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슬아 논설위원, 작가·컨텐츠 기획자

송하슬아 논설위원
송하슬아 논설위원

3D영화 혁신의 한 획을 그었던 ‘아바타’가 13년 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천만 관객에 총수익 1조 8889억 원을 기록한 대작임에도 긴 러닝타임이 부담되어 극장에 가지 않았다. 그 후 6개월도 안 돼서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아바타 2를 볼 수 있었다.

2009년 아바타 1 개봉 당시, 역대 흥행 영화란 간판의 이면에는 여러 해석이 존재했다. ‘뻔한 권선징악 구조, 서부 개척영화, 환경영화, 서구 과학주의, 백인우월주의’라는 후기부터 ‘가상현실의 완벽한 표현’까지. 13년이 흐른 뒤, 아바타 2에 대한 평가 역시나 비슷하게 평행을 이뤘다. ‘끝내주는 영상미와 지루한 이야기, 환경 다큐멘터리, 백인우월주의, 자기모순적인 영화‘라는 날카로운 시선들. 한 영화를 두고 입체적인 평이 존재한다는 건 그만큼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는 뜻이기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영화가 내포하는 대주제는 실제와 가상공간의 대립, 자연정복과 자연친화의 대립, 정착과 부유의 대립 및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소재들에 가까웠다. 나는 조금 다른 면에서 이 SF 판타지 영화를 바라봤다. ‘이동’과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 가족들, 나비 부족에서 자란 인간 스파이더와 입양한 딸 키리가 모두 ‘적응’에 최선을 다하는 성장 과정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영화 속 큰 줄거리는 ‘떠남’과 ‘안착’을 반복한다.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이미 전작을 통해 지구를 벗어나 판도라 행성에 머물기를 선택한다. 네이티리의 도움으로 금세 적응하여 영원히 가족을 꾸리고 살 것 같았지만 15년 뒤 다섯 명의 가족 모두 숲을 떠나야 할 위기에 처해 나비족을 떠난다. 숲의 부족이 산호섬의 부족으로 살아간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터. 남들과 다른 생김새로 어디를 가든지 눈에 띄고 물속 생활이 쉽지 않아 주변의 놀림거리가 되는 사소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도 있었다. 영화의 중반부는 이들 가족이 혼란 속에서도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어릴 적 나는 3년에 한 번꼴로 지역을 옮겨 다녔다. 유치원 2곳, 초등학교 3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1곳으로 이사를 참 자주 다녔다. 보통의 아이들보다 2배가 넘는 학교 친구들을 만날 기회를 누린 셈이다. 매일 보던 친구들과 당장 헤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지낸다는 사실이 설레기도 했다.

언제나 적응은 단번에 되지 않았다. 나 빼고 졸업과 입학을 함께한 친구들이 서로에게 익숙한 맥락을 공유할 때, 나는 쉬이 섞이지 못하고 경계인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럴 때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 타인에게 친절한 설명을 구하는 용기가 필수였다. 전학생은 쉽게 남들의 관심거리가 됐고, 이방인을 향한 경계심은 필연적이었다. 막막할 때도 있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과거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속상해하기보다는 하나씩 맞춰가고 하루, 한 달 시간이 흘러 어느덧 스며들었던 것 같다. 잦은 이사는 여러 환경에서 살아보는 경험치로 쌓여, 결국 나의 견문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 한 지역에만 살아본 친구들에 비해 본 것도 많고, 적응도 잘하며 다양한 배경을 수용하는 유연함을 배울 수 있었다.

SF영화 속에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멧카이나 족장의 아들 무리와 제이크 설리 부부의 아들이 경계를 끝내고 화해하는 과정과 멧카이나 족장의 딸의 도움으로 투크티리가 물속 호흡법을 익혀갈 때가 그랬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늘 경계인처럼 지냈던 둘째 아들 로아크 역시 툴쿤(고래) 친구를 얻으며 결국, 산호섬 생활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산의 부족이 산호섬에 당도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 취급을 받았을지라도, 산과 바다를 모두 경험해봄으로써 실제 그들의 생존력은 훨씬 높아진다.

제임스 카메론은 웅장한 자연을 수백만 컷의 훌륭한 기술로 담은 것도 모자라,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섬세한 감정선 역시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에 담은 스케일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영화 말미에 다시 한번 제이크 설리가 다른 곳으로 떠나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멧카이나 부족장은 “이제 이곳이 당신들의 집”이라고 말해준다. 그의 가족이 새로운 안식처를 찾기 위해 더는 방황하지 않고, 이곳에서 가족들을 지키고 가족들과 함께 뿌리내리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제이크 설리의 마지막 한마디가 내 귀에 묵직하게 들렸다. This is where we make our stand(이곳이 우리가 서 있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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