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00대 기업, 상반기 매출·영업익 늘었지만

공급망 차질·원재료가 상승으로 기업 부담 가중

내년 경영시계 불투명…해외 경영·내부 소통 강화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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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주요 그룹 총수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직접 핵심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해외 경영을 재개하는 한편, 임직원과 경영 방향성을 공유하며 최전방 공격수를 자청하고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산업계 지형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만큼, 재계에서는 오너리더십이 다시 부상할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위드코로나’ 됐어도 경영 시계 ‘불투명’

올 상반기 국내 500대 기업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매출 역시 지난해와 비교할때 100조원(10.4%) 이상 늘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500대 기업 중 반기보고서를 제출한 255개 기업의 연도별 상반기 실적을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의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1020조9783억원에서 올해 1127조4212억원으로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51조6145억원에서 105조1318억원으로 103.7%(53조5174억원) 늘었다.

IT·전기전자와 자동차, 석유화학 등 중후장대 기업들의 매출 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코로나19의 타격에서 벗어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안심하기 이르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국내 기업 상당수는 제조업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원가 상승의 영향을 받는다. 전세계적으로 공급망 문제로 생산·물류에 차질을 빚는 가운데, 원자재 가격까지 덩달아 뛰면서 기업들의 실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제 원유 가격은 지난해 4월 저점을 찍은 이후 현재 5배까지 올랐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해 4월 배럴당 15.06달러에서 올해 9월 75.03달러로 치솟았고, 두바이유도 20.82달러에서 75.90달러로 3.6배, 브렌트유 역시 20.66달러에서 78.77달러로 3.8배 상승했다. 여기에 알루미늄 등 비철금속가격과 옥수수 등 주요곡물 선물가격의 오름세도 가파르다. 이에 따라 9월 원화 기준 원재료 수입 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3% 상승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이 같은 원재료 수입 물가 상승이 기업의 수익성을 끌어내릴 가능성을 경고했다. 원재료 수입 물가 상승분 절반은 제품 판매 가격에 전가하고 나머지 절반은 자체 흡수한다는 가정 아래, 비금융업 전체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5년간(2015∼2019년) 평균 5.2%에서 3.4%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산업의 지형이 바뀌면서 경영 불확실성의 폭도 커졌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비대면 기조로 AI(인공지능)·IoT(사물인터넷)·5G(5세대 이동통신)·로봇틱스 등 혁신 기술과 연계한 서비스 수요가 급증했다. 탄소중립 등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친환경 정책이 강화되면서 수소·태양광·전기 등 친환경 에너지와 폐기물을 활용한 다양한 재생사업도 부상했다. 

이에 따라 내년에도 기업들의 화두는 지속가능성이 될 전망이다. 대규모 설비투자와 공격적 인수합병(M&A), 핵심 인재 영입 등이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뛰어야 산다’ 해외 경영 재개

벌써 주요 그룹 총수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주력 사업과 관련성이 높은 해외 시장을 직접 둘러보고 먹거리를 챙기는 분위기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달 미국과 인도네시아를 잇달아 찾았다. 미국과 인도네시아는 각각 북미와 동남아시아가 전기차 시장의 전진기지로 육성하는 지역이다. 미국 시장에 8조원 이상 투자하는 한편, 인도네시아 카라왕 지역에 33만㎡ 규모의 배터리 합작공장을 건설 중이다. 

정 회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판매법인과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 등을 방문, 현지 판매 전략을 점검했다. 곧바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국제엑스포(JI)로 이동, 현지 전기차 생태계 조성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협력방안을 모색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달 말 미국·유럽 등지를 돌며 현지 사업을 재정비했다. SK그룹은 배터리·수소 등 친환경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SK온은 미국 2위 완성차업체인 포드자동차와 미국 현지에 114억달러를 투자, 합작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최 회장은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와 배터리 생태계 구축을 위해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또 배터리 합작공장이 들어설 켄터키주 상원의원인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와 만나 2030년까지 미국에 520억달러를 투자하고 절반 가량을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 에너지 솔루션 등 친환경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미국 워싱턴DC에서 정·재계 인사들과 연이어 회동한 만큼, 반도체 공급망 정보 제출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해외 출장을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 계획을 밝혔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와 오스틴시, 애리조나 등 후보지 중에서 세제 혜택이나 기존 반도체 생산기지와의 시너지 등을 두루 고려해 숙고 중이다. 현재 지원 결의안을 마련하며 가장 적극적인 테일러시가 유력한 후보지로 꼽힌다. 이 부회장은 현지 관계자들과 만나 최종 협의를 마친 뒤 후보지를 낙점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함께 반도체 공급망 정보 제출과 관련해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5G·AI·배터리 등 신 성장 동력 분야에서 사업 기회 확대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확실성 파고 앞에 ‘스피커’ 자청

그룹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하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수년 간에 걸쳐 일어날 변화가 지난 1년 간 압축적으로 진행되면서 공격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다”며 “내부 혁신의 속도를 높여 체력을 강화해야 하는데, 총수의 의지가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몇몇 총수들은 임직원들과 경영 전략과 방향성을 공유하며 그룹이 지닌 ‘경쟁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특히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중기 비전을 스스로 밝힐만큼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외활동에 소극적이던  ‘은둔의 경영자’ 이 회장이 직접 나선 모양새다. 그가 11년 만에 임직원 앞에 선 데에는 절박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회장의 CJ에 대한 평가도 냉철했다. 그는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과감한 의사결정에 주저하며 인재를 키우고 새롭게 도전하는 조직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해 미래 대비에 부진했다”며 “저를 포함한 경영진의 실책”이라고 진단했다. 

이 회장은 CJ가 나아갈 방향은 ‘건강·즐거움·편리’라는 기업 가치를 구현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컬처(Culture)·플랫폼(Platform)·웰니스(Wellness)·서스테이너빌러티(Sustainability)를 중심으로 3년간 1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조직 내 유·무형의 역량 제고를 위해 인재 육성과 기업문화 혁신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도 임직원들과 경영 방향성을 공유했다. 조현준회장이 창립 55주년 기념사를 통해  내부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 회장은 현 상황을  “노도와 같은 변화”라고 규정했다.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ICT 기술력을 지닌 빅테크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면서 기업의 생존을 확신키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에 조 회장은 VOC 경영을 다시금 강조했다. VOC 경영은 조 회장이 회장 취임이후 신년사 등을 통해 역설해 온 경영철학으로, 고객친화적 경영을 뜻한다.

조 회장은 소비자의 체감만족도를 향상시키는 콜센터 고객관리시스템인 VOC를 경영에 접목시켜 스판텍스를 비롯한 세계 일류상품을 다수 배출시켰다. 

조 회장은 “전략적이고 치밀한 VOC 활동을 통해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우리의 나아갈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며 “(아울러) 트렌드와 기술이 너무나 급격히 바뀌고 있는 만큼 민첩함(Agility)이 조직 전체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재계에서는 당분간 총수들이 내부 구성원과의 소통이나 해외 경영에 있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총수가 진두지휘할 때, 변화 국면에서 중심을 잡고 혁신에 대한 시그널을 확실히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데일리임팩트에 “전자업계 등 일부 업종이 코로나 특수를 누렸지만, 전세계적으로 산업 판도가 격변하면서 경영상 변수는 더 증가했다”며 “한정된 국내시장 대신 해외로 눈을 돌려야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소장은 이어 “속도감 있는 사업 전개, 중장기적 경쟁력을 강화시킬 투자를 위해서는 그룹을 총괄하는 오너의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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