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현장 경영으로 삼성리서치행
차세대 통신 기술 동향·대응방안 점검
2018년 4대 미래성장 사업으로 낙점
선제 투자·세일즈 경영에도 점유율 낮아
6G, 미래 산업 기반 기술…선점 효과 커
"생존 달렸다" 임직원에 초격차 속도 주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4일 중국 텐진에 위치한 삼성전기사업장을 방문해 MLCC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새로운 기술 확보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일 삼성리서치를 찾았다. 올해 첫 현장 행보다. 이날 이 회장은 6세대 이동통신(6G)를 포함한 차세대 통신 기술 동향과 대응방안을 점검했다. 

총수의 현장 경영은 고도로 계산된 '전략적 행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위기론'에 시달렸다. 그룹의 구심점인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가 줄어들고 있어서다. 그런 만큼 이 회장이 '주력' 반도체 대신 통신 분야를 살핀 배경에 시선이 쏠린다. 

10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서울 우면동 소재 삼성리서치에서 △6G 통신기술 개발 현황 △국제 기술 표준화 전망 △6G·5G 어드밴스드 등 차세대 통신기술 트렌드를 살펴보고 미래 네트워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사업전략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새로운 기술 확보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있다"며 "어려울 때일수록 선제적 R&D와 흔들림 없는 투자가 필요하다. 더  과감하게 더 치열하게 도전하자"고 독려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글로벌 경기 침체, 산업 재편 가속화, 불안정한 국제 정세 등 복합 위기 상황 속에서도 선제적 투자와 R&D를 통한 초격차 기술 선점으로 미래를 대비하자고 당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수가 새해 처음으로 향하는 사업장은 의미가 남다르다. 사업 방향성과 중장기 전략의 가늠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지난 행보만 봐도 그렇다. 지난 2020년 화성 반도체연구소를 방문해 차세대 메모리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 사업전략을 점검했다. 2021년엔 평택 2공장 파운드리 생산설비 반입식에 참석, 중장기 경영 전략을 논의했다. 때문에 이 회장이 차세대 통신사업을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육성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미래 준비에 속도를 내야 하는 이중고에 처하면서 이 회장은 초격차 기술 선점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선제 투자와 R&D 강화를 촉구하면서 '기술 경영'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중이다. 지난 2022년 광복절 특별복권된 뒤 기흥캠퍼스 R&D단지 기공식을 가장 먼저 챙겼다.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우리가 먼저 미래에 도착하자" 등 이 회장의 발언도 첨단 기술 내재화에 방점이 찍혔다. 이는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방증하는 것이다. 

'초일류'를 지향해 온 삼성전자는 이전만큼 압도적 기술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방식을 적용한 3나노(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 양산에 성공했지만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에서도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선단 제품을 먼저 내놓은 데 이어, 최근 중국업체들도 2~3년까지 기술 격차를 줄인 상태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수요가 폭증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선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퀀텀닷유기발광다이오드( QD-OLED)는 추격자의 입장에 있고 AI는 거대언어모델(LLM)까지 내놓은 LG, 네이버 등과 비교하면 속도를 올려야 하는 시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에야 자체 생성형 AI 모델을 선보였다. 현재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6G는 회사가 선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다.

게다가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차, 확장현실(XR) 등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용량 데이터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통신 기술이 받쳐줘야 한다. 특히 삼성전자의 사업 전략이 탄력받기 위해선 차세대 통신 기술력이 요구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스마트폰-생활가전-TV 사업 간 시너지를 도모하기 위해 AI 활용도를 늘리고 있다. 스마트홈 플랫폼, 스마트싱스를 중심으로 연결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품과 서비스가 진화 중이다. 고효율 저전력 작업을 구현하기 위해선 반도체 외에도 통신 기술 고도화가 필수적이다. 이 회장이 6G에 공들이는 이유다. 

6G 상용화가 이뤄지면 산업 간 융복합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미래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이미 세계 각 국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은 6G 기술 주도권 확보를 국가적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말 6G 기술을 12대 국가전략기술로 선정하고 육성에 나섰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6G 는 첨단 기술을 일상에서 구현하게 하는 핵심 기반 기술"이라며 "이 회장이 5년 뒤 네트워크사업의 주력 먹거리로 6G를 키우겠다는 구상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통신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2019년 1월 새해 첫 경영 행보로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의 5G 네트워크 통신 장비 생산라인 가동식을 택한 것은 이 회장이 차세대 통신기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방증한다. 당시 이 회장은 "새롭게 열리는 5G 시장에서 도전자의 자세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도 "통신도 백신만큼 중요한 인프라로,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아쉬울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6G도 내부적으로 2년 전부터 팀을 둬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조직부터 R&D, 영업·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진두지휘하면서 사업 기반을 만들었다. 4세대 이동통신(LTE)이 서비스되기 시작한 2011년 5G 통신기술을 연구할 전담 조직을 신설했고, 무선사업부와 네트워크사업부에 분산됐던 통신기술 연구 조직을 통합해 차세대 사업팀으로 조직을 키웠다. 2019년에는 삼성리서치에 차세대통신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차질 없는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도 이어졌다. 이동통신 기술은 세대를 거칠 때마다 막대한 선제 투자가 필요하다. 이 회장은 2018년 3년 간 25조를 투자해 5G를 4대 미래성장 사업으로 키우기로 결정했다. 2022년 240조원 투자 계획에도 차세대 통신은 핵심사업으로 분류됐다.

이 회장의 의지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5G 통신기술을 상용화에 성공했다. 자체 개발 칩셋을 탑재한 엔드 투 엔드 초고주파수 대역 5G 솔루션, 5G 기반의 비지상 네트워크(NTN) 표준기술을 확보하며 경쟁사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28GHz 초고주파수 대역에서 최고 속도로 최장 거리 전송에 성공, 5G 기술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회장은 직접 세일즈에 나서 사업 기회도 만들어갔다. 인맥을 활용해 통신 분야에 대한 기술적 논의를 한 뒤 회사의 강점을 강조, 수주로 이어지게 한 것이다. 2019년 이 회장은 일본 주요 이동통신 사업자들과 만나 5G 조기 확산과 서비스 안착을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는데, 이후 NTT도코모 최고경영자(CEO)와 직접 협상을 진척시켰다. 

다른 지역 통신사와의 계약 과정에서도 이 회장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설득하며 물꼬를 텄다.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과 7조9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을 당시, 이 회장은 친분이 있던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와 수 차례 화상통화를 하며 설득했다. 디씨 네트워크와 1조원대 계약을 진행할 땐 이 회장이 찰리 에르겐 회장과 산행을 함께하며 삼성의 5G 통신 장비 강점을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인도 통신장비 시장을 뚫는 데에도 인맥을 활용했다.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그룹 회장 자녀들의 결혼식에 국내 기업인 중 유일하게 초청 받았는데 이 같은 친분은 수주로 연결됐다. 인도 최대 통신사인 릴라이언스 지오는 현재 전국 LTE 네트워크 전체에 삼성 기지국 장비를 사용 중이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3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시장조사업체 모바일 엑스퍼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 통신장비 시장 순위는 에릭슨(26.9), 노키아(21.9%), 화웨이(20.4%), ZTE(14.5%), 삼성전자(5.0%) 순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늘어났지만, 3위권 그룹과의 격차가 여전히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통신장비 시장 진입 문턱이 높은 탓이다. 계약 규모가 큰 데다, 대부분 국가적 인프라인 까닭에 기존 파트너와 계약을 갱신하는 경우가 많다. AI, 메타버스 같은 기술 적용이 늘어날수록 이동통신 장비의 성능이 뒷받침 돼야 하고, 이에 따른 교체 수요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더라도 기회를 잡기 어려웠던 셈이다. 

이 회장은 6G를 5년 뒤 네트워크 사업 주력 먹거리로 키울 계획이다. 핵심 인력 확보, 연구개발을 위해 집중적으로 투자해 차세대 네트워크사업 리더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다. 이에 따라 통신망 고도화·지능화를 위한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융합 서비스와 첨단 기기 등 신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마트폰과 네트워크 장비, 반도체 칩까지 아우르는 기술 포트폴리오의 장점을 살려 6G 통신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연구 진척도 빠르다. 2020년 7월 6G 백서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초연결 경험'이라는 비전과 후보 기술, 표준화 일정 등을 공개했다. 2022년엔 삼성 6G 포럼을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도 했다. 

특히 5G에서의 패착을 되풀이하기 않기 위해 기술 표준화 논의에 적극적이다. 통신 표준을 위해서는 UN 산하 ITU-R이 기술 요구 조건을 정의하고, 3GPP 같은 단체들이 기술 규격을 제정하게 된다. 이후 여러 단체들의 제안과 합의를 거쳐 새 기술을 표준으로 만든다. 6G 기술 표준화 논의는 2025년부터 시작될 예정인데, 삼성전자는 3GPP에서 업계 최다 의장석(의장 2석, 부의장 7석)을 보유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재용 회장의 세일즈 경영으로 삼성전자는 메이저업체들과 협력관계를 맺으며 입지를 넒히는 상황"이라면서 "6G 준비가 진행되는 점을 고려할 때, 차세대 통신에선 화웨이, 에릭슨, 노키아의 3강 체제를 파고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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