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로고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로고 

[미디어SR 김다정 기자]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해묵은 배터리 분쟁을 매듭지으면서 ‘K-배터리’가 이제는 협력을 통해 명실상부 ‘글로벌 1위’ 자리를 되찾을지 기대를 모은다.

치열한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벌여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 주말 일괄타결에 따른 전격 합의를 일궈냄으로써 수년째 이어졌던 배터리 분쟁의 깊은 수렁에서 동시에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양사는 이번 합의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총액 2조원(현금 1조원+로열티 1조원)을 합의된 방법에 따라 지급하고 △관련한 국내외 쟁송을 모두 취하하고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합의를 통해 양사는 장기소송 리스크 등에서 벗어나 시장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이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으로 성장해 온 LG와 SK가 모든 법적 분쟁을 종식하기로 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며 “앞으로 양사를 비롯한 우리의 이차전지 업계가 미래의 시장과 기회를 향해 더 발 빠르게 움직여 세계 친환경전기차 산업의 발전을 선도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LG사옥. 사진. 구혜정 기자
LG사옥. 사진. 구혜정 기자

빼앗긴 글로벌 1위 자리…치고 나가는 ‘中배터리’

지난 2017년 하반기 대거 직원 이직으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이 발발한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배터리의 경쟁력은 다소 주춤하기 시작했다.

중국이나 일본 등 배터리 후발주자들이 적극적인 투자 공세를 펼치며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는 동안 국내 기업은 막대한 소송비용을 국내외 로펌에 지출하면서 서로 ‘발목잡기’에 몰두했다. 양사는 지난 2년간의 소송과 로비로 이미 수천억원을 날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내 기업간의 난타전은 결과적으로 경쟁사인 중국 배터리업체들이 'K배터리'를 치고 올라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현재로서는 한국과 중국이 치열한 선두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기존 배터리 업체는 물론 자동차 업체들도 앞 다퉈 시장에 진입하면서 ‘절대 강자’ 없이 세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1월 “양사가 싸우면 남 좋은 일 시키는 것”이라며 조속한 합의를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LG에너지솔루션(구 LG화학)은 2020년까지만 해도 전세계 배터리 사용량과 점유율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현재는 중국의 CATL에 선두자리를 내준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2월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에서 중국 CATL이 31.7% 점유율로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 2위였던 CATL는 전년 동기보다 무려 272.1%나 성장하는 무서운 괴력을 선보였다.

LG에너지솔루션은 1년 전(2020년 1~2월)만 해도 26.6% 점유율로 1위를 지켰으나 올해는 19.2%로 2위로 밀려났다.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의 점유율은 각각 5.3%와 5%로 줄어들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 합산 점유율은 29.5%로 지난해 같은 기간 41.2% 대비 11.7%p나 쪼그라들고 말았다.

반면 CATL, BYD, CALB, 궈시안 등 중국계 업체들의 실적은 자국 시장의 회복세가 가속화되면서 대부분 세자릿수 이상 급성장하며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성장을 주도했다.

두 회사의 피 튀기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K배터리의 성장을 도모해야 할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공급받던 글로벌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이 지난달 중국 업체들이 주로 생산하는 각형 배터리를 사용하겠다고 밝히면서 한국 배터리 산업계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현대차도 최근 아이오닉 신규 발주 물량을 중국 CATL에 맡겼을 정도다.

여기에 자동차 업체들까지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면서 배터리 주도권 경쟁에 뛰어든 상황이어서 K배터리의 위상에 심대한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줄곧 평행선을 걷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극적 합의를 이뤄낸 데는 K배터리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의미없는 소모전을 이어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바탕에 깔렸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막 내린 LG·SK 배터리 전쟁…이제는 각자 사업에 집중할 때

양사의 극적 합의로 다소 주춤했던 ‘K배터리’가 다시 도약의 기회를 거머쥘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앞으로 양사는 장기 소송 리스크 등에서 벗어나 각자의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2조원의 배상금을 지급받는 것은 물론 배터리 관련 지식재산권(IP)을 인정받음으로써 실리를 얻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합의는 공정경쟁과 상생을 지키려는 당사의 의지가 반영됐다”며 “배터리 관련 지식재산권이 인정받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소송리스크를 완전히 떨쳐낸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하반기 증시 입성을 목표로 기업공개(IPO) 추진에 역량을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막대한 합의금을 받게 돼 미국과 인도네시아 등 신규 배터리 공장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에도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 공장을 지키고 폭스바겐과 포드에 대한 공급리스크를 완전히 떨쳐내면서 미래 역량 강화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SK이노베이션측도 “급성장하는 전기차 및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서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로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024년까지 30만대 이상의 전기차에 탑재될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조지아주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는 자동차 회사인 포드와 폭스바겐에 공급된다.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주 배터리 공장 위치 제공: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주 배터리 공장 위치 제공: SK이노베이션

중국 업체와 본격적인 경쟁은 지금부터…미국 시장 ‘정조준’

‘K배터리의 미래’라는 공감대를 형성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다시 한 번 글로벌 시장을 겨냥, 본격 채비에 나섰다.

미국이 친환경 정책 기조의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급부상한 만큼 양사는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둔 전략을 합의문에 담기도 했다.

특히 업계에서는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견제 차원에서라도 한국 배터리에 대한 수요를 늘릴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 세계 1위 탈환의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는 분위기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이날 합의 직후 “한미 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경쟁과 우호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며 “특히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강화 및 이를 통한 친환경 정책에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별도 입장문에서 “이번 분쟁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친환경 정책, 조지아 경제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번 합의로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배터리사업 운영 및 확대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며 “1공장의 안정적 가동 및 2공장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미국은 물론 글로벌 전기차 산업 발전과 생태계 조성을 위한 국내외 추가 투자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 측도 “앞으로도 전세게적인 친환경 정책에 발맞춰 글로벌 선도기업으로서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대규모 배터리 공급 확대 및 전기차 확산이 성공적으로 실행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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