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논설위원, 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허찬국 논설위원
허찬국 논설위원

깍두기 머리의 UFC 격투기 선수 김동현이 졸음과 싸우며 운전하다 사고를 낼 뻔하고는 졸음에 완전해 패했다고 고백한다. 전에 방송되던 졸음쉼터 홍보 영상이다. 고속도로에서 “전방 2km 졸음쉼터, 졸리면 제발 쉬어가세요!”와 같은 안내 문구를 쉽게 본다.

졸음운전은 위험하다. 운전자가 졸아 3초간 전방을 주시하지 못하면 시속 100km인 차는 80m를 넘게 운전자 없이 질주하는 것과 같다니 고속도로에서 치명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졸음을 막으려 항상 커피 텀블러를 끼고 운전하는 필자는 이제 졸음쉼터 예찬론자가 됐다. 졸음운전의 위험성, 늘어나는 자동차 추세를 감안하면 졸음쉼터 환경 개선을 통해 순기능을 높일 필요가 있다.

길눈이 어둡고 혼잡한 시내 주차난, 접촉사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필자는 오랫동안 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가능하면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런데 몇 년 전 편의시설이 멀고 대중교통이 드문 동네로 이사하며 불가피하게 운전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퇴직 후 취미로 카약을 타기 시작하면서 강원도를 오가느라 고속도로를 자주 다니게 되었다. 두세 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인데 몸 상태가 좋으면 한 번에 갈 수도 있지만, 야외 활동 후 식사를 하고 출발하는 귀갓길은 사정이 다르다. 특히 주말 귀경 차량이 많을 때면 더욱 그렇다. 김동현을 KO시킨 졸음기가 슬슬 시작되면 휴게소와 졸음쉼터는 그야말로 오아시스다. 

(사진 1) 넓고 쉴 공간이 넉넉한 휴게소. 사진 왼쪽 그늘이 있는 주차공간이 명당이다.
(사진 1) 넓고 쉴 공간이 넉넉한 휴게소. 사진 왼쪽 그늘이 있는 주차공간이 명당이다.

가능하면 휴게소에 멈춘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공간이 넓고 편의 시설이 구비된 것 외에도 조성된 지 오래된 고속도로 휴게소는 주변에 큰 나무들이 많아 그늘이 있다. 설령 차를 그늘에 못 세워도 실내나 외부 그늘에서 쉴 수 있다. 물론 그늘에 차를 세워놓고 20분가량 꿀잠을 자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 없다. 야간 귀경길에 휴게소에서 잠깐 자려다 다음 날 새벽에야 깨었다는 전설적 동호회 지인 경험담도 있다.

(사진 2) 주차공간과 화장실만 있어 이용하기 불편한 졸음쉼터.
(사진 2) 주차공간과 화장실만 있어 이용하기 불편한 졸음쉼터.

하지만 휴게소까지 가기가 어려우면 국도변 휴게소나 고속도로의 졸음쉼터를 이용한다. 정규 휴게소보다 협소하지만 주차 공간과 화장실이 있어 잠간 머물기에 적당하다. 하지만 사진 2에서 보듯이 그늘이 없어 더운 날 졸음쉼터에서 쉬는 게 어렵다. 그런 날은 졸음쉼터에 잠시 들러 졸음을 쫓은 뒤 다시 휴게소까지 가서 제대로 휴식을 취한다.

그래서 졸음쉼터에 갈 때마다 주변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숲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곤 생각했다. 필자가 가본 다른 고속도로의 졸음쉼터도 사정이 비슷했다. 졸음쉼터는 고속도로에 휴게소 간 거리가 약 30km이고 긴 곳은 50km나 되어 임시 쉼터로 2011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사고를 줄이는 효과가 큰 것으로 확인되어 그 이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설치에 나섰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졸음을 임시로 쫓는 곳’에 머물고 있다. 운전자가 필요한 것은 ‘잠시 쉬며 졸음을 쫓는 곳’이다.

고속도로 운전과 관련된 주요 추세를 도로교통공단의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 왜 이런 졸음쉼터 기능 개선이 필요한지 생각해본다.

첫째, 전체 교통사고는 줄고 있으나 고속도로 사고 비중이 늘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우리나라의 전체 교통사고 건수가 21만 5000(2013년)에서 19만 7000(2022년)으로 감소했다. 사망자 수가 약 5000명(2013년)에서 2700명(2022년)으로 현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 고속도로 교통사고는 2013년 3231건에서 2022년에는 4860건으로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같은 기간 사망자 수는 줄고 있어(298명에서 184명) 그나마 다행스럽다.

둘째, 2020년까지의 국제비교는 우리나라의 교통사고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구 10만 명, 자동차 1만 대 등으로 표준화된 교통사고 건수가 30여 개의 비교대상 OECD 국가들 중 제일 높다. 인구 10만 명,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도 OECD 평균(2020년 0.8명)보다 높다. 특히 자동차 1만 대 당 사고 사망자수(2020년 1.1명)는 몇 년 전까지 2위를 유지하다 최근 4위로 낮아졌다. 도로인프라 시설 대비 차량대수가 OECD국가 중 제일 높으니 도로가 혼잡할 수밖에 없다.

셋째, 교통사고 치사율을 보면, 졸음운전 사고는 총 2.6(명/100건)으로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 1.4 대비 크게 높다. 고속도로 운전은 교통신호를 따라야 하는 시내 운전에 비해 시간이 길다. 봄철 나른함, 더울 때 에어컨, 추울 때 히터 사용에 따른 차 안의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등과 같은 졸리게 만드는 요인들에 더 노출된다. 수면 부족이나 피로로 인한 졸음을 쫓기 위해서는 환기와 같은 임시방편을 넘어 휴식이 필요하다.

2021년 기준 교통사고의 사회적 비용이 국가예산의 약 5%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고 당사자는 말할 것 없이 가족과 사고 피해자들의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엄청나다. 고속도로 안전 문제는 필자와 같은 여가 운전자보다도 운전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더 절실한 이슈이다. 가장인 운송업 종사자의 사고는 새로운 취약계층 발생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제 개인적,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고속도로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기여가 큰 졸음쉼터를 내실화해야 할 때다. 공간을 더 확보하고 주변에 숲을 조성하여 쉼터가 명실상부하게 작동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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