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슬아 논설위원, 작가·컨텐츠 기획자

송하슬아 논설위원
송하슬아 논설위원

나는 질투를 하지 않는 편이다. 친구가 잘될 때도, 연애를 할 때도 딱히 상대를 향해 질투심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걔는 걔이고, 나는 나’라고 확실하게 구분 지었다. 사람들은 생각도 다르고 저마다 고유한 존재이므로, 비교는 딱히 의미가 없다고 여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덕 책마냥 입 바른말만 하던 나의 콧대가 사소한 계기로 무너졌다.

퇴근길 지하철이었다. 피곤한데도 잠시도 쉬지 않고 동태눈으로 SNS를 켰다. 습관적으로 열어본 인스타그램 속 사진과 마주쳤고 친구 2명의 여행 후기를 읽었다. 한 명은 내가 이미 다녀온 여행 코스를 따라 한창 유럽 국가를 여행 중이었다. SNS 속의 그 친구는 내가 방문한 곳보다 더 많은 곳을 갔고, 더 많은 사진을 찍었고, 더 행복해 보였다. 다른 한 명은 꼭 다시 가고 싶었던 시드니를 여행 중이었다. 무려 10년 전인데도, 내가 지나쳤던 곳, 내가 미처 가보지 못한 곳에서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을 보고 첫 번째 떠오르는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 그곳에 가 있는 친구들을 향한 느낌이었다. 두 번째는 비교였다. 동태눈으로 인스타그램 너머로 풍경을 훔쳐보는 갑갑한 나와 유유자적하면서 여행을 즐기고 있을 그 친구의 해방감에 대한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벌어졌다.

인스타그램은 다른 사람이 사진을 올리면 ‘좋아요’를 눌러준다. 친구들의 여행 사진을 빠짐없이 둘러봤는데도 나의 엄지손가락은 끝내 두 친구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 별거 아니지만, 그들에게 질투가 났었다. 물론, 기분을 망치지 않을 만큼 일상의 사소한 부분이다. 나의 불가능한 상황과 타인이 가능한 현재 상황에 대한 단순 비교의식 때문이었다. 과거에 여행지에서 누렸던 해방감이 구체적으로 떠올라서 마음이 쉽게 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질투심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애초에 자의적이고 비약적인 해석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유럽과 시드니를 여행 중인 서로 다른 두 친구는 오랜 회사 생활 끝에 퇴사를 결심했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여행을 선택한 것일 테다. 결단의 과정까지 일상생활을 괴롭혔던 고민과 고통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나와 다른 나이, 다른 삶의 속도로 살고 있을 텐데 복잡한 개연성은 쏙 빼놓고 질투 먼저 느꼈다는 것이다. 그 순간은 나도 참 어리석었다. 다행히 타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고 사소하게 흘려보냈다.

얼마 전 뉴스에 나온 서울과학고 소식은 조금 심각해 보였다. SBS 영재발굴단 출신의 12세 강현이의 서울과학고 생활이 여실히 드러났다. 만 10세에 불과한 아이가 서울과학고에 입학했으나 한 학기 만에 자퇴할 위기에 처했고, 학부모가 강현 군 아버지에게 비방 이메일을 보낸 일이다.

성적이 지금 당장의 목표일 수밖에 없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경주마 같은 좁은 시각이 안타깝기도 하고, 적절한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채 무턱대고 천재만 들여놓으려 했던 아쉬운 행정적 판단이 이 상황을 야기했다 싶었다. 이로 인해 17세 과학고 학생들은 자기보다 다섯 살 차이 나는 어린 학급 친구에게 성적표 순위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였고, 어떻게든 성적을 높이려고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키워낸 학부모의 질투심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학기 초부터 강현이는 차가운 시선을 연신 이겨내야 했을 것이다. 자신보다 뛰어난 성적표를 받게 될지 모르는 그 아이의 존재가 같은 학년 학생들은 불안했을 것이다. 학부모는 강현이가 영재인 것이, 본인의 인생에 피해를 주지 않는 사소한 사실일 뿐인데, 내 아이의 실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린 강현이를 시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게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학교는 숫자를 높이는 기능만 하는 곳이 아닌데 강현이와 강현이 아버지가 느꼈을 외로움의 크기는 가늠조차 안 된다.

나의 주변에 자기보다 뛰어나고 주목받는 한 사람이 있을 때, 그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인정과 지지를 먼저 보내주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게 너무 어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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