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임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격려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임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격려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미디어SR 김다정 기자] 삼성가(家)는 생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강조해 온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대규모 사회 환원을 약속했다.

특히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천문학적 상속세액 부담에도 고인이 13년 전 약속한 사재 출연 약속까지 지키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면서 국가경제를 이끌었다.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 재계의 귀감이 됐다.

‘사업보국’(事業報國)에 평생을 바친 이 회장이 남긴 유산은 단순히 수조원에 달하는 기부를 넘어 삼성과 우리 사회에 많은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만들어 나갈 ‘뉴 삼성’ 기대

이건희 회장이 삼성에 남기고 떠난 정신적 유산은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만들어나갈 ‘뉴 삼성’의 토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재계 안팎에서 나온다.

취임 30여년간 글로벌 기업 삼성을 일궈낸 고인이 국가 발전과 상생 등의 사회 공헌을 위해 가꿔온 경영 이념은 이 부회장이 받들어 확장시켜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병철-이건희-이재용’ 3대로 이어져 내려 온 삼성그룹의 사회공헌 활동은 현재 삼성만의 뚜렷한 지속가능경영 철학을 토대로 이행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4개의 공익법인을 운영하면서 단순 자선 활동을 넘어 제3섹터인 비영리 영영에 다양한 복지, 문화예술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은 “자식에게 경영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2조원이 넘는 삼성 그룹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4개 재단이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공익사업을 점차 확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9년 11월에 열린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기념식 당시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며 선친의 뜻을 받들어 이어 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32주기 추도식에서 계열사 사장단에 “선대회장의 사업보국 이념을 기려 우리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단순한 재산의 상속을 넘어 고인의 경영철학과 비전까지 이어 받아 인류 사회에 더 크게 기여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은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사명”이라는 이건희 회장의 뜻을 받들어 국가 위기 상황이 벌어질때 마다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지난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마스크 대란 당시 이 부회장은 마스크 33만 장을 지원하고, 국내 마스크·진단키트 제조사들에 스마트폰공장 구축 지원에 나섰다. 또 백신용 LDS 주사기를 월 1000만 이상 생산할 수 있는 생산 시스템을 완성했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병상 부족사태에 직면했을 때는 영덕연수원, 삼성화재 글로벌캠퍼스, 삼성물산 국제경영연구소를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고 삼성의료원 의료진을 파견해 의료지원에 나섰다.

최근 사회 환원 계획을 내놓은 이후에도 유족들은 소유 중인 부산 해운대구 토지도 기부키로 하면서 선행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상속세 납부와 사회 환원 계획은 갑자기 결정된 게 아니라 그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관계사들이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사업 외에도 다양한 사회공헌 방안을 추진해 사업보국이라는 창업이념을 실천하고,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역대 최고 수준의 상속세 납부…높은 상속세율 논란 ‘재점화’

이건희 회장과 유족들이 공개한 사회 환원 계획은 우리 사회에 고민거리를 남긴 측면도 있다. 외신도 주목한 한국의 과도한 상속세와 기업인의 선행에 대한 인색한 평가는 향후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

유족들은 이 회장이 남긴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 등 전체 유산의 절반이 넘는 12조원 이상을 상속세로 납부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는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역대 최고 수준의 상속세 납부액”이라며 “지난해 1년간 정부가 걷어들인 상속세 전체 세입 규모의 3~4배 수준에 이르는 금액”이라고 추산했다.

이전에도 유난히 높은 한국의 상속세율에 대한 지적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삼성가의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논란이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은 2위다. 하지만 기업승계 시 주식가치에 최대주주 할증평가(20% 할증)를 적용하면 최고세율 60%를 적용받아 사실상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임동원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한국의 상속세 부담은 미국 46%, 독일 94%, 영국 191%, 캐나다 253% 만큼 각각 더 높아 현재 징벌적인 상속세가 기업에 사망선고처럼 과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업승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 경영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고, 이는 곧 국가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실제로 손톱깎이 세계 1위 생산업체였던 ‘쓰리세븐’은 지난 2008년 상속세로 인해 지분을 전량 매각한 후 적자기업이 됐고, 밀폐용기 제조 세계 1위였던 ‘락앤락’은 상속세 부담을 고려해 2017년 말 홍콩계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하는 등 과도한 상속세로 기업승계를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해외 언론들도 삼성의 세계 규모 상속세에 주목하면서, 미술품과 상속세 분납 배경, 사회공헌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전세계에서 상속세가 가장 높은 국가들 중 한 곳”이라며 상속세가 30억원이 넘는 경우 50%에 달하고 여기에 양도세 20%를 더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회장 유족이 발표한 상속 내용, 미술품 기증 계획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삼성 일가가 사상 세계 최대 규모 수준의 상속세를 낼 계획”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AFP통신은 “한국은 엄격한 상속세법과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이 부회장을 포함한 일가에 무거운 과세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정부는 상속세율 조정의 필요성은 공감한다면서도 검토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일반상속세가 너무 높으니 좀 낮춰달라는 지적이 있었고, 일각에서도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면서도 “국제적으로 상속세 부과 수준이 있고, 능력에 맞게 부담해야 한다는 게 조세 취지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특별히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사면론 이슈와 맞물린 역대급 기부…공익적 의도 훼손 우려

삼성가의 역대급 사회 환원을 계기로 기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높아진 ‘사면론’ 이슈와 맞물리면서 당초 ‘공익적’ 의도가 왜곡되는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삼성가의 상속세와 관련 “한국 재벌가문의 부와 권력에 대한 서민들의 의견은 엇갈린다”고 보도했다.

삼성의 미술품 기증에 대해 삼성가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책략’(ploy)에 불과하다는 의견과 권력 승계과정에서 사회적 책임의식을 높이려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의견도 있다고 FT는 전했다.

박진영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은 이건희 회장의 유족의 사회 환원 결정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에 대해 “토할 것 같은 하루였다”고 부정적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박 부대변인은 28일 자신의 SNS에 “법적으로 당연히 내야 할 상속세를 내겠다는 게 그렇게 훌륭한 일인가”라며 “근본적으로 정경유착, 노동자와 하청기업을 쥐어짠 흑역사는 잊어버렸나”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삼성어천가(삼성+용비어천가)와 이재용 사면을 선동하는 언론사에 광고를 몰아주기라도 한 건가”라며 “이재용 사면, 난 완전 반대일세”라고 적었다.

이같은 삼성가의 공익적 기부를 향한 날선 비난은 곧 개인의 기부 의지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특히 이번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인이나 고액 자산가의 경우 의도가 곡해되고 정략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전부터 한국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개인의 기부를 장려하기 위한 혜택이 부족하다는 계속해서 나온 바 있다.

2014년 근로소득자의 기부금 세제 지원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개정되면서 주요 기부자인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이 축소됐다. 소득공제는 소득이 많을수록 세율이 올라가 세제 혜택이 증가하지만, 세액공제 방식은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동일한 공제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개인 기부금에 50% 소득공제율을 적용하고 있고, 영국은 개인 기부액의 20~45%를 소득공제한다. 일본도 40%의 높은 소득공제율을 적용한다.

특히 영국에서는 고액 자산가의 유산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상속 재산 중 10%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나머지 재산에 대한 상속세 10%를 감면해주는 ‘레거시10’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미디어SR에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극복하고, 좋은 것은 좋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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