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보 논설위원, 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회장

민경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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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 사는 손녀가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면 중학생이 된다고 알려 왔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로 기억된다. 어머니께서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일명 숯골이라고 불리던 곳에 사시는 할아버지께 뭔가(생각이 나지를 않음)를 갖다 드리고, 10일 정도 그곳에 있다가 오라는, 심부름을 겸한 농활(農活)을 하고 오라는 말씀이셨다. 형님 누님도 계신데 막내를 보낸다고 입이 나왔지만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가 막내(8남매) 교육 차원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주에서 봉화가 사십 리가 조금 넘는 길이고 봉화에서 숯골이 시오리 길이다. 그래서 봉화까지는 버스를 타고 숯골까지는 걸어서 갔다. 버스가 하루에 두 번만 다녔기에 시간을 맞출 수도 없었고, 받은 용돈을 좀 아껴서 다른 용도로 쓸 속셈도 있었다. 아침을 먹자마자 빨리 떠나라는 성화를 뒤로하고 늑장을 부리다가 점심을 먹고서야 출발하게 되었다.

그 당시 할아버지 댁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아이들은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골에서 어둠은 순식간에 내려왔고, 1960년대 경북 북부지역에는 멧돼지는 물론 곰, 표범, 늑대, 여우, 살쾡이(삵)가 살고 있었다. 어릴 때 형님들과 희방사(소백산 자락에 있는 절) 근처에서 텐트 치고 놀다, 밤에 소피 누러 나갔다가 먼발치에서 늑대를 보고 기겁해서 뛰어 들어간 기억도 있고, 읍 소재지를 벗어난 친구들 집에서는 닭이나 염소를 잡아가는 경우도 자주 보았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서둘러 가라고 했는데, 열심히 갔지만 흙 자갈길에다 어린 걸음에 짐까지 들고 어둑해서 도착하니, 할머니가 끌어안고 고생했다 하시면서 어린것을 혼자 보냈다고 어머니를 험한(?) 말로 혼내셨던 따뜻한 품이 생각난다.

남폿불 아래서 흐릿하게 시작된 숯골에서의 생활은 다른 어떤 기억보다도 진하게 남아있다. 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쑥 향기가 나는 모깃불을 피우고, 무쇠솥 뚜껑을 엎어놓고 부침개를 부쳐 먹으며 모기를 쫓아주시고, 풍뎅이·집게벌레를 한 손으로 해치우시던 할머니의 거친 손이 그립다. 멍석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 은하수가 몇 무리씩 흘렀다. 이름 아는 별자리들과 별 얘기를 사촌들과 나누면서 우주를, 지금 소백산 천문대에서 망원경으로 보는 우주를 거짓말 조금 보태면 그 당시 시골에 산 우리는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칠흑 같은 밤, 불빛이라곤 촛불, 호롱불이나 남폿불이 전부였던 시절이 불과 50년이 안 되었다. 근래에 읽은 ‘디 컨슈머(De Consumer, J.B.매키넌 지음, 문학동네)’에서는 잃어버린 밤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전깃불이 들어오고, 형광등, 네온사인이 나타나고, 기존 전구 소비량의 12분의 1 수준에 수명은 100배 이상이고, 전기에 대한 반응 속도가 1000배 이상 빠른 데다 저전력에서 고휘도(高輝度)의 빛을 내 전광판이나 디스플레이용으로도 각광받는 발광다이오드(LED)가 가정의 형광등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제 청색LED가 개발된 이후로는 모든 색깔의 빛을 만들어 낼 수 있는 RGB(Red, Green, Blue)방식을 통해 완벽한 컬러전광판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밤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유럽 여행에서 야경투어는 필수코스이다. 너무나 화려한 조명으로 낮에 보던 풍경과는 다른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난다. 그러나 J.B. 매키넌은 화려한 밤을 비판하고 있다. 이제 조명은 네온에서 LED로 바뀜으로써 전기료가 자그마치 75%가량 저렴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전기료 절감 이상의 조명 과다 설치로 에너지절감이라는 명분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극지방의 만년설을 제외한 지구의 4분의 1이 인공조명으로 덮이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봉쇄되고, 소비도 잠시 멈추면서 아울러 조명도 함께 빛을 잃어 어둑했던 밤이 잠시 찾아왔었는데, 마스크 해제와 더불어 어느새 그 전보다 더 밝은 빛에 어둠이 밀려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는 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베를린시는 ‘합리적이고 필요한 만큼의 불을 켠다.’는 것이 시민과 합의한 시의 문화정책이라고 홍보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밤밤곡곡’이라는 야간관광 활성화 BI(Brand Identity)를 선보인 한국관광공사는 에너지절약 마을을 표방하는 어둑어둑한 마을 만들기 BI도 개발하면 어떨까 한다.

이제 광공해(光公害)와 기후변화로 특별한 곳이 아니면 아름다운 밤하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환경학자들은 조명이 전 세계 매우 다양한 생물종의 개체 수 감소를 야기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더욱이 WHO(세계보건기구)는 밝은 조명으로 인한 수면장애는 암을 유발하고 우울과 비만까지 초래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올여름도 열대야와 함께 낮과 밤을 구별 못 하는 매미울음으로 잠들기 어려운 밤을 겪게 될 것 같다.

그래서 밝은 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배회하거나 아무런 원한도 없는 사람을 해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교회나 산사에서 깜깜한 밤 촛불만 켜 놓고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얼마나 평안했던지 기억해내고서 그런 밤을 가끔 보냈으면 좋겠고, 아예 불을 끄고 바깥 조명에만 의지해 오글거리는 옛 얘기를 부부든 친구든 가족이든 나누어도 좋고, 그냥 가만있어도 좋겠다. 이제 전기료의 계속 인상은 예정된 수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 아니 좀 더 크게 지구를 위해서 전기절약을 문화로 가꾸어나갈 것을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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