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에 대한 사회 각계의 관심도가 커지고 있다. 정책 의제, 경제활동 방식의 전환, 시민들의 생활양식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포괄하는 화두를 가지고 여러 조직에서 사회 공헌을 넘어 본업과 연계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측정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하지만 정작 ‘사회적 가치가 무엇이며, 그것을 왜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들은 불충분하다.

상반기에 출판된 '사회적 가치와 사회혁신'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반갑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학계의 논의들을 엮어 낸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에게 ‘사회적 가치와 측정'을 주제로 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사진: 이재열 교수 제공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학문적인 분석이 사회적인 변화와 맞물려 적시에 출판되었다. 어떻게 기획이 됐는지 궁금하다.

2016년 여름 한국사회학회에서 이듬 해를 준비하면서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기여할 수 있는 키워드가 뭘까’를 고민하다 '사회적 가치'로 정했다. 내부 논의를 통해 철저히 학술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왜 사회적 가치가 중요한가?”에 대해 가장 철학적으로, 인간 본성과 우리 사회의 특징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다루고자 했다. 당장 가져다 쓸 수 있는 보고서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가치가 왜 필요한지, 관련 기관들은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펀딩을 제공한 쪽에서도 의의로“기업도 사회적 가치 추구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고 반갑게 생각해주었다.

-책은 사회적 가치를 ‘21세기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독자들은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대정신의 특징은 일종의 공명이 가능하다는 건데, 누군가 그 얘기를 하면 상당히 다른 영역에서도 같은 갈증을 가진 사람들이 “어 맞아, 그거다”라고 서로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1960~70년대 한국의 시대정신은 ‘경제성장’이었고, 80~90년대에는 ‘민주화’였는데, 그 때 그 가치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경제’의 가치와 ‘정치’의 가치가 중요했던 시대를 각각 지나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고용 없는 성장이고, 성장이 더 많은 불평등과 환경오염 등을 가져오니까, 어떤 형태의 성장인지에 대해 관심이 깊어지게 되었다. 추가적인 성장이나 민주화는 더 이상 사회문제의 해법이 아니고, 좀 더 지금 시대에 맞는 것이 ‘사회적 가치’라고 보는데, 사회적 가치는 결국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그 관계가 어떤 좋은 특성(quality)과 내용을 갖는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 하에서 역동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사회가 좋은 특성(quality)을 갖는 사회인가?

사회적 가치도 결국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경제가 성장하는 것과 사회가 발전하는 것은 다른데, 소위 경제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이 성장이라면, 사회발전은 어떤 가치 쪽으로 사회가 나아지는가에 관한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삶이 행복해지는 것, 즉 삶의 질이 높아지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고, 사회 차원에서는 ‘사회의 질(social quality)’이 높아지는 것이다.

‘사회의 질’은 미시-거시, 시스템-생활세계(개인)라는 두 축을 교차하여 크게 네 가지 특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시스템의 거시적 차원은 분배의 정의가 작동해서 사회 내 가장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도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되는 것이고(사회경제적 안전성), 미시적 수준에서는 시민권이나 인권 개념처럼 개인의 특수한 배경과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적 포용성(social inclusion)이 갖춰지는 것이다.

생활세계의 미시적 수준에서는 개인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고 소속된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 가능한지, 또 참여할 수 있도록 능력을 개발하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사회적 역능성).

생활세계의 거시적 차원에서는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개인들이 각자도생해서 뿔뿔이 흩어지는 게 아니라, 공통의 규범이나 가치에 기반해 소속감을 갖는 것(사회적 응집성)이 중요하다. 책의 제3장에서 다루고 있듯이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생존’이 중요한 가치인데, ‘생존’이라는 가치와 ‘사회성(the social)’이라는 가치 사이에는 상당한 갈등과 대립이 있을 수 있다.

-현 정부정책 기조인 사회적 가치와 공공성의 회복, 어떻게 구현할 수 있나?

우선, ‘공공성’에는 사회문제를 풀어나가는 시스템이 공정하고 개방적이며 투명하게 작동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한 문제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자원이 공정하게 배분된다는 몇 가지 함의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공공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기에 굉장히 좋은 기본적인 조건을 만드는 것이지, 그것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질이 높아지면 구조적으로 훨씬 더 유연해진다. 시스템과 시스템을 구성하는 개인들 사이에 활발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져서 시스템이 개인들을 질식시키지 않고, 개인들이 활성화된 시민사회가 시스템을 무력화시키지 않는다. 이 둘 간에 끊임없는 길항관계를 통해 어느 한 쪽이 과하게 치우치지 않게 하는 것, 그 균형이 잘 갖춰져 있는 사회가 이론적으로 보면 질적으로 높은 사회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시민의식이 발달한 시민사회가 정치나 경제 시스템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 가장 좋다고 본다.

-사회적 가치의 측정은 가능한가?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 정치적 가치와 대비해서, 또 한 개인에 비유하자면,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도 아닌 ‘인품’에 해당한다고 본다. 인품이나 인격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사회의 질(social quality)도 말은 간단한데 조작적으로 개념화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사실 경제도 마찬가지다. GDP라는 척도가 1930년대에 만들어진 후에 경제가 좋은지 안 좋은지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제대로 된 척도인지가 중요하다. 사회적 가치는 20세기 후반부터 발달하기 시작해서, 최근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 지표(Better Life Index)나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다양하게 반영되어 있다.

측정은 매우 어려운 문제인데, 기본적인 딜레마는 “가격=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한다. 가격은 화폐로 환산되지만, 가치는 시장에서 교환되는 일부에 한해 가격으로 환산될 수 있다. 가격을 매기면 통용이 되고, 신뢰도(reliability)가 높은 척도가 된다. 누가 가격을 매겨도 같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반면, 가치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타당성(validity)을 이야기한다. 이 가격표가 정말로 그 가치를 제대로 담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문제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두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신뢰도가 높을수록 타당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고, 타당성이 높으면 신뢰도가 떨어진다. 또한, 신뢰도 중심의 측정으로 가면 수치화가 중요해지고, 타당성 중심으로 접근하면 질적인 평가가 중요해진다.  

경제가치와 환경가치는 그동안 여러 가지 지표들로 구조화되었고, 특히 환경가치는 빠르게 합의된 내용을 적용하는 단계로 이행하고 있는 반면, 사회적 가치는 이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불가능한가?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적 가치의 측정도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무엇이 최적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논란이 상당기간 진행될 것이다.

-사회적 가치 측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현재 한 기업에서 진행 중인 수치화하는 방식은 사실 가장 조심스러운 접근이다. 논란을 줄이기 위해 객관화할 수 있도록 기업회계와 가장 비슷한 형태로 접근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당장 KPI에 반영되고, 어떤 일이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지 아닌지, 그것을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연쇄효과가 막대하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가치를 당장 화폐가치로 전환하여 측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또, 한두 기업에서 이것을 한다고 하면 굉장히 많은 리스크가 있고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어서 자연스러운 경로는 아니라고 본다. 

다른 방향을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첫 번째 방식은 미국처럼 환경, 인권, 조직 내 인종 다양성 등 다양한 가치에 대해 많은 자료를 모으고 나름대로 평가해서 투자자와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평가기관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시장이 다양화되고 사람들이 자기 기준에 맞는 평가방식을 가져다 활용하는 생태계가 조성되면 사회적 가치 측정에 대한 논의가 한 걸음 더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재단이나 싱크탱크 같은 곳에서 업종과 지역, 규모에 따라 굉장히 많은 조직들에 대한 정보를 거의 모집단처럼 가지고 있어서, 자기 조직에 대한 정보를 집어넣으면 그 생태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구상해볼 수 있다. 특정 업종에서 어떤 조직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같은 조직군에 있는 다른 곳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이다. 미국 파운데이션 센터(Foundation Center)의 인프라가 이런 모델에 가깝다. 

시장화로 갈 것인지, DB화할 것인지 방향을 생각해보아야 하고, 사업/정책의 산출(아웃풋)과, 결과(아웃컴)에서 나아가 임팩트까지 보려면 우선 굉장히 많은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 현재로서는 데이터 수집이 어렵기 때문에 대개 투입(input) 중심으로 측정을 하고 임팩트까지는 못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평가에 있어서도 연구개발(R&D)이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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