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제조업 부문과 2014년 전산업 부문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현황 국제 간 비교. 자료. '주요국의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국제 비교 및 시사점'. 한국경제연구원제공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경직성이 노조가 강한 대기업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기업의 60%가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채택하고 있어 노조가 강한 대기업일수록 호봉이나 연령에 따라 임금이 자연적으로 증가하고 해고가 어려워 노동시장이 경직된다는 것이다.

3일 한국경제원이 한국산업기술대 이상희 교수에게 의뢰한 '주요국의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국제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는 국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직무급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직무급 임금체계로 임금유연성을 제고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을 확보해야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미디어SR에 “해고의 유연화와 고용 안정성이 상충하는 지점이 있어 성공적으로 유연안정성을 확보한 덴마크와 스웨덴, 네덜란드가 어떻게 이를 구축했는지, 우리나라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이상희 교수님에게 의뢰하게 됐다”고 전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 스웨덴은 정책을 통해 유연하면서도 안정적인 노동시장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고서는 이들 국가의 정책이 실효성을 거둔 것이 관대한 실업급여(높은 소득대체율)와 협력적인 노사 파트너십이라는 공통점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세 국가는 모두 실업급여로 종전소득의 70~90%를 보장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현재 고용 불안을 경감할 만한 관대한 실업급여 재원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대기업의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로 인해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안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연안정성 모델을 구축한 덴마크와 한국을 비교하면, 근속 1년 미만 근로자 대비 근속 1~5년 근로자의 임금은 한국이 1.59배, 덴마크가 1.18배로 격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나 근속 30년 이상 근로자의 경우 1년 미만 근로자보다 4.39배에 달하는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덴마크는 같은 경우 1.44배에 불과했다.

특히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임금연공성이 EU 주요국과 비교해 가장 높은 수준이며 대기업일수록 연공성이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호봉제 운영 비중은 100인 미만 기업에서 15.8%에 불과한 반면,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60.9%에 달한다.

이 교수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임금의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인 임금격차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이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기업‧공기업에서 임금 연공성을 줄이기 위한 강한 추진력이 필요하며, 구체적으로는 직무급 임금체계 도입을 위해 정부와 노사 양측이 사회적 책임을 기반으로 심도 있게 검토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  자료. '주요국의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국제 비교 및 시사점'

이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노동시장이 대기업‧․정규직‧유노조 부문과 중소기업‧비정규직‧무노조 부문으로 양분되어, 한쪽은 해고보호는 물론 임금까지 높은 수준의 혜택을 누리지만 다른 쪽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유노조‧정규직 부문의 월평균 임금은 424만원으로 중소기업‧무노조‧비정규직 부문의 152만원에 비해 약 2.8배 많고, 근속연수는 각각 13.7년과 2.3년으로 약 6배 차이가 나면서 두 부문 간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희 교수는 “그간 국내에서는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해고완화와 같은 노동법 개정에 집중해 왔지만, 이는 사실상 우리나라 노동환경과 노사관계 속에서는 거의 불가능해 유연안정성 정책의 적절한 수단으로 삼기는 어렵다”면서 “국내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제고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보고서는 노사 파트너십 구축 여부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 스웨덴 모두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조합 조직율이 높고 위기 시에 이들의 역할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정책이 조율된 반면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경우 조직률이 낮을뿐더러 노사대타협의 장소가 될 만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양대 노동조합 중 하나인 민주노총이 타협적 참여를 꺼리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노동자 그룹의 이행력 담보가 잘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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