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미디어SR 전문가칼럼=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정부는 코로나 이후에 닥칠 글로벌 환경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 산업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디지털 뉴딜’사업으로 명명한 금번 계획은 데이터(D), 네트워크(N), 인공지능(A) 등 디지털 신기술을 산업 전반에 접목해서 혁신을 유도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산업의 골격을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시스템으로 바꾸기로 한 배경은 지난 10년간 전 세계 GDP 중 신규 부가가치의 70%가 디지털 기반 플랫폼 기업들에 의해 창출했다는 세계경제포럼(WEF) 분석을 토대로 한 것이다.

기존 산업은 물론 신규 산업의 틀을 디지털 기반으로 바꿔주면 부가가치 증대 효과가 가일층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이론적으로 국가가 경제성장을 하려면 노동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인구고령화 현상이 뚜렷해 은퇴인구는 늘고 신규로 진입하는 노동인력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노동인구나 노동시간을 늘려 경제성장효과를 노리는 고전적인 노동생산성 향상 전략은 현실성이 없다. 유일한 돌파구는 노동자가 생산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다.

그림1.  OECD 국가별 고용 인력의 생산성(구매력 기준 GDP, USD)
그림1.  OECD 국가별 고용 인력의 생산성(구매력 기준 GDP, USD)

OECD가 최근(2020. 5) 분석한 고용노동인력의 생산성(구매력 기준 인당 GDP) 비교 데이터에 의하면 한국의 노동생산성(82,991 달러)은 OECD 34개국 중 19위로 나타났다.

상위 10개국은 아일랜드(195,153 달러), 룩셈부르크(159,800 달러), 미국(134,155 달러), 노르웨이(129,878 달러), 벨기에(126,013 달러)에 이어 스위스,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웨덴 등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유럽 선진국들이다. 예상과 달리 일본의 노동생산성(77,385 달러)은 한국보다 낮은 27위로 분석됐다. 코로나19 대유행사태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모범 방역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이 노동생산성에서 일본에 앞서고 유럽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비 OECD 국가이며 개발도상국인 중국(36,144 달러)과 인도네시아(29,514 달러)에 비해서도 각기 2.3배와 2.8배로 높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제조업 비중이 매우 높은 제조업 중심국가이다. 세계은행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은 16.8%이다.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25%로 푸에르토리코(47%), 리히텐슈타인(39%), 오만(38%), 아일랜드(31%), 에스와티니(29%), 중국(27%)에 이어 세계에서 7번째로 높다.

OECD국가들만 비교한다면 아일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OECD 국가들 중에서 제조업 비중이 비교적 높은 국가들로는 일본(21%), 독일(19%), 스위스(19%) 등이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6~13% 정도로 낮은 서비스 중심국가로 분류할 수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선 장치산업체들이 상품제조의 전문성과 영업 능력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반면 서비스 중심의 산업구조에선 지식산업체들이 특화된 지식, 디자인, 설계, 그리고 특허자산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지금까지 선진국들의 추세를 보면 국민 소득이 증가할수록 국가의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의 장치산업 구조에서 서비스업 중심의 지식산업 구조로 바뀌어 간다.

노동생산성 즉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려면 투입 노동력은 줄어도 단위생산량은 증가해야 한다. 장치산업체에선 주로 기계자동화를 통해서 불량을 줄이고 생산속도를 높인다. 지능형 스마트 공장으로 탈바꿈시켜 불량요소를 제거하고 생산실수율을 극대화 한다. 같은 품질을 보다 값싸게 생산하는 생산성 향상법이다.

또 다른 노동생산성 증가 방법은 상품의 판매가를 높이는 것이다. 상품의 기능, 디자인 또는 성능을 차별화시켜 상품의 본질 가치를 높이는 방식이다. 생산품의 불량을 줄이는 게 아니라 시장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상품가치를 창조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품개발은 주로 디자인과 설계기술에 기반한다. 상품제조과정에서의 가치손실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상품 설계단계부터 상품의 본질 가치를 높이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퀄컴과 영국의 ARM은 반도체 설계에 특화된 서비스산업체이다. 새로운 기능을 설계도면에 담아 가치를 창출한다. 반면 삼성전자나 대만의 TSMC는 반도체 생산수율이 높은 첨단제조기술을 구사한다. 설계를 담당한 지식산업체가 반도체 산업의 두뇌 역할을 한다면 제조를 맡은 장치산업체는 수족에 불과한 셈이다.

산업생산설비가 디지털화 되고 공정관리에 인공지능이 도입되면 공정자동화율은 자연히 증가한다. 산업별로 자동화율이 다르겠지만 궁극적으론 기계의 역할이 증가하고 사람의 역할은 줄어들게 된다.

제조업의 디지털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지능 자동화는 산업현장에서의 일자리를 줄이는 촉매가 된다.

상품의 차별화는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차별화 1 단계는 가격대비 성능이 좋은 즉, 가성비가 높은 고품질 상품이다. 소비자가 기대하는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이 낮으면 저가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아진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에 만족할만한 품질을 제공해 준다. 중국산 공산품들이 시장을 침투하고 지배하는 공식이다. 기계자동화나 저가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국가에 유리한 전략이다.

차별화 2 단계는 프리미엄 상품이다. 가격대비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은 상품이다. 최고의 품질로 명성이 있는 브랜드를 합리적 가격에 공급하면 고소득층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아진다.

주로 한국산 반도체나 가전제품 또는 고품질 공산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호황기나 블루마켓에서 통하는 상품으로 소비자가 경제적으로 감당할만한 수준까지 가격이 허용된다.

차별화 3 단계는 고객맞춤상품이다. 우리가 병에 걸리면 전문의를 찾아가 내 몸에 맞는 약을 처방 받듯이 내게 꼭 필요한 성능과 기능을 제공해 주는 맞춤상품이다. 고객맞춤상품은 시장상황에 관계없이 공급자가 가격을 결정한다.

예를 들면 반도체 파운드리에서 5~7나노미터 이하의 미세공정을 위해선 반드시 네델란드 ASML이 개발한 EUV 노광장비가 필요하다. 메모리, 비메모리 할 것 없이 반도체 핵심공정장비로 대체품이 없다. 대당 가격이 1,500억원에서 2,000억원의 초고가 장비지만 ‘없어서 못파는’ 상황이다.

차별화 4 단계는 지적재산 상품이다. 상표권, 특허권, 제조비법, 저작권, 설비배치도, 설비설계도 등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라이센스 등은 제조상품마다 로열치를 붙이는 제조허가권이다.

미국 벤처회사였던 퀄컴은 2세대 이동통신기술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기술을 삼성전자에 처음 공급한 이후 급성장했다. 퀄컴의 모뎀칩 기술지배력은 3세대, 4세대, 5세대 통신기술까지 이어지고 있다.

퀄컴의 로열티 수입은 세전이익률로 50%이상이었다. 퀄컴의 특허 갑질은 유명했다. 퀄컴의 모뎀칩이 포함된 삼성의 ‘통합칩셋’은 외부에 판매하지 못했다. 삼성은 5세대 통신칩으로 겨우 퀄컴으로부터 독립했다.

삼성은 또한 스마트 폰 두뇌인 ‘AP'로 자체개발한 엑시노스가 있지만 전력소비효율이 경쟁사 대비 낮다고 해서 최근엔 영국의 ARM기술을 도입했다. 그래픽 시스템 반도체인 ’GPU'는 미국의 AMD 기술을 채용한다. 모두 로열티를 지급할 수밖에 없다.

삼성의 스마트폰을 작동시키는 OS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이다. 안드로이드를 통해 제공하는 각종 앱들이 없다면 갤럭시 폰은 그냥 깡통 폰이다. 지식산업체는 궁극적으로 장치산업체를 지배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낸다.

삼성의 반도체 제조기술이 으뜸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반도체는 스스로 설계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세상을 선도하는 반도체는 지식산업체들에 의해 창조될 것이다.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 세상을 이끌고 있는 디지털 거대기업들은 서비스산업의 총아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디지털 플랫폼을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플랫폼 안에서 제공하는 새로운 서비스 가치를 끊임없이 창조해 주는 지식산업체이다.

지식산업체들은 차별화된 서비스 상품들을 개발하기 위해 고용인력을 계속해서 증가시키고 있다. 지식산업체들의 생산성은 기계자동화가 아닌 사람의 창의력에 의해 높아진다.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하는 힘은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다. 지식산업체는 제조산업체의 자동화공장이 어떤 상품을 생산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두뇌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결국 국가 산업구조를 선진화 하고 세계를 선도할 수 있게 하려면 산업구조가 지식산업체 중심으로 탈바꿈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한국은 제조산업 중심국가다. 제조산업의 핵심역량은 상품의 본질가치를 높이는 설계능력에 있다. 제조산업체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상품의 구성을 앞에서 열거한 ‘차별화된 맞춤상품’이나 ‘지적재산상품’으로 스스로 바꿔줄 수 있는 지식산업체로 탈바꿈해야만 한다.

즉, 상품의 본질가치를 새롭게 창조해 내는 연구개발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반도체 및 가전), 석유화학, 기계, 섬유 등 기존 주력산업체들이 21세기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성장하려면 첨단제조설비를 스스로 설계하고 새로운 가치상품을 창조해 내는 연구개발력을 강화해야 한다. 생산인력은 줄여도 개발인력은 꾸준히 늘려줘야 한다.

생산 공정의 가치사슬을 원가중심에서 가치창조 관점에서 새롭게 재편할 필요가 있다. 생산량을 줄여 원가비중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상품 비중을 늘려 매출을 늘리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기업의 생존전략을 매출액 중심에서 세전이익률 중심으로 바꿔야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제조 산업체의 미래경쟁력은 디지털자동화를 넘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가치를 창출해 내는 지식창조력에 달려있다.

상품의 ‘맞춤 차별화’ 전략으로 기존 시장을 선도하고 새로운 지적재산을 축적해 미래가치를 선점하는 기업이 가장 강한 기업이다.

그처럼 슈퍼 경쟁력을 갖춘 한국기업이 줄줄이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 미래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이 뛰어나 '미래탐험가'로 불린다.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 객원교수, 포항공과대학 겸직교수. 포항산업기술연구원 연구위원, 지식경제부 기술지원(금속부문)단장 등을 역임했다. KAIST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요즘은 미래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과학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