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와 인감증명 때문에 줄서야 하는 IT강국 코리아의 서글픈 현실
인감증명 발급...유효기간을 늘려주거나 줄서지 않고도 뗄 수 있어야

사진. 픽사베이

[미디어SR 김동하 한성대학교 교수] '폐쇄', ‘연기’, ‘금지’, ‘격리’, ‘비상’, ‘봉쇄’, ‘폭락’ ..... 요즘 미디어를 뒤덮는 말 속에는 코로나19의 위기감이 그대로 묻어난다. ‘개방’, ‘자유’, ‘광장’과 같은 용어들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글로벌 빌리지(Global village)'를 외치던 세계 각국은 어느 새 경쟁하듯 저마다 빗장을 걸어잠그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나라이자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의 강점과 약점이 모두 여과없이 민낯을 드러내는 요즈음이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바이러스의 창궐로 세상은 점점 감속기에 접어들고 있다. 생산과 소비 모두 위축되면서 세상 돌아가는 속도가 예전만 못한 느낌이다. 하지만 사람들 마음 속 공포와 위기 의식은 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위기는 늘 낯설고 고통스럽게 찾아온다. 하지만 모든 위기는 극복돼야 하고 또한 극복돼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닌 강점을 통해 한계를 넘어서고 개선하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특히 민간의 속도에 다가가지 못하는 공공분야에서는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언택트 이코노미와 속 마스크 구매행렬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말없이 길게 줄지어 서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각자 우산을 하나씩 들고 역시 줄을 서 있다. 선물을 나눠주는 경품행사도, 연예인이 등장한 것도, 소문난 맛집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그 줄의 종착점은 어김없이 약국이다. 

정부가 사실상 '마스크 배급제'를 시행한 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장하지만 마스크 구입할때만은 예외인듯 싶다. 마스크를 사려고 다닥다닥 붙어 줄을 선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내는 지폐와 동전, 카드, 신분증 역시 여전히 손에서 손으로 전달된다. 손은 소독할 수 있지만 지폐의 청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얼마 전 누군가가 '소독'을 이유로 5만원권 지폐들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얼마나 불안감이 컸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자레인지에 지폐를 넣고 돌리면 절반 가량이 불에 탄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자타가 공인하는 IT강국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치고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듯한 인상이다. 쌀과 물,  음식, 휴지 등 생필품뿐 아니라 회나 샐러드 등 신선식품까지 온라인으로 척척 주문 배달이 되는 곳이 한국 아닌가. 그런 곳에서 마스크 살때만은 굳이 길게 줄을 서야하는 것이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집콕족', '언택트 이코노미'라는 말로 표현되는 코로나19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근데 한국인의 삶은 두가지가 혼재돼 있다. IT,통신,SNS의 최첨단 문명을 누리는 한편 정부가 배급하는 마스크를 살때 만큼은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수십년 전의 구매방식을 그저 묵묵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재택근무 열풍과 인감증명 떼기

IT강국 한국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은 '마스크 줄서기'뿐만은 아니다. 원격근무나 재택근무가 가능할 정도로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기업들도 결코 넘어서지 못하는 벽이 하나 있다. 많은 정부과제들이 화상 프리젠테이션 등으로 탄력적으로 운용되고 있지만 관문이 하나 더 있다. 

마지막 관문은 바로 인감증명서 떼기다. 3월말 결산 이후 등기 등의 수요가 폭증하기 마련이어서 인감증명서가 필요한 경우가 꽤 있다. 

인감증명서를 떼기 위해 예외없이 엄지손가락을 대고 지문을 확인해야 한다. 자기가 자기임을 증명하려면 주민센터에 가서 줄을 서야 한다. 

그리고는 엄지손가락을 대야만 한다.  요즘처럼 손소독제가 품귀현상을 빚고 있을때는 지문을 찍으며 바이러스 의심도 하게 된다. 인감증명서를 떼도 3개월 후면 무효가 된다. 

법인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재택근무를 권장하는 분위기지만 법인 인감증명을 떼려면 서울에 몇 안되는 등기소를 찾아가 단말기 앞으로 가야만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법인인감증명을 뗀다고 해도 유효기한은 3개월에 불과하다. 예비로 건당 1000원씩 하는 법인인감증명을 아무리 많이 뽑아도 3개월 후면 무용지물이다. 

디지털 증명, 디지털 화폐...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

한국의 '전자정부'는 전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성공모델로 꼽힌다. 민원24 등 온라인 사이트에서 주민등록 등본, 초본 등 어지간한 민원은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 보안이 필요한 최후의 보루인만큼 인감증명만은 예외적으로 오프라인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증명'과 '화폐' 영역에서의 디지털 전환은 어차피 맞이해야 하는 미래다. 지문 뿐 아니라 홍채 등을 활용한 생체인식, 바이오 인증 등의 '증명'기술은 이미 국내외 핀테크 기업들도 널리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 화폐 역시 완전히 일상생활화 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블록체인, 암호자산 등의 최신 기술을 굳이 접목하지 않더라도 중앙통제식 디지털기술로 디지털 화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은행,카드사의 소액결제 플랫폼, T머니, 사이버머니 등도 이미 일상에 널리 보급돼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점이다. 최근에도 기술의 '침투'와 제도권의 '저항'을 생생하게 목격한 바 있다.

타다 서비스가 외친 IT혁신이 과장된 것일 수는 있다. 하지만 굳이 입법으로 혁신 서비스를 멈춰세워야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결국 소비자들의 수요와는 무관하게 타다는 멈춰섰고,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수 많은 택시기사들은 여전히 사납금 문제로 힘겨운 삶을 보내고 있다.

세상의 속도에 별반 개의치 않을 것 같은 불교마저 1600년만에 모든 법회를 멈추고, SNS 생중계로 신자들을 만나는 세상이다. 이참에 인감증명 발급 방식에도 획기적 변화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의 속도에 발맞춰 유효기간을 늘려주거나 아니면 줄서지 않고도 인감증명을 뗄 수 있는 방법 등 해법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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