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최근 고용악화와 양극화 등 경제문제로 공론의 장이 떠들썩하다. 포털 , SNS 는 물론이고 식당이나 대중교통 안에서도 . 정치가 아닌 '경제정책'에 대한 논쟁으로 사회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렇게 뜨겁게 논쟁을 벌이는 일은 정말 유례가 없었던 것 같다.

과거 '이념이나 색깔이 아닌 정책으로 싸워라'는 결론을 되풀이하던 전 언론인의 시선으로 한편으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정치색과 맞물려 점점 더 날카로워지는 지금의 논쟁과 갈등의 정도는 우려스럽다. 사소한 말꼬리 잡기부터 케인즈 , 마르크스까지 등장한 철학적 , 학구적 논쟁까지 여러 공론의 장에서 비난과 성토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을 포함한 ‘소득주도성장’ 에 대해서는 날선 비난이 유독 많고 , 설익은 시민단체의 담론 정도로 폄하하는 의견도 거세다.

소득주도 성장에 긍정적인 사람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분명 설득력이 있다. IMF 이후 대기업 중심으로 비대해진 기업의 부를 가계로 이전시켜 분배구조를 개선하자는 것. (대)기업이 좀 더 적극적인 분배의 주체가 되어 가계로 소득을 이전시키고, 이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경제의 흐름을 살리자는 게 뭐가 그리 잘못인가?
  
하지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난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아르바이트생들처럼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일자리가 날아가는 너무나 직접적이고 , 가시적인 부작용이 먼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료들은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달라지만, 문제는 믿고 관망해 줄 사람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먹고 살 걱정이 오히려 더 심해지는 마당에, 변화하는 도도한 경제정책의 효과를 누가 어떻게 믿고 기다릴 수 있을까.

모든 변화에는 진통이 있다. 하지만 ‘위험한 것은 사상이지 기득권이 아니다’ 라고 했던 케인즈의 경고처럼, 사상이 실행되고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은 때론 지나치게 혹독하다. 정부 관료들이 추진하는 ‘대마불사’ 식의 정책운용은 초기부터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가장 두려운 결과를 안겨주고 있다.

끼워 맞추기식 정책운용과 딱딱한 집행의 비효율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 불어나고 있는 문제는 '정책의 피로감'이다.

국가의 상부에서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집행하는 하위기관들이 칼로 무 베듯 썰어내는 과정에서 누적되는 일선 '현장'의, '취약계층'의 피로감이다. 피곤하지만 돈 때문에 참여가 이뤄지는 정부사업은, 돈이 소진되면 효과도 함께 소멸된다.

통계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의 평가도 두렵긴 마찬가지다 . 정책이 예고되고 시행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우리는 그 정책의 수혜자가 되야 할 사람들이 무더기로 배제되는 경험을 곳곳에서 했다. 전쟁터에 핀 꽃처럼, 정책이 시행된 후의 통계는 아름답지만 싸늘하다.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자며 시행된 시간강사법이, 겨우 연명하며 작은 목소리를 모으던 수많은 시간강사들을 칼로 무 베듯 썰어냈던 것처럼 아르바이트생의 처우도 개선하자며 시행된 최저임금법이, 겨우 등록금 마련하던 많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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