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선고
고강도 수사만 1년9개월여…검찰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제기
수사심의위서 '종결' 권고…수사 타당성·기소 정당성 인정 못받아
항소심 진행되더라도 사법 리스크 감소…M&A 등 추진 가속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저는 이 합병 과정에서 개인의 이익을 염두해 둔적이 없고 제 지분을 늘리기 위해 다른 주주에게 피해 입힌다는 생각은 맹세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합병이 두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고 지배구조 투명화와 단순화라는 사회 전반 요구에 부응한다고 생각했기에 진행했던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같이 말하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이날 약 8분 간 최후 변론을 읽어내려가던 이 회장은 "40대 중반인 2014년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쓰러진 뒤 개인적으로 3번의 영장 실질 심사와 1년6개월 수감생활을 겪었는데 어느덧 저도 50대 중반이 되었다"며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감정을 애써 추스리던 그는 끝내 목메인 목소리로 "삼성을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들의 사랑받는 기업으로 만들겠다. 저의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가는데 집중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이 회장은 검찰 조사부터 최후 변론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경영적 판단에 따른 합리적 선택'이었음을 강조해왔다. 이러한 주장에 재판부가 상당부분 납득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혐의에 대해 재판부가 모두 무죄를 선고해서다. 

"모든 건 승계 때문" VS "법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 지귀연 박정길)는 5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재판과 관련,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행위를 자행했다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로써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검찰이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함에 따라 집행유예 이상이 나올 가능성은 적다는 지적이 있었다. 통상 검찰 구형보다 낮은 수준에서 선고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검찰이 기소 의지를 드러내왔고, ESG 경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점,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가 줄어든 점, 국내 경기 침제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했기에 1%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더욱이 재판부가 지난달 26일 선고 공판을 앞두고 돌연 최종 기일을 열흘 뒤로 연기하기도 했다. 선고를 앞두고 이 회장과 검찰 측이 의견서를 제출한 까닭이다. 양측 모두 이번 재판에 사활을 걸었던 셈이다. 

지난 2020년 9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형사부는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전·현직 삼성 임원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회장에게는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 실장·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삼성물산 최치훈·김신 대표·이영호 최고재무책임자 등에게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배임 등 혐의를 적용됐다.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은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혐의가 적용됐고, 최지성 전 실장과 김종중 전 전략팀장,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대표 등은 삼바 분식회계에 관여했다며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은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후 삼바의 회계 변경에 이르는 과정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의심했다. 승계 비용 최소화, 경영권 대물림을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 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주도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제일모직 대주주인 이 회장이 삼성물산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실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1대0.35의 비율로 합병됐다. 덕분에 제일모직 대주주(23.2%)였던 이 회장은 자연스럽게 삼성물산의 대주주가 됐다. 

이를 위해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려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조종 등 각종 불법행위를 자행됐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4조5000억원대에 이르는 삼바 분식회계와 그룹 수뇌부의 위증 또한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뤄졌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이처럼 이 회장의 그룹 내 지배력을 키우는 대가로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또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본잠식의 위기에 놓이자 삼성바이오SP에 대한 미국 합작사의 콜옵션(주식을 미리 정한 가격에 살 권리)을 회계에 반영하지 않다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후 부채로 잡으면서 자산을 과다 계상했다는 혐의도 적용했다.

삼성 측의 입장은 다르다. 시세조종 같은 불법 행위는 없었고, 이 회장은 주가관리를 보고받거나 지시하지 않았다며 일관되게 반박해 왔다. 합병은 필요에 따라 이뤄졌다고도 항변했다.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정상적으로 산정됐고,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전체 주주의 69.53% 찬성을 받았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도 국제 회계 기준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재차 강조했다. 특히 이 회장은 결과적으로 지배구조가 개편, 경영권 승계가 이뤄졌다 해도 이게 불법이 되지 않고, 계열사이 피해를 주지 않았다면 이 같은 지배구조 개편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수사만 1년9개월…서초동에 발 묶인 이재용

검찰의 수사는 지난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혐의 고발장이 접수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다 2019년 9월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으로 확대됐다. 이듬해인 2020년에는 전·현직 삼성 고위 임원들과 이 회장 조사가 이뤄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에 대한 처벌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고강도의 수사를 벌이며 이 회장과 삼성 측을 압박한 것이다. 압수수색만 50여차례 이뤄졌고, 삼성 전·현직 임직원을 대상으로 소환조사도 430여차례 진행됐다. 삼성 내부에선 "출장 잡기도 어렵다"는 볼 멘 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이 회장도 2번 소환 조사에 응했다. 서버와 컴퓨터(PC) 등에서 2270만건(23.7TB) 상당의 광범위한 디지털 자료를 압수, 분석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 회장이 '외부 전문가로부터 수사 타당성을 판단받고 싶다'며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하자 검찰은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며 강경 대응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에는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법원의 영장 청구 기각 사유를 들어 법적으로 혐의가 인정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강도 수사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법원과 수사심의위에 수사의 정당성이나 기소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수사심의위는 기소권 남용을 막고 수사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검찰이 스스로 도입한 제도. 검찰은 개혁 의지를 보여주고자 8번의 수사심의위 권고를 따랐다. 하지만 검찰은 이 회장 건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수사심의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입맛대로 수사심의위 권고를 취사 선택하면서, 체면치레를 위해 검찰 개혁마저 걷어찬 셈이다.

무엇보다 수사심의위에서 10대3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이 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를 내렸지만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사심의위의 권고 이후 회계와 경영학,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 등을 불러 사실상의 보강수사를 이어갔는데 검찰은 일방적으로 날짜를 통보하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전문가들을 압박해 논란을 빚었다.

검찰는 수사에 1년9개월 가량을 소요했고, 기소 후 재판에 또다시 3년5개월을 쏟았다. 구속영장실질심사 당시 법원에 제출한 수사기록만 400권, 20만쪽에 달할 정도로 검찰은 '칼을 갈았다'.

이에 이 회장은 서초동에 발이 묶였다. 그는 일주일에 1~2회 재판에 출석해야 했다. 실제 총 106차례의 공판 중 이 회장이 출석한 횟수는 95회나 된다. 법조계 인사는 데일리임팩트에 "방어권을 위해 재판을 준비하고 출석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정상적인 경영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삼성의 '총수 공백'도 장기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8년 넘게' 총수 공백 진행…이번에 풀릴까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참고인 신분으로 특검 조사를 받은 2016년 11월 이후 서초동에 불려다녔다. 이 기간 동안 이 회장은 검찰 소환조사만 10번을 받았고 구속영장실질심사도 3번이나 받았다.특검의 기소 직후 열린 80차례 재판 중에서 1심에서만 53차례 참석했다.

심지어 2017년 2월 구속 기소돼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가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재구속됐다. 이 회장이 가석방될 때까지 구속된 기간은 무려 565일, 그만큼 삼성의 성장 동력도 꺾였다. 

이 회장은 부친인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후 '뉴삼성'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밑그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처럼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사업은 줄줄이 밀렸다. 삼성전자는 2016년 하만을 마지막으로 빅딜이 멈췄다. SK, LG, 현대차그룹 등 경쟁사들이 빅딜을 통해 사세 확장과 첨단산업쪽 포트폴리오 경쟁력을 보강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초격차'의 상징이었던 삼성은 경쟁사들에 선두주자 자리를 빼앗기고 2인자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해 반도체 매출 1위는 인텔(487억달러)이 가져갔다. 인텔과의 매출 격차는 88억달러에 이른다. 2년 만에 인텔에 1위를 내준 것이다. 같은 기간 스마트폰 사업에선 숙적에 밀렸다. 지난해 전 세계 출하량 1위는 애플이 차지했다. 인공지능(AI) 기술 확산으로 수요가 급증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고성능 메모리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선점했다. 

이날 무죄가 선고됐지만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대법원까지 재판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길게는 3~4년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다만 이 회장의 경영활동은 다소 자유로워질 가능성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1심에서 삼성 측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경영권 불법 승계의 굴레에서 다소 풀려날 수 있게 된다"며 "중요한 것은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입증된다는 점이다. 약한 명분에도 정치적 프레임을 내세워 기소를 강행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항소심이 진행될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항소를 강행하며 처벌 의지를 꺾지 않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지난해 결심공판에서 "이 사건은 그룹 총수의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의 근간을 훼손한 것"이라며 "우리나라 최고 기업집단인 삼성이 '반칙의 초격차'를 보여줘 참담하다"고 밝혔다. 삼성을 본보기 삼아 재벌집단의 편법·탈법 승계를 막겠다는 의지를 엿보이는 발언이다. 

재계 일각에선 1심 결과가 검찰의 '재벌 강박증'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과거 어두운 역사가 있었고 잘못된 선택도 있었으나, ESG 강화로 국내 대기업들도 상당히 투명한 경영을 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검찰은 여전히 '재벌'에 대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것은 오히려 서초동"이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요즘처럼 기술 변화, 산업 재편의 속도가 빠른 시기 검찰의 기소 만능주의는 기업인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든다"면서 "기업인이 검찰의 전리품이 되는 일이 반복돼서야 되겠느냐. 확실한 불법이 아니라면 이런 식의 기소는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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