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이목이 집중된 삼성가(家)의 역대급 상속세 납부계획이 지난달 28일 공개됐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들은 12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금액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 이는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역대 최대 규모다.

특히 이날 발표에서 유족들은 의료 공헌, 미술품 기증 등 사회환원 실천 계획도 밝혔다. 상속세와 사회 환원을 모두 합쳐 환산하면 이건희 회장이 보유했던 재산의 60% 이상이 국고와 사회로 환원되는 셈이다.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통 큰 결정’에 대해 여론은 이 회장이 사후에도 역사에 오래 기억될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유산 외에 적지 않은 숙제도 남겼다. 상속이라는 '창(窓)'을 통해 삼성을 다시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1980년 고(故) 이병철 창업주와 고인이 된 이건희 회장(오른쪽) 당시 모습. 사진. 삼성전자 제공
1980년 고(故) 이병철 창업주와 고인이 된 이건희 회장(오른쪽) 당시 모습. 사진. 삼성전자 제공

[미디어SR 김다정 기자]지난 2008년,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약속한 1조원대 사재 출연 약속이 13년 만에 이뤄졌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8년 특검의 삼성 비자금 수사 이후 “실명으로 전환한 차명 재산 중 벌금과 누락된 세금을 내고 남은 것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삼성은 현금 또는 주식 기부, 재단설립 등 여러 방안을 놓고 검토했으나, 2014년 이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논의가 중단됐고 결국 ‘고인의 약속’으로 남고 말았다.

오래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이건희 회장의 사재 출연 약속은 유족들이 이 회장의 유산 가운데 1조원을 ‘의료 공헌’을 위해 기부하기로 하면서 13년 만에 지켜지게 됐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의 사회공헌 내용은 기업이 쌓은 부(富)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이 회장의 뜻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50여년 동안 보육, 의료, 보기, 장학, 상찬 등 부문에서 두로 공익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삼성문화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복지재단, 호암재단 등 4개 재단은 단순 자선 활동을 넘어 비영리 영역에서 다양한 복지, 문화예술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회장은 생전에 "죽어서 입고 가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의에는 주머니 뿐 아니라 매듭이 없다. 맺힌 것 없이 이승을 훌훌 떠나라는 의미에서 수의를 바느질할 때는 마무리를 생략하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생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거듭한 고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환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로 했다는 뜻을 밝혔다.

감염병 대응 및 소아 환자 위해 ‘1조원’ 기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감염병에 대응하고 소아암·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총 1조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납부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고인이 생전 강조하던 ‘인간 존중’의 철학과 저소득층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 의지가 그대로 반영됐다.

이건희 회장은 평소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며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유족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전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인류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한 감염병에 대응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을 위해 700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기부금은 국립중앙의료원에 출연한 뒤 관련 기관과 협의해 감염병전문병원 연구소 건립·운영 등에 활용된다.

이 가운데 5000억원은 한국 최초의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사용될 예정이다. 중앙감염병 전문병원은 일반·중환자·고도 음압병상, 음압수술실, 생물안전 검사실 등 첨단 설비까지 갖춘 150병상 규모의 세계적인 수준의 병원으로 건립될 계획이다.

나머지 2000억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건축 및 필요 설비 구축, 감염병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제반 연구 지원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투입된다.

감염병 대응과 함께 소아암·희귀질환에 걸려 고통을 겪으면서도 비싼 치료비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30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향후 10년간 총 1만7000여명의 어린이가 지원을 받게 될 전망이다.

3000억원 중 2100억원은 앞으로 10년간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들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치료, 항암 치료, 희귀질환 신약 치료 등을 위한 비용으로 사용된다.

백혈병·림프종 등 13종류의 소아암 환아 지원에 1500억원, 크론병 등 14종류의 희귀질환 환아들을 위해 600억원을 지원한다.

소아암과 희귀질환 임상연구, 치료제 연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도 9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유족들은 서울대어린이병원을 주관기관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 환자 지원 사업을 운영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전국에서 접수를 받아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어린이 환자를 선정해 지원할 방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디어SR에 “기부금은 삼성의 재단과 관계없이 모두 사회에 환원된 뒤 각 기관에서 알아서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건강이 곧 기업의 사명”…‘의료공헌’에 1조원 기부 이유

당초 재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약속한 1조원대 사재 출연 약속을 두고 ‘이건희 재단’ 설립을 유력하게 점쳤다.

특히 올해 2월 삼성의 대표적인 장학재단인 ‘삼성장학회’가 설립 19년 만에 장학사업을 중단한 만큼 사재 출연을 한다면 이건희 회장 명의의 재단이 설립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해왔다.

또한 별도 재단 설립 없이 삼성생명공익재단 또는 삼성문화재단 등 기존 삼성 재단에 기부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감염병 대응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의료 공헌’을 통한 사회 환원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그동안 사스,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많은 감염병을 겪었고 앞으로도 새로운 감염병 이슈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건희 회장은 이전부터 국민 건강에 많은 신경을 썼고, 이번에도 이런 취지에서 유족들이 회장님의 뜻을 받들어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생전에 인간 존중과 상생, 인류사회 공헌의 철학에 기반해 의료 분야의 사회 공헌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이야말로 기업의 사명”이라는 말을 수 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삼성서울병원은 선진국 수준의 병원을 만들겠다는 고인의 강력한 의지 속에 지난 1994년 문을 열었다. 삼성서울병원 출입구 벽면에는 “건강한 사회와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이웃과 함께하는 따뜻한 기업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삼성의료원을 설립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소아암·희귀질환 어린이 지원 사업도 평소 보여준 고인의 어린이 사랑과 일맥상통한다. 이 회장은 취임 후 추진한 첫 사회공헌활동이 어린이 복지 사업일 정도로 어린이 보육과 복지에 큰 관심을 쏟았다.

이 회장은 지난 1989년 사재 102억원을 출연해 삼성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삼성복지재단에서는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보육사업으로, 어린이집 건립·운영에서 시작해 현재 장학사업인 삼성드림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1987년 삼성그룹 회장 취임 직후엔 서울 장충동 달동네를 둘러보고 어린이집 건축을 지시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고인은 재단을 통해 어린이 사업을 진행할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며 “재단 활동과는 별개로 이번 사회 환원을 통해 사회에서도 어린이 복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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