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문화'의 뿌리와 가지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안녕하세요? 창밖 아파트 뜨락 나무 가지들의 꽃눈이 발그스름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네요. 이번 주에는 우리 문화의 문제점인 ‘빨리빨리’의 심리적 근원을 생각해보자고 했지요?

제가 이 주제를 제안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혼란이 이 빨리빨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일상적 사고들은 물론, 사랑한다며 몇 번쯤 쫓아다니다가 안 만나준다고 당사자와 그 부모까지 찔러 죽이는 사건을 비롯해, 우리들의 지도자가 되어 새 역사를 열겠다는 분들과 그 가족들의 웃음 나오는 짓 모두가…

그야 어느 시대나 인간 공동의 욕망이 아니겠느냐고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2004년 독일 본(Bonn) 대학 한국어문학과 초청으로 특강하고 점심을 먹을 때 이런 빨리빨리는 농경민족이 더 심하고, 그걸 고치지 않으면 ‘해체’는 물론 정치와 경제가 발전할수록 더 심해져 마침내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함께 논의해보자고 한 겁니다.

뭘 강의했는데 그런 걸 깨달았느냐고요? 일종의 문화지리학(文化地理學)으로, 자연환경이 인간을 어떻게 자극해 어떤 특질의 작품을 탄생시키는가 하는 논의였습니다. 그러니까 영국의 젊은 철학자 어니스트 흄(T. E. Hulme, 1883∼1917)이 ‘휴머니즘과 종교적 태도’에서 말한 ‘생명(vital) 예술과 기하학적(geometric art)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요. 독일의 미술사가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 1881∼1965)가 모은 자료를 근거로 삼은 논리로서 청강자들을 간접적으로 추켜 세워주려고. 

   철학자 어니스트 흄(왼쪽)과 미술사학자 빌헬름 보링거.
   철학자 어니스트 흄(왼쪽)과 미술사학자 빌헬름 보링거.

요약해서 말씀 드리면, 자연환경이 가혹한 지방에서는 그 공간에서 벗어나려는 ‘외피(畏避) 의식’이 형성되어 영속적인 것을 갈망하면서 추상성ㆍ경직성ㆍ엄숙성을 강조하는 ‘기하학적 예술’이 발달하고, 부드러운 지방에서는 친밀감이 형성되어 인간성ㆍ소박성ㆍ사실성을 강조하는 ‘생명 예술’이 발달한다며, 전자의 예로는 고대 인도ㆍ이집트ㆍ비잔티움 예술을, 후자의 예로는 그리스ㆍ로마 예술을 듭니다.

저는 이날 이전까지는 아주 확신했었습니다. ‘자극(stimulus)과 반응(response)’에 관한 이론 가운데 하나인데도 확신한 것은 1985년 제주 세미나에 왔을 때, 첫날 밤 문우들을 따라 간 과붓집 할망의 밭 매는 노래와 해녀 노래, 그리고 마을 입구마다 서 있는 돌하르방의 기하학적 형태 때문이었습니다. 역사상으로는 신라와 백제와 교류를 해왔으면서도 그를 뛰어넘어 북부 지방의 단군(檀君) 신화, ‘공후인(箜篌引)’, 동명성왕 신화, 쌍영총 벽화 속의 무희(舞姬)나 엽사(獵師)와 현실(玄室) 문양과 상통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제가 육지 대학을 접어두고 제주대학교 교수 공채에 응모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강의를 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건 아닙니다. 강의를 끝내고 학과 주임인 허배 교수님과 점심을 먹을 땝니다. 무슨 뜻으로 그러셨는지 모르지만 뜬금없이 자기가 유학 와서 본 한국 문화는 ‘빨리빨리 컬처(Culture)’라고 하는 겁니다.

제가 흄이니 보링거니 하고 떠들면서, 워낙 방대한 연구라서 집단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한국문학도서관’을 구축하고 있으니 함께 이용하자는 말이 거슬렸는가 하는 생각이 들데요. 그래서 농경문화가 어떻게 유목이나 상공문화보다 더 빨리빨리일 수 있느냐면서, 세계 120개 국 가운데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가 60년 만에 10위 안팎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했지요.

그런데 그렇게 헤어져 뉘른베르크로 돌아오는 길, 어쩐지 그의 말이 맞는 거 같은 겁니다. 본은 통독 전의 수도라서 꽤 큰 도시인 줄 알았는데 우리 규모로 따지면 중소도시에 불과하고, 그동안 가본 파리는 220만, 로마는 280만, 베를린은 350만 명일 뿐만 아니라, 어느 도시고 수백 년씩 묵은 낡은 건물들뿐이고, 중심가의 뒷골목은 수백년 전에 돌을 깐 포도(鋪道)라서 택시를 타도 터덜거리고.

주민들의 매너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제가 길을 건너려고 하면 어느 차든 4, 5m 앞에서 멈춰 서고, 시속 200Km 안팎으로 달리는 아우토반에서도 깜빡이만 켜면 진로를 양보해주고. 특히 재미있는 것은 공원에서 체스를 두는 노인들이었습니다. 시멘트 바닥에 거실 만한 체스판을 그려놓고 우리나라 고무래 같은 거로 밀고 당기는…….

뿐만 아니라, 이 ‘빨리빨리 주의’가 이제는 우리를 ‘발전’이 아니라 ‘퇴보’를 거쳐 ‘멸망’으로 이끌고 간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OECD 국가 가운데 몇 년 째 자살률 1위를 유지하고, 이혼율은 50% 이상, 출산율 1이하, 행복지수(HPI)는 58위라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그리고 저 자신도 그걸 바로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선동하고, 보급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우선 제 글쓰는 방법만 해도 그랬습니다. 타이프는 우리나라 문인 가운데 제일 먼저 쓴 ‘그룹’에 속하고, 워드는 제일 먼저 쓴 ‘사람들’에 속하고, 70세가 넘어서도 스타일과 단축키는 물론, 보다 빨리 입력하기 위해 자판마저도 제 나름대로 고쳐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제가 이런 사람이 된 데는 허배 교수님께 항변했듯이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농사꾼 8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정규 중학교가 아니라 고등공민학교를 졸업하고 고학이라도 하려고 가출했다가 끌려와 두 달 늦게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계속 공부할 수 없어 ‘노스립(No Sleep)’이라는 약을 먹고 눅눅한 자취방에서 공부하다가 치질에 걸리고, 수술을 하고도 차가운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공부하다가 장염에 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소독을 받으려고 수술한 병원으로 가 궁둥이를 까니까 어린 간호사들이 원장 선생님께 일러바쳐 내가 장학금을 줄 테니 치료받는 동안만은 쉬라고 야단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아우토반으로 접어들어서도 어떻게 농경문화가 더 빨리빨리일 수 있을까 계속 생각했지요. 갑자기 오일 램프가 깜빡거리데요. 저만치 셀프 주유소가 눈에 들어와 주유하면서도 계속 생각했지요. 그 순간, 농경민족들은 농지가 있는 곳에 머물러 살 수밖에 없어 그런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르데요.

주유를 마치고, 난 역시 똑똑해 하면서 계산대에 카드를 내밀었지요. 중동인 경리 담당 남자가 빙긋이 웃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달리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한 30Km쯤 달렸을까, 갑자기 시동이 꺼지대요. 경유차에 한국에서처럼 휘발유를 주유한 겁니다. 다행히도 점심을 먹을 때부터 쏟아지던 폭우로 모든 차량들이 가다서다 하는 판이라서 연쇄 추돌 사고를 면했지만, 제 뒤로 몇십 Km 차량이 밀리고, 경찰 헬리콥터가 제 차 위로 맴도는 사고를 일으킨 겁니다. 별다른 사고가 없었는데도 그 차를 견인해서 엔진 세척을 하고, 공장까지 갔다왔다 하느라고 1200만 원을 날렸지요.

그 뒤부터 모든 걸 꼼꼼히 챙겨보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하고 출발하는 게 아니라 걸어가며 생각하고, 그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젊은이들 용어로 ‘멀티-스태킹(multi-stacking)’을 하면서 빨리빨리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농경민족의 유전자 속엔 빨리빨리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이 유전자 때문에 줄줄이 몇 가지 사고를 저졀렀지요. 집사람이 날 버리고 떠난 뒤라서 이 연재 원고를 쓰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다가 그릇을 깨뜨리고, 간을 친 뒤 다시 쳐 짜서 못 먹게 만들고, 그릇에 옮겨 담다가 엎지르고…….

아이고 그런데 어쩌지요? 이렇게 사고를 저지르며 쓰는 바람에 아직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예정한 지면이 넘치고, 편집부에서는 왜 원고를 안 보내느냐고 톡을 보내오고. 이번 주 주제의 결론은 다음 주 연재로 미뤄야겠네요. 한 번만 봐줍서, 미안해요. 사랑해요. 다음 주 목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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