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바뀌어야 할 사람은 학부모다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이번 주에는 교육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자고 했지요? 새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교육 시스템을 고친다고 해 먼저 ‘국가 이념’ 내지 ‘국민 철학’을 마련한 다음 고치라고 말씀드리려 고른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음 연재로 미루고, 지금 우리나라 각급 학교의 ‘교실 풍경과 아빠 찬스’를 함께 논의해보자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가 이렇게 주제를 바꾼 건 다음 주제를 예고하고 6일 뒤인 4월 13일,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고3학생을 선생님이 깨우자 “왜 자는 사람을 깨우느냐”고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가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칼을 훔쳐다가 선생님을 난자했다는 보도를 보고, 교육 철학보다는 이 문제가 더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끔찍해 이런 사태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검색했지요. 고등학생들만이 그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생들까지도 담임 선생님을 집단 폭행하고, 스커트자락 속 은밀한 부위를 찍어 SNS에 올리는가 하면, 자기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학교운영위원회에 회부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아버지는 수업 중에 교실로 난입해 담임인 여 선생님 목을 조르면서 욕설을 퍼붓고….

더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해당 학교나 시·군 교육청을 비롯해 법률 체계, 그리고 정치인들의 태도였습니다. 해당 학교나 교육청 간부들은 사회에 알려지면 체면이 구겨진다는 생각에 철없는 애들이 한 짓이니 덮어두자고 당한 교사에게 강요하고, 그래서 포기하면 형사소송법 327조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 조항에 의해 처벌을 면하고, 재판으로 끌고 가도 미성년자 인권 보호 규정 때문에 처벌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정치인들은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민법상 미성년자인 고등학교 3학년까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데 앞장서고….

장차 이 나라가 어찌 되려나 하늘을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데요. 그러다가 아주 문득 전국의 학부모들이 나서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데요. 그리고 뒤늦게 공부해 고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은 1977년 5월에 만난 어느 학부모의 얼굴이 떠오르데요.

그때 제가 부임한 학교의 학부모들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대학교수인 학부모는 학급마다 한두 분씩 있었고,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 1915~2001) 회장, 대우그룹 김우중(金宇中, 1936∼2019) 회장을 비롯한 재계의 지도자들은 물론 장·차관과 고급 장성들이 줄줄이였습니다. 학교 뒤쪽 학동(鶴洞) 단독 주택과 압구정동(狎鷗亭洞) 아파트들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것도 이런 분들이 자기 자식을 우리 학교에 넣기 위해 밀려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때 마음속으로 모신 분은 좀 엉뚱하지만 당시 육군 참모총장 서 모 장군이십니다. 제가 그분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학교 방문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교무실 앞에서 모자를 옆구리에 끼고, “육군 참모총장 ○○○, 아무개 담임 선생님께 용무 있어 왔습니다.” 고함을 지르며 경례를 붙인 다음 뚜벅뚜벅 담임 선생님 앞으로 걸어가셨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깜짝 놀라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제가 본격적으로 그분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한 것은 그해 5월 스승의 날을 지나고 며칠 뒤였습니다. 그러니까 전 교사를 한남동에 있는 참모총장 공관으로 초대하실 때부터입니다. 우리는 공관 거실에서 기다리실 줄 알았습니다. 직속 상관인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 이외에는 앉은 자리에서 만나는 게 관례니까요.

그러나 정문까지 마중 나오시더군요. 안내를 받아 들어간 거실에는 70여 명의 술상이 차려져 있더군요.

“애야, 잠깐 내려와라. 선생님들 오셨다.”

2층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불러 내리더니 자기가 무릎을 꿇고 한 잔씩 따르고, 아들에게도 그렇게 따르게 한 다음 다시 올려 보내시더군요.

3학년생인 아들이 올라갔는데도 무릎을 펴지 않으시더군요. 교감 선생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이 나라의 국방을 책임 지는 분이 무릎을 꿇고 계시니까 황망해서 마실 수 없다”고.

그러자 무릎을 펴면서 그러시더군요.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군바리라서 자식 놈들은 제가 제일 높은 줄 압니다. 선생님들이 저보다 더 높다는 걸 알아야 말씀을 잘 듣고, 공부를 잘할 것 같아서요.”라고.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재벌이나 다른 세력가네 아이들은 가발을 쓰고 룸살롱을 드나들다가 재수 삼수를 하고, 그런 애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특례입학을 시켰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그분 아들만은 모범생으로 졸업하고, S대학을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엿본 모습을 본격적으로 흉내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3년 뒤 제주대학교 교수가 되고, 집사람과 두 딸을 불러 내린 뒤부텁니다. 집사람은 딸내미들 교육 때문에 안 내려오겠다고 버티대요. 그래서 나 아직 늙지도, 젊지도 않았다고 협박해 겨우 끌어내리고 나니까 무슨 방법을 쓰든지 어느 정도까지는 길러야 하겠데요.

그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제가 사범대학에 근무하고 있어서 어느 학교든 상당수의 선생님들이 제 제자였고, 큰딸에게 배정된 고등학교는 제가 실무를 감독하는 사대부속고등학교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란 애들에게 걱정스러운 것은 제주라는 섬 문화였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분을 흉내기로 했지요. 그러니까 해마다 스승의 날 며칠 뒤에 수업애 들어오시는 선생님들 모두를 조촐한 식당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담임 선생님께는 명절 때마다 술 한 병씩을 보내고. 딸들이 다니는 학교를 방문할 때는 교무실에 먼저 들러 담임 선생님께 인사를 올리고 양수거지(兩手擧止)를 한 채 딸의 학습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심코 한 짓이긴 하지만, 지금도 그분 흉내를 제대로 낸 건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바뀌고 문학 교과서가 처음 생겼을 땝니다. 아이는 수업시간에 배운 문학관의 유형이 잘 이해가 안 된다며 묻더군요.

마침 서울의 몇 대학 교수들이랑 ‘문학의 이해’를 집필하던 때라서, ‘표현론적(表現論的) 관점’, ‘효용론적(效用論的) 관점’ 하고 줄줄이 떠오르더군요. 그러다가,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다. 선생님께 여쭤봐라.”라고 한 다음 입술을 콱 내리눌렀지요.

딸내미는 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님이라면서 그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을 짓더군요. 그러나 제 설명과 그 선생님의 설명이 차이가 나고, 혹시 그분 설명에 잘못이 있다면 딸내미가 비교하면서 깔볼지 모르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그 애의 성적으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니까 워낙 수줍음을 잘 타는 아이라서 선생님께 질문했을까 궁금하데요. 그래서 사물을 보는 방식으로 에둘러 설명했지요. 가령 아름다운 장미꽃을 봤다고 하자. 그 꽃에 대한 내 느낌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표현론적 관점이고, 그 꽃의 쓸모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효용론적 관점이라는 식으로….

놈은 ‘아하! 접때 말한 문학관도 이렇게 나눌 수 있겠구나!’ 하더군요.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지도해 고액 과외 같은 것을 안 시켰습니다. 대신 매월 목표를 정하고, 월례고사가 끝나면 저녁을 사주면서 결과를 묻고, 목표에 도달했다면 이쁘다고 등을 토닥여주고, 목표를 뛰어넘었다면 그 애가 가보고 싶어 하는 곳까지 드라이브를 시켜주고, 모자랐다면 원인과 해결할 방법을 묻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과목은 방학 때 우리 대학 학생들한테 아르바이트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쳐 두 딸을 모두 괜찮은 대학, 저와 같은 국문과로 보내고, 입학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불러내려 연구실 창작 팀에 끼워넣고, 스무 살 때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와 저명한 문예지로 등단시키고, 박사와 교수로 만들고, 사위까지 국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로 얻을 수 있었던.

그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냐고요? 네에. 그렇지요. 그러나 인간관계와 심리는 거의 같습니다. 그러니까 자식의 인격적 스승은 부모이고, 학문의 스승은 선생님이시고, 교육자도 사람이라서 자기를 멸시하거나 귀찮게 하는 사람은 멀리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멀리하는 사람의 수업은 아무리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옛날 절대군주들이 ‘군사부(君師父) 일체’라느니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며, 자식들의 스승을 깍듯이 모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식을 잘 기르고 싶으세요? 그리고 금쪽 같은 내 새끼들에게 아름답고 평안한 나라를 물려주고 싶으세요? 그럼 저처럼 자식들 선생님들께 아빠 찬스를 써보세요.

먹고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하느냐고요? 돈을 바라고 사는 과외 선생님들이 아니면 아십니다. 마음으로만 위해 드려도 그 마음을 당신 자식들에게 전해 주실 겁니다.

어느덧 약속한 지면을 넘어서기 시작하네요. 다음 연재는 교육부 인수 작업이 원만히 진행되면 이번 주 미뤄뒀던 교육이념 문제를, 그럴 상황이 아니면 상속법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안녕, 오월에 만나요,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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