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하의 요즘세상] 재벌 3세와 귀족, '그들만의 경쟁'
[김동하의 요즘세상] 재벌 3세와 귀족, '그들만의 경쟁'
  • 김동하 한성대학교 교수
  • 승인 2018.04.1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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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 모 주류업체 임원에게 사석에서 들은 얘기다. 국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전문성을 가진 전통 주류기업의 일본법인장이었는데, 그는 현재 일본이 '사케'로 전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지만 한국의 전통주 산업도 과거에는 일본 못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가 설명한 한국 전통주 역사의 착취적인 단면은 이랬다.

조선시대, 이 땅의 양반 귀족 자제들은 청주와 소주를 포함한 다양한 술을 빚어서 먹는 경연대회를 자주 가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맛과 향의 주종들이 끊임없이 개발되었는데, 심지어 경연 중에는 누가 쌀을 얼마나 많이 농축시키느냐 하는 경쟁도 빚어졌다고 했다. 쌀을 가장 많이 농축시켜 만든 술이 가장 큰 부의 상징처럼 남용됐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호리병 한병에 6가마니의 쌀이 들어가는 엄청나게 비싼 술이 폭발적인 인기였다니, 먹을 쌀이 없어 굶어죽기도 했던 백성들에겐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가뜩이나 불붙은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갑질 논란에 비난 한 술 더 얹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조 전무 '개인'의 문제로 보는 건 목소리를 확인할 수 없다는 회사의 말 만큼이나 침소봉대에 가깝다. '과도한 업무욕심 탓'으로 돌리는 본인 스스로의 사과도, 한국경제에 도도하게 흐르는 뿌리 깊은 악습과도 거리가 먼 얘기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한국사회 특유의 '경영권 승계' 문제다. 지분 승계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재산권의 문제지만, 경영권은 원칙적으로는 승계되는 재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영권은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주주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위임을 받는 것일 뿐, 대주주의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성격의 권리가 아니다.

한국 재벌의 세습문제들 중 지분을 싸게 상속받는 것보다 더 큰 해악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경영진'에 이름을 올리는 행태다. 조현민 전무가 미국국적이면서 27살부터 6년간 국적항공사의 등기임원에 올라 있었던 것처럼, 불법과 편법도 난무한다. 그렇게 경영진에 오른 이들은 직원들을 부려 '성과'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으로 자신의 부와 능력을 뽐내려는 행태가 계속된다. 마치 하인들에게 경쟁적으로 술을 빚게 해 자신의 부를 뽐내던 양반귀족들처럼 말이다.

회사 돈으로 회사 직원에게 과도한 업무와 폭언을 일삼아 자신의 성과를 드러내려는 걸, 단순히 회사를 잘 되게 하기 위한 경영진의 '업무욕심'으로만 볼 수 있을까.

백번 양보해 일가의 3세들까지 경영진으로 인정하더라도,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정작 대한항공 주식은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땅콩 회항의 주인공이었다가 계열사 대표로 복귀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지분이 없고, 심지어 현 사장인 아들 조원태 대표이사도 대한항공 주식은 한 주도 없다.

조원태, 조현아, 조현민 남매는 대한항공 30%를 보유한 한진칼의 지분을 지난해말 현재 각각 2.34%, 2.31%, 2.30%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 일가일 뿐이다.

가업을 잇는 일이 일상화된 일본에서도 한국 재벌기업처럼 경영권 승계가 일상화된 대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토요타나 파나소닉의 집안 자녀들이 변호사 또는 임직원들한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가? 창업주 가족이 동반퇴진했음은 물론이고 지분까지 모두 회사에 환원한 혼다의 예는 말할 것도 없고, 경영일선이 아닌 관리자 역할만을 선언한 토요타 3세의 예도 우리에겐 너무 낯선 얘기다.

재벌 3세들이 지분을 상속받고, 하는 일 없이 배당으로 이익을 가져간다고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영권'을 휘두르며 성과를 뽐내려는 '그들만의 경쟁'의 피해는 얼마나 더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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