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해설위원실장

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정치판을 개혁하겠다는 어느 ‘젊은’ 정치인(혹은 지망생)이 말했지요. “무임승차 비율이 가장 높은 역이 경마장역이다”라고. 그리고는 ‘노인’들에 대한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그 젊은 분이 언급한 ‘경마장역’에 가지는 않지만 이제 영락없이 ‘노인’으로 분류될 ‘연세’에 진입한 처지에서 한마디 올리고 싶군요.

조금 ‘연세’를 드신 분들이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다는 ‘지공족’에 들어가는 것을 왜 기다리는가 혹 좀 생각해보신 적이 있는지요? 지하철 쪽에서 적자 이유로 줄곧 말하는 것이 무임승차 문제이기에 우리들 지공족이 과연 그런가 하고 자격지심 같은 생각이야 왜 안 하겠습니까만 우리 ‘노인’들이 먹고살 만한데 할 일이 없어 놀러 다니고 무슨 투기나 하러 다니는 것처럼 말씀하시면 좀 많이 섭섭하지요.

우리 노인들은 돈이 없습니다. 그동안 그저 열심히 벌어서 집에 가져다주면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막상 60세도 못 채우고 직장을 나가게 되었고, 정년하고 나면 용돈을 잘 챙겨준다는 약속을 믿고 월급봉투를 뒤로 빼돌리지 않았는데, 막상 퇴직 후 직면한 현실은 어렵게 살림을 꾸려나가는 주부에게 용돈을 내놓으라고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우리 같은 직장인 출신들은 국민연금이라는 소득원이 있습니다만 그 액수라는 것이 공무원 등의 연금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고, 그것도 못 받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잘 아시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어디 나가서 친구라도 만나고 경조사에도 가려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고... 그러기에 교통비라도 아끼고 싶어 ‘지공족’ 진입을 고대해왔는데 마치 할 일 없이 경마장에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팔자 좋게 놀러 다니는 그런 사람들에게 지하철을 공짜로 타게 해주어야 하느냐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 같더군요.

노인들을 대변하신다는 회장님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키워보지 않고...”라든가 “정치판에서 무위도식하니...” 운운하며 그 정치인의 발언을 나무라셨다는데 그런 발언은 감정 살 일이기에 적절치 않다고 보지만, 정치인들이 젊은이들의 표를 의식해서 충분한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 회장님의 말에 대해 어느 교수분이 "이런 게 정말 꼰대들의 막말"이라면서 자신도 내년이면 무임승차 나이가 되는 등 "급격하게 무임승차 인구가 늘어나는데, 다음 세대들에게 계속 전가하란 말이냐"고 목청을 높인 것도 조금은 남 생각을 안 하는 발언이라 하겠습니다.

 서울지하철을 탈 때 "행복하세요"라고 나오는 신호음은 노인들을 오히려 불행하게 한다. 사진 이동식 
 서울지하철을 탈 때 "행복하세요"라고 나오는 신호음은 노인들을 오히려 불행하게 한다. 사진 이동식 

대부분의 노인들은 대학교수 출신들처럼 많은 연금이나 퇴직 후의 자리, 강연료 수입 등을 기대하지 못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그런 자신의 처지를 기준으로 지공족 문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하면, 노인들 처지에서는 조금 화가 나지요. 다만 ‘노인’들의 무임승차로 지하철 쪽에 그만큼 승객으로부터의 수입이 줄어드는 측면이 있기에 "누가, 어떻게 하든 개혁해야 할 사안"인 것에는 동의를 합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지공족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 노인들이 과거에 경제활동을 할 때에는 안 그랬지만 현재는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국제기구에서도 그것은 인정하지 않습니까? 국민연금의 평균 수령액은 지난해 61만 원, 누가 보더라도 국민연금만으로는 최저생활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실 평생 직장생활을 한 사람들은 월급 때마다 세금을 많이 냈지만 국가로부터 직접 혜택을 받은 것은 거의 없고요. 알다시피 토요일도 못 쉬었고, 야근으로 밤을 새워도 시간외 수당 같은 것은 꿈도 못 꾸었고 열심히 일만 하면 노후가 보장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이럴 줄은 몰랐지요.

일만 하다가 어느 날 경영이 어떻고 IMF가 어떻고 하며 회사를 쫓겨나 한숨으로 지새운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버티고 버텨오다 이제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 정도를 보는 것인데, 그런저런 사정은 감안해주지 않고 우리들을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처럼 표현하시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경로석에 자리가 없어 일반석에 앉은 노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된다.  사진 이동식
경로석에 자리가 없어 일반석에 앉은 노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된다. 사진 이동식

최근에 나라에서 어려운 분들을 위해 지급하는 각종 혜택이나 보조금이 늘어나는데 우리 노인들은그것만도 못하다는 자조적인 탄식을 합니다. 우리 때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병사들의 월급 수준, 그리고 주 4일 근무를 훈장처럼 자랑하는 회사들 소식을 들으면 정말 우리는 한심하지요. 이번 설에 손주들이 와서 세배를 하는데 그 세뱃돈은 어땠던가요? 그 돈 마련을 위해 평소에 한푼이라도 아낀 것인데, 마치 우리가 손주들 먹을 것을 가로채는 할아버지가 된 것 같았습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라고 턱없이 공짜를 요구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젊을 때 나라 경제를 위해 고생을 해서 이런 경제를 이룬 것은 사실 아닌가? 그렇다고 지하철 무임승차 정도의 혜택도 못 해주느냐고 우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우리가 그렇게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나라에서 그렇게 한 것인데, 그게 문제라면 우리도 비용 부담을 하겠다. 우리도 공짜 노인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그러니 비용을 부담하겠는데 다만 그것을 형평성 있게 해 달라.”

이에 대해 정치인들이 머리를 짜내어 무임승차 대신에 바우처를 지급하는 방안도 내던데, 그것도 생계를 위해서 더 많이 다녀야 하는 분들은 그만큼 또 부담이 늘어나니 힘들고 손해지요.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이라는 것이 결국 돈을 벌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것이라면 현행 제도를 전면 검토해서 모두가 공평하게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저 같은 경우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것으로 벌써 지하철 무임 혜택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하철 정거장에서 멀리 사는 노인들도 같은 혜택을 받도록 버스와 지하철을 연계해 같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또 건강보험처럼 개인의 소득상황을 연계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 같고요. 열차를 탈 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주는 할인 혜택을 지하철에 함께 적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즉 지하철 승차 시 노인들의 기본 운임을 최소한으로 책정하고, 타고 가는 거리에 연계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서울에서 천안이나 춘천을 가는 것은 그만큼 거리 비례로 요금을 더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 없이 지하철을 타는 분들, 공짜라고 멀리까지 다니며 젊은이들의 눈총을 받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 노인들은 필요한 만큼 누리는 만큼 자신들이 최소한의 비용을 부담하면 되는 것입니다. 버스만 이용하느라 돈이 많이 드는 분들도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최소한이라도 부담을 같이 하는 것이니 젊은이나 어린이들, 우리의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원망의 마음을 갖지 않을 명분이 되는 것이지요.

이제는 지하철 무임승차의 무작정 폐지라는 야박하고 무책임한 주장보다는 지하철 운임을 버스운임과 연계해서 사용자 부담 원칙에 따라 최소한도를 나눠서 부담하는 제도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현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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