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권오용 논설위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는 사회공헌 사업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국세청 공시 공익법인 결산서류를 기준으로 한 한국가이드스타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삼성전자는 기부액만 1674억 원에 이르렀다. 같은 조사에서 현대자동차가 338억 원, 포스코가 208억 원이 나온 것을 보면 삼성전자의 압도적 위상이 짐작이 간다.

그런데 ‘대중소기업농어촌협력재단’이라는 긴 이름의 생소한 공익법인이 삼성전자로부터 341억 원을 기부받아 기부처 중 1위에 올랐다. 이 재단은 2004년 ‘대중소기업협력재단’으로 설립됐다가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의 관리 운영이 사업 내용에 추가되면서 2017년 1월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중소기업과의 상생이 사회공헌사업이 되느냐 아니면 기업의 고유한 경영활동으로 봐야 하느냐는 시각의 차이가 있겠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전 세계를 상대로 영업하면서 얻은 이익이 직접 연관이 없는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에까지 쓰인다는 것은 일응 바람직한 기부행위로 보인다. 여기에 농어촌과 도시의 양극화 해소도 복지의 큰 과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부의 타당성은 납득이 된다.

다만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이 이 재단의 경영 일반에 준용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민간 공익법인이 일반 기부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준의 투명성, 책무성 확보 노력이 이 재단에 의해 보다 적극적으로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의 사회환경에서 글로벌기업 삼성전자를 자유롭게 해주는 방편이기도 하다. 이 재단은 삼성전자 외에도 현대자동차(30억 원), 포스코(51억 원), SK하이닉스(23억 원) 등에서도 많은 기부금을 받고 있어 그 필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이런 측면에서 삼성전자의 2대 기부처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그 필요성이 이미 대중에 의해 각인된 대표적 공익법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엄격한 수준의 비용 관리에 더해 설립 초기 정부 간섭의 부작용까지 극복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모금 및 배분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여기에는 삼성전자의 기부가 큰 몫을 했다. 기부를 한 삼성이나 스스로 투명성을 입증하며 자리매김한 공동모금회의 사례는 기부자와 공익법인의 모범적 상생 사례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삼성전자의 기부금 중 상당액은 삼성그룹이 설립한 공익법인으로도 가고 있다. 삼성생명 공익재단(299억 원), 성균관대학(178억 원), 삼성복지재단(115억 원), 호암재단(37억 원), 충남 삼성학원(24억 원) 등 654억 원이 그것인데, 이는 삼성전자의 기부액 중 39%에 해당한다. 앞서의 대중소기업농어촌협력재단이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법적으로 필요성이 확보된 공익법인이라면 삼성그룹의 공익법인은 기업의 사회공헌이라는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을 기반으로 하는 모금 활동이 없다는 점은 있지만 공익법인의 혜택을 받으며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재단의 이중적 성격은 사회적 감시를 어느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냐 하는 점에서 논란이 많이 있었다. 이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서도 다뤄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가이드스타는 국세청 결산 공시를 기반으로 공익법인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기부한 공익법인 36개 중 2021년 기준으로는 15개의 법인이 평가대상이 됐다. 그 결과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어린이재단, 아이들과미래재단 등 4개 공익법인이 스타 공익법인으로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한편 삼성의 기업재단은 모두 투명성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예비스타(Pre-star) 공익법인으로 선정되는 정도에 그쳤다.

최근의 한 보도에 따르면 국내 50대 기업이 사회공헌사업에서 공익법인을 파트너로 삼아 진행한 비율은 64%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기업 단독으로 진행한 비율(22%)의 거의 세 배나 된다. 공익법인의 진정성과 전문성이 평가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보다 좋은 평판이 공익법인 자체의 투명성 확보 노력을 지체시키는 명분이 돼서는 안 된다. 사업의 성과(임팩트)를 정성·정량평가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사회공헌사업에 임하는 기업의 진정성이 제대로 사회에 투영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최대 기부자인 삼성전자가 공익법인을 파트너로 선정하는 기준은 우리 사회에서 기부를 망설이는 큰 이유에 대해 해답을 줄 수도 있다. 나아가 경제 규모에 비해 한참 뒤처진 우리나라의 기부 수준을 도약시킬 첩경이 될 수도 있어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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