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I,SDGs 통합 리포트. 사진=GRI
GRI,SDGs 통합 리포트. 사진=GRI

[데일리임팩트 이종재 고문·조혜진 객원기자] #1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의무 공시 시기를 연기해 달라. 책임 면제 기간을 최소 2~3년 설정해 준비 시간을 더 부여해야 한다. 스코프3(전 가치사슬 상 탄소 배출량) 의무 공시 일정을 늦추고 연결 기준 공시도 시기 상조다"

지난 8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대기업과 중견기업 ESG 담당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나타난 기업들의 의견이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2025년 의무화가 무리라는 결론이다.

#2 "새로 제시된 지속가능성 정보 공개 규칙들이 부담스럽다. 공시 기준의 요구사항이 과하다.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물 소비량 폐기물 발생 데이터를 비롯해 직원 이직률, 임금 등 소셜 데이터도 수집하고 있으나 공시 보고의 어려움이 상당하다"

로이터 통신이 지난 6일 개최한 로이터 임팩트 컨퍼런스에서 나타난 기업들의 반응이다. 20년 이상 보고서를 발행해 온 기업들조차 새로운 공시 표준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대단히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새로 제시된 공시 표준들은 지난 6월 26일 확정된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공시 표준과 7월31일 EU 의회를 통과한 EU 공시 기준인 ESRS(유럽지속가능성공시기준)를 의미한다.

올 들어 주요 국제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 표준들이 경쟁적으로 확정 발표되자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 새로 의무화 대상에 포함되는 기업들은 물론이고 기존 발행해 온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표준에서 요구하는 수준과 내용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어려움은 스코프3 공개 등 까다로운 적용 기준에 있다. 개념의 정의는 물론 적용 범위, 측정 방법 등에서 특정하기 어려운 조항들이 많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관련해 기업들에게 부담스런 또 다른 이유는 경쟁적으로 제시된 다양한 표준들이다. 현재 확정 발표된 ISSB 표준과 ESRS에다 연내 발표 예정인 미국의 SEC(증권거래위원회) 기후 공시 규칙 등이 올해 들어 제시된 표준들이다. 기존 국제 공시 표준인 GRI(글로벌보고이니셔티브) 표준이 여전하고 UN SDGs(유엔지속가능발전목표) 역시 기업들의 주요 공시 표준이다. 이중 어떤 표준을 핵심 기준으로 정리하고 어떤 표준까지 반영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기업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들 표준 중 GRI 표준과 ISSB 표준, UN SDGs는 전 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제시된 표준이고 ESRS와 SEC 기후 공시 규칙은 각각 유럽과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면서 이들 역내 기업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들에게도 적용된다. 다양한 국제 거래가 불가피한 국내 기업들의 경우 공시 표준 선택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보고 대상 목표도 다양한 공시 표준의 등장과 함께 수반된 어려움이다. 지금까지 이해관계자란 이름으로 사회 전반적인 관심 대상자들을 목표로 보고서는 발행돼 왔다. 하지만 ISSB 표준과 SEC 기후 공시 규칙은 투자자를 집중적인 보고 대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기업에 투자할 자본시장의 의사결정에 도움되는 내용을 보고하라는 표준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적용할 공시 표준은 일반 기업과 공기업,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 등으로 나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까지 발행돼 온 보고서들이 적용 표준을 혼합해 사용해 왔다는 점에서 중점 선택 표준을 정하고 다른 표준들을 부수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이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전한 GRI, 약진의 TCFD와 SASB

올 7월 말까지 국내 시가총액 200대 기업들 중 151개사(75.5%)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ESG행복경제연구소가 국내 시총 200대(2022년 12말 기준) 기업들이 올해 7월말까지 공개한 지속가능성경영보고서 분석 결과다.

보고서 발간 기업 중 현 공시 표준인 UN SDGs, GRI 표준, SASB(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 표준, TCFD(기후 관련 재무 공시에 대한 테스크포스) 중 4개 모두를 채택한 기업 수는 104개이고 3개를 적용한 기업은 20개사다. 각 표준의 활용도는 GRI 95.4%, SASB 84.1%, UN SDGs 82.1%, TCFD 76.8% 등의 순으로 GRI의 비중이 가장 높다.

한국거래소 신고기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2020년 38개, 2021년 78개, 2022년 131개에서 올해는 9월15일 기준 151개에 달한다. 올해 발간된 보고서의 적용 표준은 GRI와 SASB, TCFD, UN SDGs이고 4개 모두 채택한 기업은 109개, 3개 적용 27개 등이다. 이중 GRI는 151개사 모두 적용됐고 나머지 표준 중 TCFD와 SASB 표준 적용기업의 사례가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국내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적용 표준의 지난 5년 추이를 보면 극명한 세 가지 특징을 발견한다. GRI의 예외없는 적용과 UN SDGs의 여전한 활용. 그리고 TCFD와 SASB의 약진이다. SASB는 업종별로 공시 내용을 세분화한 표준이고 TCFD는 환경 부문에 집중한 표준이다.

*한국거래소 보고서 발간 공시(2023년9월15일 기준)                                                                             연도별 공시표준 적용추이. 사진=코스리 DB    
*한국거래소 보고서 발간 공시(2023년9월15일 기준)                                                                           
연도별 공시표준 적용추이. 사진=코스리 DB    

뚜렷한 약진 추세를 보이는 TCFD와 SASB 표준은 지난 6월 26일 ISSB 표준 공식 발표와 함께 ISSB 표준으로 통합됐다. 앞으로의 보고서 표준이 GRI와 ISSB 양대 축으로 자리할 것이란 예측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지금까지 기업들이 적용해 온 표준의 추이로 미루어 앞으로는 GRI와 ISSB를 중심으로 UN SDGs 역시 무시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새로 등장한 ESRS와 SEC 기후 공시 규칙이 혼용될 수 있다. 여기에서 기업들의 적용 표준에 혼선이 불가피한데 결론부터 정리하자면 상장기업과 일반 기업이 같을 이유가 없고 일반 기업과 공기업은 고려 대상 표준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일반기업과 공기업의 적용 공시표준은 같지 않다

공시 표준은 크게 두 부류로 이중 구분된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는지와 중대성 기준에서 단일 중대성을 적용하는지 여부다. 지역적으로 유럽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은 ESRS를 보고서에 적용해야 하고 미국에 상장돼 있거나 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은 앞으로 확정될 SEC 기후 공시 규칙을 보고서에 담아야 한다.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하지만 ISSB 표준은 투자자 중심에 환경 관련 항목을 강조(단일 중대성)하고 있고 GRI는 전 사회적 이슈를 포괄하는 이중 중대성에 무게를 둔다. EU의 ESRS도 GRI와 마찬가지로 이중 중대성을 반영하고 미국의 SEC 기후 공시 규칙은 ISSB 표준과 같은 단일 중대성 접근을 한다. UN SDGs는 투자자보다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회적가치 실현 중심의 단일 중대성이다. (이들 5개 주요 표준의 상관관계는 지난 시리즈 14회 참조)

기업별로 적용 표준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기업별 특성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보고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내용과 보고서 이용자인 이해관계자를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표준의 적용 비중이 같지 않다. 일반 기업이라 하더라도 상장사의 경우 투자자가 제1의 이해관계자이고 비상장사에게는 투자자를 포함한 금융권 모두가 이해관계자의 우선순위 대상이다.

따라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의무대상인 상장사의 경우 제1 적용 대상 표준은 누가 뭐래도 ISSB 표준이다. 유럽에 지사를 두고 미국에도 상장된 국내기업이라면 앞으로 ISSB 표준과 ESRS, SEC 기후 공시 규칙 모두를 반영하는 보고서를 작성해야한다.

비상장사의 경우 부담은 적을 수 있으나 상장사와 같은 준비가 불가피하다. 일부 상장 공기업과 외부 자금조달이 불가피한 대형 공기업 역시 지역별 표준과 투자자, 금융권 중심의 이해관계자에 대응하는 보고서가 작성돼야 한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인 지속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GRI와 UN SDGs 역시 상장사나 일반 기업 모두 표준에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대부분 공기업의 경우 정부와 국민을 제1의 이해관계자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GRI와 UN SDGs의 비중이 다른 그 어떤 표준보다 높다. 이해관계자를 투자자에 집중하고 있는 ISSB 표준의 적용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아도 공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가치가 훼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2025년부터 연차적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 의무화 대상인 상장기업의 경우 ISSB 표준과 ESRS, SEC 기후 공시 규칙을 중심으로 GRI와 UN SDGs를 병용하고 의무화 대상이 아닌 일반 기업의 경우 표준의 적용에 좀 더 여유를 가져도 무방하다. 특히 대부분 공공기관의 경우 지금처럼 GRI와 UN SDGs 중심의 표준으로 충분하고 환경 경영에 집중한 단일중대성 표준에 대해 상당기간 크게 고민할 이유가 없다.

특정 표준만을 대상으로 한 준비보다 포괄적 대응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표준 중 탄소배출량 등 환경경영 부문의 상당 조항은 3~5년 추세치를 담아야한다. 따라서 새로운 강화 표준들이 2025년 보고서부터 적용되지만 이미 관련 준비가 불가피하다. 최근 PwC 코리아는 ‘EU의 CSRD(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ESRS 이해 및 대응 방안’ 보고서를 통해 시가 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30% 이상이 2026년부터 ESRS에 따른 보고서 발행 의무가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글로벌 3대 지속가능성 공시(ISSB 표준, ESRS, SEC 기후 공시 규칙)중 가장 복잡하고 광범위한 ESRS를 중심으로 공시를 준비한다면 국제지속가능성 공시기준 모두 대응이 가능하다는 요지의 견해를 밝혔다.

또한 공시 표준이 앞으로 ISSB 표준으로 수렴되고 기업들의 대응 역시 ISSB표준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시되고 있다. 이는 그러나 자본시장의 투자자에 집중한 단일중대성에 국한해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전 지구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환경 경영에 집중하고 있는 표준의 한계도 엄연하다.

ISSB 표준이 다양한 기존 표준들을 통합하고 자본시장과 당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표준으로 자리할 전망이지만 GRI 표준 역시 2023년 적용 표준에서 UN과 함께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최초 표준이자 가장 폭넓게 적용되는 있는 현 위상을 더욱 강화하는 조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자본시장 중심의 ESG에 대해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강력한 이의가 제기되면서 ESG란 용어 자체의 반감도 커가고 있다. 특정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와 일부 지속가능성 요소에 집중한 표준에 치우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2023년 잇달아 등장한 공시 표준은 이미 기업 경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각 표준들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과 철저한 대응이 불가피하다. ESG는 이제 용어의 변화는 있을 수 있으나 지속가능한 미래와 건강한 기업을 추구한다는 뜻만큼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할 수 없는 경영 현장의 핵심 대응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ESG보고서와 검증 시리즈 목차. 사진=코스리 DB
ESG보고서와 검증 시리즈 목차. 사진=코스리 DB

<이종재 PSR 대표·조혜진 코스리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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