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논설위원, 가정경영연구소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지난 12월 26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동거하는 남녀에게도 가족 지위를 인정해 법적,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등록 동거혼’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젊은 세대가 복잡한 이혼 절차 등으로 혼인을 꺼리자, 프랑스가 1999년 민법에 넣은 시민연대계약(PACS:팍스)을 참고한 제도로 네덜란드, 벨기에 등도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미혼 성인 두 명이 관할 관청에 신고만 하면 ‘동거가족’으로 인정받는다. 이후 등록 동거혼 커플은 공동으로 소득 신고를 하고 납세할 수 있어 세액이 줄어든다. 건강보험, 실업수당 등의 혜택을 본인뿐 아니라 파트너도 받을 수 있다. 결혼한 가족과 유사한 법적 혜택을 누린다. 결혼과 달리 등록 동거혼은 배우자 가족과 인척 관계가 발생하지 않는다. 각자의 재산은 원칙적으로 각자의 재산으로 보고 공동 소유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동거 중 아이가 태어나도 커플 중 남성은 자동으로 자녀 친권과 양육권을 갖지 못한다. 본인 아이라는 걸 확인하는 별도 절차를 밟아야 친권 등을 가질 수 있다.

커플 중 한 명이 관할 관청에 ‘해지 요청’을 하는 것만으로도 등록 동거혼은 해소된다. 각자 재산을 관리해 왔기 때문에 재산 분할은 없다. 배우자의 연금을 떼어달라는 분할 요구도 할 수 없다. 헤어진 뒤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는 있다. 2020년 기준, 프랑스에선 등록 동거혼 신고(17만 389건) 건수가 혼인 신고(15만 4581건) 건수보다 많았다. 동성간 동거혼은 7%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 이성간 동거혼이다(조선일보 2023년 12월 27일 기사).

정부는 동성간 동거혼은 인정하지 않을 방침인데, 새해부터 등록 동거혼 관련 행사 등을 열어 공론화에 나설 계획이다. 동거의 유연성과 결혼의 보장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고 양성평등 인식을 높이는 제도로 자리 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과거에는 결혼 적령기가 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당연히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즈음엔 결혼과 출산을 ‘선택’으로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비혼을 선언하고 출산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2022년 합계 출산율이 0.78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국가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 사정이나 부모의 반대 등, 여러 가지 이유나 필요 때문에 동거가 알게 모르게 늘고 있지만 혼전 동거에 대해서 아직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준비도 없이 충동적으로 하는 10대~20대의 동거나 문란한 동거는 자제해야겠지만 중년이나 노년의 동거까지 같은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혼인을 통해서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구조 아래에서는 저출산 문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프랑스의 비혼 출산율은 60%에 이르고 OECD 34개국의 평균도 43%인데 한국의 비혼 출산율은 2.6% 정도로 매우 낮다. 저출산 문제는 주거나 직업의 안정성, 그리고 경쟁적인 육아나 교육 환경 등, 많은 요인이 얽히고설켜 있어 한 가지 방법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등록 동거혼이 출산율을 확실하게 높인다는 일관된 연구 결과는 많지 않지만, 프랑스의 2021년 합계출산율이 1.82명으로 주요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을 보면 희망을 읽을 수 있다.

모든 것을 갖추어야 결혼이 가능하고 협의 이혼이 아니면 소송을 걸어 재판을 통해서만 이혼할 수 있는 제도하에서는 결혼을 미루거나 안 하게 된다. 결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치러야 하는 대가보다 적고 그런 이점이 결혼을 통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으면 누가 굳이 결혼하려고 하겠는가.

주변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지옥 같은 육아 전쟁을 보며 비혼 결심을 굳히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집과 안정적인 직장에다 상견례, 혼수, 예물, 결혼식, 폐백, 신혼여행, 양가의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한 가지 법률혼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할 때이다.

아직도 동거라면 무조건 반대하고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되고 2015년 간통죄가 폐지되었지만 극렬하게 반대하던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큰 부작용은 별로 없었다. 등록 동거혼이 가정을 붕괴시키고 가족 해체와 문란한 성관계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변화하고 점점 복잡해지면서 결혼, 이혼, 출산 등 가족에 관한 가치관이 급격하게 변하고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법률혼의 테두리를 벗어난, 이름조차 붙이지 못했던 관계의 사람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여성가족부가 2023년 9월 발표한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조사에 의하면 평균 초혼 연령이 남성 33.7세, 여성 31.3세로 30대 후반~40대의 결혼도 증가하고 있는데 혼인 전 성관계를 금기시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이제는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차선책을 만들어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 ‘생활동반자법’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중년 독신, 노인 커플, 같이 사는 비혼 형제자매, 친구,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사는 사람, 보호시설에서 독립한 청년, 위탁가정 등 실질적인 생계와 돌봄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후속 조치도 필요하다.

등록 동거혼 제도가 도입된 후에도 여전히 등록하지 않거나 등록 후 결혼하지 않는 커플도 있겠지만 프랑스에서는 PACS 후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살아보고 결혼한다고 해서 상대방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거가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결혼 만족도를 높여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결혼생활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많다. 한 가지 삶의 유형이나 특정 가족 형태만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직된 사회 구조를 이제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

등록 동거혼을 당장 도입하기 어려우면 지금부터라도 관계 부처의 협의와 사회적 논의를 거쳐 공론화하는 작업이라도 적극적으로 벌일 일이다. 인구 절벽의 참혹한 미래를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경고하는데도 곧 닥쳐올 미래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둔감하다. 이제 과거 정책을 적당히 손보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가치도 챙기면서 새해에는 정교하고 따뜻한 제도와 정책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훈훈한 세상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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