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선 논설위원,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 연구교수

이주선 논설위원
이주선 논설위원

최근 유력 일간지에 ‘글로벌 호구인가, 한국의 위스키값 미, 일, 영의 2배: 국내 소비 늘자 가격 치솟아’라는 기사가 났다. 내용은 발베니 12년산 위스키가 2년 전 8만 원이던 게 지금 15만 원이 되었고, 이는 런던(7만3천 원), 뉴욕(8만7천 원), 도쿄(8만5천 원)보다 비싼데, 우리나라 소비자가 '글로벌 호구냐'는 것이었다.

모든 재화에는 대체재가 있는데

이 기사를 본 이틀 후, 추경호 부총리의 라면 가격 인하 요구 기사가 났다. 내용은 국제 밀 가격 인상으로 라면회사들이 가격을 인상했으니, 절반 정도로 밀값이 내린 지금 라면값을 내렸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경제 부총리가 원가 조사와 소비자단체 감시를 들먹이며 이 정도 이야기하면 희망이라기보다는 “하라!”는 명령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두 기사를 보고 ‘이들은 도대체 시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은 "모든 것에는 대체재가 있다"고 가르친다. 위스키는 스카치, 버번, 테네시, 라이, 캐나디언, 아이리쉬 등이 있고, 술은 위스키 외에도 럼, 진, 보드카, 와인, 맥주, 소주, 막걸리, 사케, 바이주 등 보통명사 이름만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브랜드로 하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같은 스카치 위스키만 해도 엄청 많은 브랜드가 있다. 기자 말처럼 위스키 소비가 늘면 당연히 위스키 가격은 올라간다. 줄을 서는 유명한 평양냉면집 냉면 가격이 올라가는 것과 같다. 이 가격 인상은 다른 브랜드 위스키 수요와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 가장 가까운 대체재이니까. 그다음에는 위스키 전체가, 종국에는 다른 술로의 대체가 더 많아진다.

라면의 경우 모든 라면회사가 가격을 올렸으므로 브랜드 간 대체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라면은 인스턴트식품 중 하나이므로, 그 사촌인 칼국수, 잔치국수, 냉면, 우동, 스파게티 등 면제품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런 면류가 싫은 사람은 햄버거, 돈가스, 김밥, 떡볶이, 순대, 국밥 등등으로 먹거리를 바꿀 것이다. 이렇게 라면은 ‘탐색재(search goods)’-보고 직접 구매하는 재화–이면서 대체재가 많으므로 수요의 탄력성이 대단히 높다. 탄력성이 높은 제품은 가격이 높아지면 다른 제품이나 다른 브랜드로 쉽게 옮겨갈 수 있다. 그러니 경쟁이 치열하고, 기업은 가격을 올리기 어렵다. 또한 가격이 올라가면 대체가 크게 늘어 판매량이 줄어들어서 큰 수입 증가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말하면, "라면회사들은 독과점이고, 라면은 필수재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대체재가 없는 ‘필수재(necessities)’는 없다. 더구나 라면은 인스턴트식품 중 하나일 뿐이며, 대체할 식품은 이미 보았듯 그 이름을 다 열거하기 어렵다.

또한 "위스키뿐만 아니라 샤넬, 루이비통, 구치, 벤츠, BMW 등 명품 브랜드들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이런 행태를 보이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브랜드들만 가방, 화장품, 옷,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 대체재들은 세상에 널려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이 명품들이 유독 비싼 이유는 우리나라 소비자의 이들에 대한 선호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엄청 크기 때문이다.

명품 브랜드 제품 선호는 가방, 자동차, 화장품, 옷이 아니라 브랜드의 명성(prestige)을 선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브랜드에 대한 주관적인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이고, 소비자가 그 가격을 주고도 그 제품을 사려고 해서 가격이 높은 것이다.(경제학 용어로는 이를 "한계지불의사(marginal willingness to pay)가 높다."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이 브랜드들의 신상품이 나오면, 파는 곳에 고객들이 새벽부터 장사진을 쳤다는 보도다.

그러므로 위스키 가격이 다른 나라 대비 높다고 "우리가 호구냐?"라고 비분강개하는 기사에 대한 답은 "그래, 우리가 호구 맞다."이다. 자업자득이니까. 누가 그렇게 비싼데도 사 마시라 했나? 그 ‘호갱질’을 한 것이 본인인데 누구를 탓할 수 있나. 또한 라면값을 내리라는 부총리의 ‘암묵적 명령’도 시장경제와 선택의 자유를 중시하는 대통령이 운영하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인지 의심스럽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왜 실패했는가? 모든 것을 명령으로 해결하려 했다. 집값도, 전셋값도, 전기·가스 요금도, 이자율도 다 명령하려고 했다. 결국 경제는 파탄났다. 나랏빚은 늘고, 연금·건강보험 재정은 더 빨리 고갈될 위험에 처했다. 공기업들도 빚더미에 올랐다. 숙제를 한 게 아니라 난제를 가중시켰다.

정부는 물건값 손대려 하지 말길

라면값은 부총리의 명령이 아니라 시장이 경쟁으로 조절할 것이다. 라면값은 밀가루값만이 아니라, 인건비, 판관비, 다른 식품 가격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도 정말 라면값이 높다면, 그것은 경쟁으로 해결될 것이다. 사람은 꼭 라면만 먹어야 할 것도 아니고, 그 대체재들은 너무나 많으니.

재삼 당부하노니 정부는 제발 가격에 손대지 마시라. 가격은 단순히 어떤 물건의 값만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선택 정보가 집약된 핵심 정보다.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면 이 정보가 왜곡되거나 사라져서 결국 사회는 깜깜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 사회는 늘 부족하고 가난하며 평등하지도 못하다, 적재적소에 제대로 자원이 최적 배분되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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