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 해설위원실장

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미국 보스턴에 사는 한인 2세 김솔 군이 미국 고등학생의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장학생(Presidential Scholar)에 선발됐다고 한다. 올해 미국 고교 졸업예정자는 370여만 명으로, 대통령 장학생은 50개 주마다 최우수 남녀학생 2명 등 161명을 뽑는데, 여기에 우리 교민 2세가 매사추세츠주 대표로 뽑힌 것이다.

대통령 장학생의 선발 조건은 엄격하다. 미국 교육부는 매년 미 전역 및 해외에 나가 있는 고교 졸업예정자 가운데 학업성취도, 리더십, 봉사 등을 기준으로 후보자를 선정한다. 후보 자격은 따로 신청해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10학년 9월부터 3학년인 12학년 10월 사이에 본 SAT와 ACT시험의 만점자들에게 우선 자격이 주어진다. 이후 성적, 에세이, 추천서 등을 바탕으로 리더십 봉사정신 등을 고려해 주별로 적정 인원을 세미 파이널리스트로 선정해 이들 중 50개 주와 워싱턴 DC 등에서 2명씩 뽑고, 예술과 기술 분야에서 별도로 뽑는 등 161명을 선정해 표창하는 방식이다.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가족과 함께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초청돼 백악관 투어, 대통령 면담 등 혜택을 받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라 당연히 미국의 주요 대학에 입학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 김솔 군도 하버드를 비롯한 최상위 8개 대학에 지원해 모든 학교에 합격했다고 하니 어느 대학이든 골라서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통령 장학생으로 뽑힌 한인 2세가 이 학생 하나만은 아니다. 김 군 외에도 10명이 더 있다. 뉴욕주 한인 학생인 앤서니 최는 2019년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대통령상 수상자로 선정됐고, 이해에 무려 11명이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 2020년에는 뉴저지주의 시각장애인 이영은 양(19·미국명 줄리아나)이 선정된 바 있다. 

 2 019년에 선정된 미 대통령 장학생들의 시상식 후 기념촬영.
 2 019년에 선정된 미 대통령 장학생들의 시상식 후 기념촬영.

대통령 장학생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이런 제도를 통해 미국의 고등학교 교육이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는, 제대로 된 교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4년에 제정된 대통령 장학생 프로그램의 취지는 고교 졸업예정자 중 학업뿐 아니라 리더십, 봉사정신 등이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다. 안내견 매기의 도움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천적 시각장애인 이영은 양은 장애에 굴하지 않고 공공 정책, 역사, 문학에 대한 관심과 타인에 대한 봉사에 열정적일 뿐 아니라 학생회 대의원으로 학교 정책과 시설 등을 개선하는 데 기여한 점이 평가를 받았다. 이 양은 학교 내 모의재판 팀, 신문사, 육상팀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물론 문학에 재능을 보여 그의 에세이가 '국제아트저널' 등에 실리기도 했다.

이 상의 또 다른 특징은 선발된 학생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교사를 한 명씩 지명하도록 해 교육부가 이들 교사도 함께 표창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교사들은 이름을 걸고 성심껏 제자들을 지도한다. 교사들의 학생 평가가 절대적인 만큼 모든 교사들은 학생들을 엄정하게 평가하는데, 그 평가에는 외부로부터의 과장이나 허위 조작이 용납되지 않는다. 3년간 실시된 시험의 만점자들이 장학생 후보가 된다는 점에서 시험 자체가 아주 고난도로 나오지는 않는다. 물론 학생들은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부모들의 부담을 무릅쓰고 학교 밖에서 비싼 과외를 받을 이유가 없다.

대학은 학생들이 제출한 기록을 토대로 신입생을 선발하는데, 이런 기록 자체가 엄정하므로 굳이 의심하지 않으며 조작된 기록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점이 미국 고등학교 교육의 자랑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열심히 하고, 다른 예능이나 체육 등도 적성에 맞게 열심히 추구하며 오로지 시험 성적을 위해 부모들이 경제적으로 막대한 부담을 지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매사추세츠의 김솔 군은 “고등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참여할 수 있는 학교 활동을 다하면서 여름방학 등에는 프로젝트나 리서치를 하고, 에세이 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단 한 가지만의 비결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스턴의 한인 신문은 전하고 있다. 그가 영향을 받은 최고의 교사로 꼽은 물리학 교사 페이 야오 씨는 김솔 군에 대해 “뛰어나게 우수하며 언제나 열정적으로 더 알고 싶어 하는 학생으로, 늘 친절하고 책임감이 있고,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기꺼이 도왔다”고 말했다. 이런 한인 2세 학생들이 미국 전역에서 매년 161명 중 10명 내외나 대통령 장학생으로 선정되니 가히 휩쓴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우리 2, 3세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그렇게 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있으니 이들이 점차 미국 사회에 새로운 물결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렇게 교사와 학생 간의 지식과 정서의 공동 함양이라는 방향에서 이끌어가는 미국의 고교 교육을 그동안 우리가 외면한 것은 아니며 이 제도의 장점을 살려보기 위해 애를 쓴 것은 사실이다. 내신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 등을 함께 감안해 학생들을 수시로 선발하도록 한 것 등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에 의해 가짜 증명서가 만들어지고 교수나 교사들이 끼어들어 문제가 커진 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부정이 드러나도 학교든 사법기관이든 징계나 처벌을 마냥 미루는 일이 많아지면서 대학입시에서 공정이 실종되었다는 좌절감을 주었다. 그래서 수시보다 점수 위주로 평가하는 정시전형이 중요해지자 그 기준인 수능점수를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과외에 매달리고, 부모들은 과외 때문에 등골이 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 하겠다. 따지고 보면 교육 현장이건 행정 당국이건 사법이건 속이지 않고 양심에 따라 올바르게 하면 되는데 그것이 안 되니 미국의 대학입학제도가 아무리 좋게 보여도 이 땅에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것이 길게는 출산율 저하로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입시 철이 다가오고 수능이 임박하면서 이른바 킬러 문항으로 일부 학원들이 떼돈을 벌고, 이 과정에 학원가와 교육 당국 사이에 일종의 이권카르텔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 문항의 개선을 밝히자 수험생과 사교육계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일반 가정의 과외비가 주거비보다 높은 우리의 현실을 고쳐나가려면 무슨 조치든 있어야 할 것이기에 성급하게 문제점부터 지적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조치로 당장 학부모들이 고액과외를 멈추고 학생들이 학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지는 않겠지만, 개혁을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정부 당국의 대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와는 별개로 우리도 미국처럼 학교가 있고 스승이 있고, 과외에 눈 돌리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면서도 학업을 잘 수행하는 그런 교육으로 정상화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에 대책을 자꾸 요구하기 전에 우선 관련 당사자들인 학부모, 학교, 대학, 학원가 모두가 엄정한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학부모들이 자기 자식만 잘되게 하려고 뭐라도 하겠다는 각오(?)를 물려야 자녀들이 자살까지 가는 입시지옥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의대도, 법대도 졸업자격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보고 있고, 체육이나 예술, 연예, 그리고 IT 등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만큼 특정 학역을 위한 점수 취득에만 아이들을 내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창의력이 중요한 21세기에 암기와 함정 풀이 교육으로 젊은이들의 명석한 두뇌가 가로막히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차제에 교육 당국, 정부 전체, 대학 등이 우리 2세들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길을 제대로 떳떳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자. 부정과 불법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부정 불법을 저지르면 용납될 수 없다는 인식을 법을 통해 확립하자.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속이지 않는 사회로 가자. 그런 바탕에서 대학입시를 둘러싼 이 혼란과 낭비를 줄여나가는 제대로 된 방안을 다시 강구해 보자는 것이다. 이런 근본이 서지 않으면 어떤 대책이 나와도 백년하청(百年河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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