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논설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논설위원
이성낙 논설위원

“야, 이번 가을에는 ‘행복 쓰나미’가 몰려온다”라는 내용의 글을 독일 친구에게 보내 오는 10월, 11월에 유럽 9개 유명 교향악단이 서울을 찾아오기에 국내 음악애호가는 ‘복이 터졌다’라는 맥락의 소식을 전하면서 교향악단의 명단을 자랑하고픈 마음을 담아 보냈습니다.

1)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2)Zürich Tonhalle Orchestra 3)Czech Philharmonic Orchestra 4)Oslo Philharmonic Orchestra 5)Wien Philharmonic Orchestra 6)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7)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8)Leipzig Gewandhaus Orchestra 9)München Philharmonic Orchestra 

     **그동안의 언론보도 종합. 
     **그동안의 언론보도 종합. 

 

세계적인 으뜸 지휘자와 협연자들의 명단도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놀랍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뉴욕, 파리 런던에서도 겪을 수 없는 ‘문화 쓰나미’인가 싶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아래와 같은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환상적이야. 전에는 일본 투어만 신문에 났었지. 그런 점에서 (한국) 엄청나게 변했다!!! 굉장해! (Phantastisch! Früher hat man nur von Japan-Tourneen gelesen. Da hat sich etwas gravierend verändert!!! Toll!)

독일 친구의 감탄사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초강대국 남한(Supermacht Südkorea)’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독일 최고의 지성지라고 자부하는 주간지 《Der Spiegel(2021.12.18)》에서 만난 것은 충격에 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만큼 의외였다는 것입니다. 속된 표현으로, ‘까무라칠 뻔’했습니다.

우리나라와 관련해서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기사와 논조를 ‘슈피겔’에서 읽어왔고, 긍정적인 기사를 읽어본 기억이 별로 없던 필자이기에 그 ‘슈피겔’이 ‘초강대국 남한’이라는 헤드라인을 잡은 것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내용인즉슨, BTS의 가무(歌舞)에 팬들의 접속 수가 80억 건에 이른다고 합니다. 세계 인구를 약 79억 5000만 명(2021.4.9.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인이 접속한 셈입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국호 앞에 ‘초강대국’이라는 별칭을 붙인 이유입니다. *

유럽 언론계에서 그만큼 달라진 것을 보면서 친구가 말하는 우리나라에 대한 찬사는 빈말이 아닌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다른 예를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제적 명성이 높은 해외 음악 경연(競演)에서 일고 있는 ‘한국 바람’이 이제 일반화되었다고 현지에서 말할 정도라고 합니다. 지난 10년간만 보아도, 세계적인 각종 음악 경연에서 우리 한국 음악인의 쾌거는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대단한 ‘쾌거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성진(趙成珍, 1994~  )이 2015년 ‘International Chopin Piano Competition(Warsaw)’에서 일등상을 수상하였습니다. 5년마다 열리는 경연이기에 그 무거움을 더합니다.

그리고 지난해 2022년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任奫燦, 2004~  )도 역시 5년마다 열리는 ‘Van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의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특기할 사항은 바로 5년 전, 2017년 동일 경연대회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鮮于藝權, 1990~  )도 같은 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5년마다 열리는 경연에서 같은 국적의 피아니스트를 연달아 선정하였던 심사위원의 고심이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 피아니스트의 예술성이 그만큼 특출하였던 것입니다. 국제경연대회에서 결코 흔한 예가 아니어서입니다.

 왼쪽부터 피아니스트 조성진, 선우예권, 임윤찬.
 왼쪽부터 피아니스트 조성진, 선우예권, 임윤찬.

그 외 성악부문, 첼로부문, 바이올린 부문, 여러 경연에서 뛰어난 음악인이 지난 10년간에만 보아도 일등상의 영예를 성취한 경우가 너무도 많아 본 지면의 특성상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즐거운 ‘비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살펴보면, 독일의 여러 음악대학에 생각보다 많은 젊은 한국 학생들이 유학하고 있습니다. 그 숫자가 대단합니다. 반면, 이웃 나라 프랑스에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미술 및 조형예술 지망생이 모여드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 역사적 배경이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독일은 예로부터 영주(領主, Fürst) 중심의 봉건제도(Feudalism)가 근래 독일제국 시대(1871~1918)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분권 국가체계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그 시스템은 지금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Habsburg家)에는 많은 영주가 존재하였고, 각 영주는 크고 작은 실내악(Kammer Musik)을 경쟁적으로 운영하면서, 영주끼리 서로 실내악단을 교환·초청하였다고 합니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를 각 영주가 경쟁적으로 초빙하여 크고 작은 음악회를 마련하였습니다. 초빙된 음악가들이 별궁에 오랜 시간 머물며 작곡의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바로크음악의 거성(巨星)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역시 라이프치히에 정착하기까지 여러 봉건 영주의 후원하에 성장하였던 것입니다. 즉 영주 간의 교류가 음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입니다. 그 역사의 흔적이 오늘 독일 수많은 크고 작은 도시에 오케스트라가 있는 것과 역사의 맥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프랑스는 ‘중앙집권체제’의 국가입니다. 즉, 예나 지금이나 ‘파리 중심 국가’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을 1960년대 필자는 파리의 ‘배[腹]’라고 불리는 중앙시장 ‘알(Halle)’에서 그 본보기를 보았습니다. 남프랑스 마르세유 산 쇠고기나, 북프랑스 노르망디 산 돼지고기도 일단 파리의 ‘알’에 와서 경매에 부쳐진 후 다시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프랑스 국가체제와 시장경제가 ‘대단한’ 중앙집권체제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

앙드레 말로가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드골 대통령이 그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이웃 나라 독일에는 전국에 아우토반(Autobahn)이 깔려 있는데, 프랑스도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앙드레 말로는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취했다고 합니다. “고속도로 25킬로미터를 건설하는 비용으로 문화회관을 지으면 10년 이내에 프랑스는 세계에서 첫째가는 문화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앙드레 말로가 고속도로라는 ‘하드웨어’보다 문화라는 ‘소프트웨어’를 중시했다는 점이 크게 돋보입니다. 문화예술 정책 수립자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울러 “10년 이내에 프랑스는 세계에서 첫째가는 문화국이 될 수 있다”는 말에서 말로가 당시의 프랑스를 문화대국으로 자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프랑스는 오늘날 그의 말대로 명실상부한 세계적 문화대국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 지방 곳곳에 문화센터가 건립된 것은 물론입니다. **

1960년대,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가 운영난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당시 필자는 독일 공업지대 루르(Ruhr)지방에서 인턴생활을 하던 때여서, 멀지 않은 도르트문트(Dortmund), 뒤셀도르프(Düsseldorf)에서 오페라나 교향악단의 향연을 감상하던 터라 더욱 생소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이라는 거대 문화강국이 공유하는 ‘오케스트라’ 숫자는 나라 크기에 비하면 의외로 적어, 왜소하기까지 합니다. 숫자상으로 보면 미국이라는 큰 나라는 역설적이지만 ‘음악 약소국’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를 두고 ‘초강대국’이라니 생소하기까지 합니다만, 우리나라가 문화강대국의 큰 날개를 달고 온 세계를 훨훨 날아다니며 세계에 우리 문화의 힘을 알려주면, 곧 우리는 명실상부한 문화강대국 반열에 오르겠다는 생각에 행복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근래 국내 크고 작은 행정단위에 다양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등장하여 성장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크게 고무(鼓舞)할 사항입니다. 그런데도 들려오는 현장의 어려움의 소리는 듣기가 민망한 수준입니다. 거기에다 혹자는 “문화가 밥 먹여 주냐”고 비아냥하기까지 합니다. 부끄럽고 마음이 아려 옵니다. 그래서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다양하게 문화활동을 하는 미술인, 음악인, 연극인들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언급하고픈 욕심이 있다면, 두 달여 간에 쓰나미처럼 서울로 몰려오는 세계적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서울에만 들렀다가 훌쩍 출국하지 말고, 국내 다른 도시의 시민들도 귀한 예술의 혼을 공유할 수 있도록 공연 주최자가 함께 기획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문화강대국은 큰 날개를 펼치며 더욱 높고 더욱 멀리 비상(飛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른소리 쓴소리’(2022.05.02.)에 올린 글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자유칼럼,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2019.05.21.)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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