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여름이다, 덥다. 야외에 나온 사람들은 모자를 쓰거나 양산을 치켜든다. 요새는 남자들도 여름에 작은 양산을 가지고 다니는 게 일상이라고 한다. 야외가 이럴진대 집 안은 어떻겠는가? 에어컨 틀어 천국이라고? 탄소 저감이 이슈이고 전기료 인상이 줄줄이 예상되고 있는 이때에? 건물도 무언가 양산이나 차양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李光耀, 1923∼2015)가 에어컨이 인류가 발명한 가장 위대한 기계라고 했다던데, 우리는 적도(赤道)의 싱가포르는 아니지 않은가?

그동안 건축설계에서 햇빛의 문제는 미술관이나 도서관 등 실내의 조명이나 조도가 중요한 일부 건물에서나 설계과제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부 학교 강의 동(棟)설계도 이런 측면에서 다뤄지기도 했으나 이제는 거의 잊힌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오피스빌딩의 건축설계에서도 빛에 대하여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창문마다 차양(루버, louver)이 외부에 돌출(50cm 내외) 설치되어 햇빛을 조절하는 서울대 중앙도서관 본관(건축가 이승우, 1975). 사진: 서울대 도서관 VR Tour 캡처.
창문마다 차양(루버, louver)이 외부에 돌출(50cm 내외) 설치되어 햇빛을 조절하는 서울대 중앙도서관 본관(건축가 이승우, 1975). 사진: 서울대 도서관 VR Tour 캡처.

요즘 오피스 등 많은 건물들이 비용 절감을 위하여 시공이 용이한 건식(乾式) 모듈공법(공장 제작된 표준화된 부분품(modular unit)을 현장 조립)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커튼 월(curtain wall)공법으로 건설되는 건물에서 외벽의 처리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커튼월 공법에서 건물의 하중은 기둥이나 보, 그리고 바닥판이 받으며 외벽은 하중을 받지 않는다. 외벽은 마치 커튼처럼 둘러쳐서 내외를 구분하는 장치이며 현대에 와서는 내외로 빛과 시선을 투과시키는 유리가 대거 사용되게 되었다. 

커튼월(Curtain Wall) 방식으로 지어진 오피스건물. 외피(外皮)의 유리 사용이 두드러진다. 강남역4거리. 사진: 김기호, 2012
커튼월(Curtain Wall) 방식으로 지어진 오피스건물. 외피(外皮)의 유리 사용이 두드러진다. 강남역4거리. 사진: 김기호, 2012

점점 현대도시는 천편일률적으로 벌거벗은 것 같은 유리벽 건물로 뒤덮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건물에서 햇빛의 관리(주로 적외선 에너지(열선)의 차단)는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된 것에 비해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유리라는 재료의 개선(코팅을 통한 적외선 반사율 높이기 등; 로이(low emissivity )유리)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좀 더 포괄적인 건축설계적 접근이 아쉬운 지점이다.

근년에는 아파트조차 이런 오피스건물처럼 유리를 많이 사용하고 거실 등 대형 유리를 사용하는 부분은 위에서 아래로 마치 커튼월처럼 건식 모듈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는 유리를 사용하는 것이 더 멋있어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벽 위에다가 유리를 붙이는 커튼월 룩(curtain wall look)이라는 유사 커튼월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팰리스를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 이후 한때 유행했던 주상복합건물(사실 70% 이상이 아파트다)들은 실제로 커튼월로 지어서 외관 대부분을 유리로 시공하고 창문을 작게 하여 햇빛으로 인한 더위와 전기요금 폭탄으로 한때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근년에 오피스빌딩이나 아파트주거 등에서 이런 유리빌딩에서의 빛 환경을 건축적으로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여러 측면에서 참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대규모 오피스빌딩에서 햇빛의 건축 환경적 과제와 건물외관과 조망이라는 심미적 과제를 세심하게 다룬 사례를 살펴보자. 용산 한강로에 있는 A회사 사옥은 현대적인 사무소건축의 일반적 해법인 유리커튼월의 외피(外皮)를 가지고 있지만 그 외부(1미터 정도 간격)에 핀(fin)이라고 부르는 무광 알루미늄으로 된 수직 루버(louver, 수직 차양)를 달아 두 번째 외피를 만들었다.

용산 A사 사옥. 내부에서 유리를 통해 본 중정(中庭) 방향 외관. 유리커튼월 밖에 새로운 외피를 만드는 핀(fin)들이 보인다. 가운데 3개는 가까이 본 핀으로, 네 가지(20∼45cm 깊이) 크기가 건물 위치에 따라 설치된다(건축가 David Chipperfield, 2017). 사진: 김기호, 2022
용산 A사 사옥. 내부에서 유리를 통해 본 중정(中庭) 방향 외관. 유리커튼월 밖에 새로운 외피를 만드는 핀(fin)들이 보인다. 가운데 3개는 가까이 본 핀으로, 네 가지(20∼45cm 깊이) 크기가 건물 위치에 따라 설치된다(건축가 David Chipperfield, 2017). 사진: 김기호, 2022

수직의 핀들은 위치에 따라 다양한 크기와 적절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다양한 시간대와 위치에 따라 햇빛을 조절하여 모니터를 주로 사용하는 현대 사무실에 직사광선이 아닌 적절한 간접 조명을 제공하게 된다. 또한 여름의 강력한 햇볕도 걸러주는 역할을 하는 차양이다. 예전부터 일에 집중해야 하는 직원들에게 창(窓)가 자리는 그리 매력적이지만은 않은 자리였으나 요즘과 같이 대부분의 업무를 모니터 화면을 봐야 하는 사무 공간에서는 창가 자리는 더욱 기피하는 자리다. 이런 두 번째 외피는 직사각형 모양의 딱딱해 보이는 외관을 부드럽게 느끼게 하는 데도 기여하게 된다.

아파트의 경우도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깊은(난간∼창호 사이 거리 2.5m 이상) 외부 발코니(‘돌출개방형 발코니’)를 설치할 수 있도록 건축물 심의기준을 개선했다. 아파트에서도 거주자가 외부에 나가 둘러앉아 식사 등을 할 수 있는 옥외생활이 가능한 작은 공중(空中)정원 같은 공간이 가능하게 된다(‘서울에서도 ‘발코니 로망’가능!’, 내 손 안에 서울, 2023.6.7.).

처마가 길고 발코니가 깊은 아파트 외관. 사람들이 발코니 탁자에 둘러앉을 수 있다. 화초 재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발코니는 외관도 다양하다. 위도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며 햇볕이 강한 이탈리아 로마시 주거지 아파트. 사진: 김기호, 2023.
처마가 길고 발코니가 깊은 아파트 외관. 사람들이 발코니 탁자에 둘러앉을 수 있다. 화초 재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발코니는 외관도 다양하다. 위도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며 햇볕이 강한 이탈리아 로마시 주거지 아파트. 사진: 김기호, 2023.

그동안 실내 공간 넓히는 용도로나 사용되던 발코니를 뒤로하고 답답한 공동주택 생활을 탈피하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바람직한 시도이다. 이런 발코니는 유리창 하나로 구분되던 실내와 실외 공간 사이에 완충적 역할을 하는 공간을 제공하여 거실의 햇빛을 조절하는 장치도 될 것이다. 나아가 아파트 외관도 돌출한 발코니와 거기서 벌어지는 생활이 만들어내는 경관을 통해 단조로움을 탈피하는 효과를 얻을 것이다. 특히, 비 오는 날 문도 열지 못하는 불편에서 벗어나 발코니에 앉아 빗속의 먼 산을 바라보며 비를 냄새로 피부로, 그리고 소리로 느끼는 감성적 호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근년에 서울 마곡지구 중심에 등장한 오피스빌딩. 루버(louver, 차양)를 통하여 다양한 표정을 연출하고 가로경관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사진: 김기호, 2022
근년에 서울 마곡지구 중심에 등장한 오피스빌딩. 루버(louver, 차양)를 통하여 다양한 표정을 연출하고 가로경관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사진: 김기호, 2022

건축에서 햇빛은 선물이기도 하며 어떤 때는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건축설계 대응은 우리 삶터와 일터를 더욱 쾌적하게 만들 것이며 나아가 다양하고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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