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어린이집 사건사고. 가장 큰 문제는 관련 당국과 관계자들 사이 개선의 의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무책임한 정책과 관계자들의 인식 및 태도에 아까운 어린 목숨들이 희생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영유아들이 가정보다는 관련 기관에서 머물게 될 시간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양적 팽창만큼이나 질적 개선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미디어SR은 최근 사고가 발생한 동두천 어린이집을 직접 다녀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집 인허가의 과정을 살펴보고, 어린이집을 둘러싼 사고를 대하는 법의 허점을 뜯어보았습니다. 또 외국의 사례를 통해 개선되어야 할 지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어린이집 열려고 하는데요...", "아 그러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지난 25일 서울의 한 구청을 찾은 기자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공무원들은 친절하게 답하며 상담 자리로 안내했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들이 온 나라를 공분케 하는 지금, 어린이집 인허가의 과정이 너무 쉬운 것은 아닌지, 나라가 허가하는 어린이집의 개원의 조건은 무엇인지 미디어SR이 직접 살펴봤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지방자치단체 청사. 어린이집의 설치부터 폐쇄까지의 과정은 모두 지자체가 담당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25일 오후, 미디어SR 취재진은 ○○○구청을 찾았다. 1층 민원실에 어린이집 개원 관련 문의를 하자 가정복지과로 안내했다. 나라는 어린이집을 설치하려는 시민에 지방자치단체가 상담을 제공할 것을 법령(영유아보육법 제13조1항, 제14조1항)으로 정해놓고 있다. 미디어SR 취재진 또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어린이집 설치 전 상담제를 받을 수 있었다.

상담중 제공받은 인가절차 및 유의사항에 관한 서류. 어린이집 설치를 위한 절차 및 구비 서류 목록 등이 담겨 있다. 사진: 김시아 기자

"어린이집 개원을 생각하고 있고, 어린이집 원장 자격은 소지한 상태입니다. △△동에 설치하는 계획을 잡고 있으나, 구체적인 장소는 아직 물색 중입니다. 이제 어떤 절차를 밟으면 되는건가요?" 취재진이 구청 담당자에 상태를 설명하자 "서류만 잘 구비해 오시면 돼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어린이집 설치를 위한 인허가 과정은 복잡하지 않았다. 먼저 설치를 원하는 자(원장)가 구비해야 하는 서류는 ▲임대차계약서, ▲평면도 및 설비 목록, ▲원장 자격 서류, ▲채용계획서, ▲운영계획서,▲경비 지급 및 변제 능력 서류, ▲놀이터 이용계획서다. 이 외에 ▲도시가스사업법에 따른 정기검사증명서, ▲현장처리물품의 방염성능검사성적서를 내야 하지만, 이는 구청에서 검사 후 발급해주는 서류이기 때문에 실제로 원장이 준비해야 하는 서류는 7개 서류다. 모두 운영, 경비, 유지에 관한 서류다.

어린이집 신규인가를 위해 필요한 서류 목록. 사진: 김시아 기자

흥미로운 점은 월세로도 어린이집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라는 보육사업 지침에 따라 영유아의 안전과 어린이집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건축물대장등본을 시설 인가 시 확인하도록 하고 있으나, 건축물대장등본의 소유자와 사실상 소유자가 다를 경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만 확인해 사실상 소유자가 어린이집 설치 및 운영하는 자가 된다. 즉, 전세나 매매로 계약한 부지가 아니어도 임대차계약서만 있으면 월세 건물에서도 어린이집을 운영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의 거실, 포복실 및 유희실을 포함한 보육실이 영유아 1인당 2.64 ㎡(0.8평) 이상 확보되도록 하고 있다. 보육실에는 화장실이나 출입구 등은 포함되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어린이집 원장자격을 가진 취재진이 지금 당장 정원 21명의 민간어린이집을 개원하려면 22평형 정도의 1층 시설을 월세로든, 전세로든 구하기만 하면 됐다.

인허가까지 얼마 정도 걸리냐는 질문에 구청 직원은 "길면 3주 정도 걸린다"고 답했다. 부지만 구하면 한 달도 안되는 시간에 어린이집을 '뚝딱'하고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정원이 20명 이하면 가정 어린이집, 21명 이상부터는 민간 어린이집의 설치가 가능하다. 사진: 김시아 기자

이렇게 쉽게 인가받을 수 있던 어린이집, 폐쇄나 원장의 자격정지는 아주 까다로웠다.

영유아보육법은 어린이집 원장이 영유아의 생명을 해치거나 신체 또는 정신에 중대한 손해를 입힌 경우, 운영기준을 위반하여 손해를 입힌 경우, 급식기준을 위반하여 손해를 입힌 경우 등에 원장의 자격을 정지하거나, 자격정지 처분을 3회 이상 받은 경우 자격을 취소하고 어린이집 시설을 폐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 별표9)은 위반행위로 ▲부정 교부금, ▲보육교사 배치 기준, ▲급식 관리, ▲아동학대, ▲통학버스 및 교통안전 등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며 다양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행정처분까지 이어지는 데에는 난관이 많았다.

어린이집의 위반 행위로 원장의 자격정지 및 시설폐쇄 조처는 크게 5단계로 이뤄진다. '자격정지 및 폐쇄의 사유 발생 → 행정처분의 여부 결정 → 청문 → 자격정지 기간 및 폐쇄 여부 결정 → 처분'의 순서다. 자격정지 및 폐쇄의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는 아주 많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을 조리에 사용한 경우나, 원생의 생활기록부를 작성 및 관리하지 않은 경우부터 동두천에 위치한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 화곡동에서 아동학대로 일어난 사망 사건까지 이른다.

한 어린이집의 통원 차량. 짙게 선팅된 것을 볼 수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위반 행위가 비일비재 함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의 운영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데에는 지자체와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자격정지 및 폐쇄의 사유가 발생하면 지자체는 행정처분의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어린이집이 행정처분을 받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다.

경기도의 한 시청 관계자는 "안전벨트 미착용부터, 이미 제공된 급식 음식의 재사용 등 작은 위반 사항들은 아주 많은 편이다"라며 "하지만 지자체 입장에서는 사건의 경중을 따져 이에 행정처분을 내릴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경'한 사안에 대해서는 섣불리 처분 조처를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안 그래도 어린이집 운영자들이 운영의 어려움을 많이 토로하는 편이고, 재정난으로 자진해서 폐업하는 경우도 많아 웬만하면 앞으로 시정해 나갈 수 있도록 도우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았다가 큰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지만, 모두 행정처분을 내리게 되면 우리나라 가정, 민간 어린이집의 절반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이런 안일한 대처가 이번 동두천 사고를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지은(가명) 씨는 "어린이집 개원의 자격 요건도 갖추기가 쉽지만, 어린이집 교사 역시도 자격증 취득이 쉽다. 몇 달의 과정만 거치면 어린이집 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데, 이렇게 진입장벽이 낮다보니까 교사의 질이 좋을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또 김 씨는 "뿐만 아니라 교사의 업무 처우 개선 역시도 중요하다. 교수의 질 낮은 근무 환경에서 일을 하다보니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도 여유가 없다. 그 점도 두루 개선되어야 할 구조적 문제다"라고 전했다.

올해 6월 기준 민간·가정어린이집은 3만2705곳에 달한다. 한편, 무상보육 시행으로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만 0세 영아는 2001년 1만1632명에서 지난해 13만9654명으로 12배 이상 급증했다. 문제는 다수가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하다 보니 민간·가정 어린이집이 텅텅 비어있다는 것이다.

수요·공급의 왜곡된 불균형, 적은 보육교사 수로 인해 터무니 없이 낮아진 보육교사의 진입장벽, 현실과 동떨어진 보육료 지원으로 인해 최소 인원과 비용으로 시설을 운영하는 어린이집, 이로 인한 현장 보육교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관한 문제들을 정부가 어떻게 현명히 풀어나가는지 국민이 지켜봐야겠다.

한편, 이날 어린이집 설치 상담을 끝낸 취재진에 구청 담당자는 "잘 생각해보라"는 말을 반복했다. "지난 주에도 한 원장님이 오셔서 울고 갔다. 작년에 개원했다가 재정난이 너무 심해져서 폐지하고 싶다고 상담 받았다. 요즘 거의 모든 어린이집들이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 한다.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는 것이 그가 전한 당부다. "그럼 처음부터 쉽게 인허가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냐"라는 질문에 이 담당자는 "우리는 그냥 공무원이다. 절차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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