000원짜리 국밥을 뜨끈하게 먹고 나면 하루가 든든하다고 소개도 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익선동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알렸다. 

시니어세대가 자주 이용하지만, 요즘은 익선동이 데이트 명소가 되어 밤에는 골목 식당과 포장마차거리에 젊은 층이 많이 늘었다.  

현재 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 앞, 송해 흉상이 있는 곳에는 종로구의 지원으로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송해… 그리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으며, 그가 살아생전 활약하던 모습을 작은 모니터를 통해서나마 만나볼 수 있다. 추모 공간은 6월 말까지 운영된다. 

7월 실버영화관(옛 허리우드극장, 대표 김은주)에서 49재 행사를 지원하고, 9월 21일 (사)송해길보존회와 함께 주민 화합과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고 송해 100일 추모행사’를 개최한다. 

‘죽음’을 대하는 것은 언제나 슬프지만, 그는 따뜻한 웃음을 남기고 행복하게 떠난 이 시대의 신사로 기억될 것이다. 그가 모든 세대와 허물없이 소통하며 지냈듯, 천국에서도 세상에 남은 이들을 위해 좋은 기운을 보내줬으면 한다.

추모 공간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추모 공간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종로2가 버스 정류장에서 송해길 입구가 바로 보인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종로2가 버스 정류장에서 송해길 입구가 바로 보인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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